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물류는 철도가 나온 이래 크게 변했다. 그때까지는 물길을 따라 배에 물건을 싣고 물건과 사람을 나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육로 수송은 느리고 비쌌다. 그래서 물길이 없으면 상업이 번성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철도가 들어서자 사람도 물건도 혁신적으로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고 물류가 달라지자 도시의 번성 조건도 달라졌다. 한마디로 제약이 줄어든 것이다. 19세기 철도 대중화는 엄청난 철강 수요를 만들었고 영국이나 미국은 전국을 철도로 뒤덮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제약의 감소는 자동차 시대를 맞이하여 다시 한번 극적으로 일어난다. 자동차는 도로를 따라 개인들이 각자 원하는대로 움직인다. 기차처럼 정해진 길만 가지 않을 뿐더러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게 아니다. 기차는 말하자면 집단으로 움직이는데 자동차는 각자 움직인다. 그래서 자동차의 시대가 오자 물류는 다시 한번 크게 변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물론 그냥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첫째로 개인의 이동 자유도가 증가하는 것을 원하는 대중이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 기차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있었다면 자동차 시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 대량생산 시스템의 발달로 자동차를 많이 생산할 수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포드 자동차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다. 자동차는 이제 싸게 공급될 수 있었고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타기 시작했다. 세째로 도로 인프라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도로는 닭과 달걀과 같다. 자동차가 있으니 도로도 생기지만 도로가 많아야 자동차도 쓸모가 있다. 마지막으로 석유사업의 발전으로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없었다면 자동차는 값싼 이동수단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자동차와 AI는 물론 같은 것이 아니다. AI 대중화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AI 대중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동차의 사례에서 모두 배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AI의 대중화는 자동차의 대중화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동차의 사례를 생각하면서 앞에서 말한 질문의 답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AI 대중화를 위해서 그걸 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니까 막연히 좋은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AI 대중화는 우리에게 뭘 줄 수 있을까? 그걸 말하는 한가지 방식이 바로 자동차처럼 AI도 개인의 자유도를 늘리는 것이란 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속박되어 있다는 것일까? 무슨 속박? 기존의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속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못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억압당하고 속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걸 위해 이런 속박이 존재했다가 없어진 예를 들어 보자. 백화점이나 중앙시장처럼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한 군데에 모여있는 상태는 동네마다 작은 가게들이 있는 상태보다 속박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내가 물건을 잘 팔려면 백화점이나 중앙시장으로 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류의 변화로 그런 속박은 사라지게 된다. 기차의 시대는 자동차의 시대에 비해 속박이 존재한다. 기차의 시대에서는 사람들이 기차역을 중심으로 물자와 사람을 옮기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내 집에서 출발해서 목적지까지 내가 원할 때 간다. 마찬가지로 공중파 TV 방송국의 시대는 지금처럼 유튜브나 OTT 같은 다른 미디어가 존재할 때에 비해서 속박이 존재하던 시대였다. 정보를 유통하기 위해서, 컨텐츠를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TV 방송국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국은 과거에는 지금에 비할 수 없는 강한 권력을 가졌었다고 들었다. 방송국이 틀어주지 않으면 가수도 드라마도 대중에게 자신을 보여줄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이나 아마존같은 인터넷 상거래를 보면 인터넷은 자유로운 곳이지만 속박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특정 플랫폼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있고 물건을 사고 팔고 있다. 그것이 현재의 상태이므로 사람들은 어떤 미래가 가능한지, 우리가 지금 속박을 받고 있는지를 모를 수 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의 시대가 되면 우리는 분명히 지금의 시대를 속박받고 있었던 시대로 보게 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좋게만 보고 더 이상의 자유가 필요없다고 말한다면 AI 대중화는 느릴 수 있다.
우리는 정보를 얻거나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 왜 특정한 플랫폼으로 가는가? 그건 그런 플랫폼을 통과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정보들의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연결이 안되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 카페에 모여서 동호회 활동을 한다던가 내가 쓴 블로그의 글이 아무에게도 도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플랫폼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정리해서 보여주는대로 우리는 서로에게 연결되고 있다. 마치 기차길을 만든 사람이 정한 시간표와 기차역을 사용해서 여행을 하듯이 말이다.
AI 에이전트는 컴퓨터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정보처리 속력을 가진다. 우리는 AI 에이전트를 자동차처럼 생각할 수 있다. 이제 마치 기차처럼 특정한 형태로 플랫폼을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자유롭게 사이버 공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도달할 수 있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연결되기 위해 반드시 거대 인터넷 쇼핑몰에 소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든 컨텐츠가 유통되기 위해 반드시 특정한 플랫폼을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AI 에이전트는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데이터들 속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꺼집어 낼 수 있다. AI 에이전트는 서로 소통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최적화할 것이다.
