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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생산하는 AI와 소통하는 AI

by 격암(강국진) 2025. 2. 16.

AI는 생산하는 기계이면서 동시에 소통을 위한 미디어 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는 모두 아주 중요한 것이지만 아직은 사람들이 AI를 생산을 위한 기계로만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AI기술이 생산을 위해 사용되면 될 수록 AI가 소통을 위한 미디어라는 점은 더 더욱 부각될 것이며 AI가 소통문제를 크게 개선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AI 기술이 생산 기술로 사용되는 것에도 한계가 있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제 아무리 마술처럼 AI가 생산을 하는 기계라고 하더라도 생산은 반드시 소비라는 문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생산은 인간이 하건 AI가 하건 그걸 유통시키고 소비시켜야 가치와 의미가 있다. 자동차나 건물을 순식간에 수만대, 수만채를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소비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그건 그냥 자원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공짜로 일해줄 가정부 로봇이 수만대, 수천만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가정부로봇이 일한 곳이 없으면 그런 로봇은 의미가 없다. 

 

오늘날 인류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생산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노동을 AI가 대체하는 것이 두렵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그것이 인간이 AI가 필요한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생산은 문제가 되어왔다. 인간은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계속 생산력에 비해 부족한 소비라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자유시장이라는 이념도 그렇고 식민지도 그렇고 복지국가라는 개념도 전부 세상에 없는 판매 시장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 속에서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의 역할이란 바로 생산된 물건을 유통시켜서 소비시킬 사람과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한 이유는 바로 생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을 말하자면 상황은 다르다. 자본주의의 이같은 문제는 일찌기 마르크스나 룩셈부르크 같은 사람에 의해서 지적되어 온 것이다. 생산력에 비해 부족한 소비라는 문제는 이제까지 점점 더 심각해 져왔는데 그것은 바로 기술이 발달해서 인간의 생산능력이 점점 더 커져만 왔기 때문이다. 더 많은 기술은 이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AI 기술없이도 이미 우리는 지금 도저히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물론 지구상에는 아직도 굶는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지만 중국인이 값싼 노동력을 팔아서 미국인들을 부유하게 만들듯 중국인을 부유하게 만들 더 가난한 노동자의 수는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지구는 이미 환경 문제와 자원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중국인들이 미국인들처럼 소비하는 세상이 올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노동이 AI 혹은 AI를 장착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서 멈춘다면 AI가 가져올 것은 지옥밖에 없다. 인간이 하는 생산을 위한 노동은 아무 가치가 없어 질 것이고 소비없는 생산은 판매되지 않는 상품, 기업의 도산, 금융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면 소통을 위한 AI란 무엇인가? 이것에 답하기 위해 먼저 몇가지 사실에 주목하자.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들 목록을 보면 그 중의 다수는 일종의 플랫폼 독점 사업을 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메타(페이스북)같은 회사가 그렇고 국내에서는 카카오와 네이버같은 회사가 그렇다. 이런 회사들은 인간의 소통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뭔가를 찾거나 서로 소통할 때는 검색엔진을 사용하거나 메신저를 사용하거나 SNS를 사용하거나 이메일을 사용하거나 인터넷 포털을 방문한다. 그들은 왜 부유할까? 물론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그렇고 그들이 정보가 흐르는 대체할 수 없는 여러가지 길목을 독점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AI는 만능의 소통창구가 될 수 있다. AI를 써서 소통할 경우에 우리는 포털이나 SNS같은 미디어를 사용하면서 어떤 플랫폼을 거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소통하고 싶은 사람과 직접 소통하면 된다. 이런 것을 p2p 통신이라고 하는데 기술적으로는 p2p 통신은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토렌트 파일 다운로드 프로그램 같은 것이 p2p 통신이다. 이 경우 우리는 어떤 중앙 파일 서버에 우리의 파일을 올리고 다른 사람이 거기서 파일을 다운 받는 것이 아니다. 모든 컴퓨터들이 파일들을 중앙없이 주고 받는다. 

 

그런데 파일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모든 형태의 소통을 다 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번거러워서다. 우리가 100통의 이메일을 보내는 것과 메신저로 100번 메세지를 보내는 것은 원칙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만 메신저 프로그램은 특정한 소통의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짧은 소통을 편리하게 만든다. SNS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포털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며 온라인 쇼핑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소통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소통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많은 형식으로 소통할까? 왜냐면 상황에 따라 더 편리한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들이 그런 형식을 짜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형식으로 소통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AI는 이 모든 소통의 형식을 통합할 수 있다. 즉 내가 무슨 정보를 보내려고 하고 받으려고 하건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는 형식으로 출력하고 입력하게 정보의 입출력 형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p2p 형식으로 직접 중앙의 감시없이, 사적인 정보를 외부로 유출시키는 일없이 보내고 받을 수 있다. 이 말은 지금의 프랫폼 회사들이 버는 돈들이 모두 절약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카카오 톡같은 메신저에 메일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메세지를 보내고 싶다고 하면 AI가 메신저 형식으로 글을 쓰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메세지를 보내면 그 메세지를 적당한 형식으로 보내줄 것이다. 이건 AI와 AI의 통신이지 특정 메신저 플랫폼 안의 통신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메신저에 구속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또 한가지 문제는 데이터의 가치다. 지금은 사람들이 플랫폼회사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기 정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 문제에 익숙한 회사들은 그래서 SNS나 메신저 사용을 금지하는 곳이 많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떨까? 앞으로 개인의 데이터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높아질 수록 정보를 생각없이 사적인 플랫폼 회사를 통해 유통하는 일을 꺼리게 될 것이다. 

 

소통의 AI가 중요해지는 것은 이렇게 미디어로서의 AI가 지금의 기업시장에서 큰 돈을 벌고 있는 플랫폼 회사들을 모두 대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나 데이터 보안때문 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앞에서 말한 생산과 소비 문제의 해결이다.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 시절이래 인간은 하나의 거짓된 주장을 해왔다. 그것은 바로 생산과 소비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자동으로 균형이 맞춰진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거짓인 이유는 세상의 소통속력은 너무나 느리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맞추기 전에 세상에는 또 다른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약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맞춘다면 소비할 곳이 없는 생산이 없어야 하고, 소비자가 원하면 그런 서비스나 상품은 반드시 생산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를 찾아야 하는 과잉생산이 일어나는가 하면 소비자가 원하는데도 생산되지 않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다. 

 

AI가 소통의 미디어로 작동할 때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는 현실이 될 것이다. 소통을 위한 AI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침으로 크로아상을 먹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을 위해 AI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크로아상을 찾아낼 것이고 주문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특정한 크로아상에 대한 소비 패턴은 AI에 의해 분석되고 예측되어서 집 근처에 그 크로아상은 미리 도달해 있을 것이다. AI가 소통의 미디어로 작동하면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때 그러한 욕망이 바로 생산에 반영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AI는 생산을 위한 기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러가지 상황에서 여러가지 서비스나 상품을 원할 때 그같은 요구는 바로 생산에 반영될 수 있다. 문제의 크로아상을 생산하는 것도 AI일 수 있다. 빠른 정보처리는 생산과 소비간의 거리를 한없이 좁힐 것이다. 재고나 유통의 손실은 한없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을 위한 미디어로서의 AI의 역할은 AI가 생산에 쓰이면 쓰일 수록 필요해지고 사실 오히려 더 필요한 쪽은 전자인 것이다. 왜냐면 생산을 위한 기술은 인간이 이미 넘치도록 가지고 있어서 이미 소비시장을 찾지 못하는 과잉생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같은 상품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사과를 키워주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아니다. 사과를 팔아줄 유통 문제를 해결하는 AI다. 생산은 좀 더 낡은 방식으로 해도 된다. 팔 곳만 있다면 말이다. 

 

유감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AI를 생산을 위한 기계로 보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 많다. 그런 추세만 계속된다면 비극이 벌어질 뿐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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