물론 자동차가 기차에 비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는 하지만 도로교통법이라는 것이 필요하듯이 AI 에이전트의 시대에도 어떤 시스템이 존재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아마도 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국가단위에서 정하는 법같은 것에 가까울 것이다. 도로교통법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AI 에이전트는 인터넷 상의 정보들을 모으고 분석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지금의 플랫폼을 통과하지 않고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 플랫폼을 써야 블로그를 할 수 있고 온라인 쇼핑몰을 써야 온라인 상거래를 할 수 있는게 아니라 내가 작은 사이트를 운영하면 그것들에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AI 에이전트의 시대를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은 자동차를 타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이 자유를 상징하는 시대가 있었다면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무한한 정보의 시대를 돌아다니는 것이 자유를 상징할 수도 있다.
지금의 플랫폼이 이미 훌룡하고 편한데 그게 왜 필요하냐고 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TV 방송국시대가 이미 훌룡한데 왜 OTT나 유튜브가 있어야 하냐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독점은 반드시 권력에 의한 왜곡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아마존같은 회사가 마음이 너그러워서 플랫폼을 운영하는게 아니다. 그 반대로 엄청난 돈을 번다. 그러면 그 돈을 누가 내고 있을까? 물론 플랫폼의 사용자다. 나는 정당한 비지니스 모델을 착취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해를 돕기 위해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플랫폼 운영자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더 자유로운 인터넷이란 그 착취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즉 AI 대중화란 더 싼 서비스, 더 싼 물건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AI 대중화가 이미 일어났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의 대중화가 그러했듯 AI의 대중화도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일단은 작고 강력해서 각자의 집에서 작동할 정도의 AI가 생산되어야 한다. 지금 전세계가 이것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몇년안에 해결될 것이다. 집에서 돌아가는 챗GPT를 보급하는 것이다. 그래야 개인정보의 유출걱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AI는 소프트웨어 이므로 그 자체는 대량생산 문제가 없다. 복제하면 금새 수없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돌아가야 하는 PC나 스마트폰은 역시 존재해야 하고 강력한 AI PC의 대량생산 문제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도 이미 PC는 대량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큰 장벽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PC 산업의 미래는 밝다. 계산능력의 폭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자동차가 달릴 도로가 필요하듯이 AI 에이전트가 동작할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 연결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도 아주 당연한 것은 아니다. AI 에이전트들은 인간보다 빠르다. 그래서 훨씬 더 대량 정보를 소통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같은 경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더 빠른 인터넷이 있어야 AI 에이전트들이 활동하기 편한 세상이 될 것이다.
세번째는 에너지 문제다. AI는 크고 복잡한 계산을 요하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 그래서 지금의 상태로는 PC에서 작동하지 않는 챗GPT같은 것을 집집마다 보급할 수도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문제는 상당부분 AI가 쓰는 에너지 소모량을 감소시킴으로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력한다고해도 AI가 대중화되면 에너지 소비량은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전력수요를 감당할 것을 대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전기는 송전중에 낭비되는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고압송전선은 서로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는 거리의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서 전기를 많이 쓰게 되면 도시 한가운데 발전소를 세우던지 아니면 태양광 발전같은 것으로 자가 발전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한계는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 에너지의 문제로 도시가 작아지게 되는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동차는 있는데 연료가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모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극복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과제들이다. 더 자유로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AI 에이전트를 쓰는데 필요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꿈꾸는 일을 계속한다면 철도의 시대가 자동차의 시대로 바뀌는 것보다 더 큰 변화가 세상에는 일어날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물류는 배에서 기차로 기차에서 자동차로 변했고 통신도 전보가 19세기에 발달한 이래 라디오와 TV, 전화기와 인터넷등 많은 발달을 했다. 물류와 정보가 전과는 비할 수 없이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는데 한가지가 발달하지 않아서 지금은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건 바로 이런 세상에 어울리게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걸 해낼 수 있는 것이 AI다. 그래서 AI가 발달하면 마지막 병목이 사라지고 세상은 크게 변할 것이다. 우리는 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 세상을 언젠가 우리는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이라고 부르게될지도 모른다.
'AI 학교, AI 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후의 전쟁 (1) | 2025.02.05 |
---|---|
경제학의 짧은 역사와 미래 (0) | 2025.01.28 |
미디어의 흥망성쇠와 우리가 사는 세상 (0) | 2025.01.22 |
다시 철학의 시대가 올까? (0) | 2025.01.19 |
AI 시대를 함께 사는 법 1장 (2) (1) | 2025.01.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