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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최후의 전쟁

by 격암(강국진) 2025. 2. 5.

성장과 소비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최후의 전쟁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최후의 전쟁이 반드시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인류를 멸망시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는 끝낼 가능성이 크다. 아니 뒤집어 말하면 만약 자본주의가 가까운 시일내에 끝나지 않는다면 그건 최후의 전쟁이 아니다.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성장으로 자본주의의 수명은 연장되고 최후의 전쟁은 더 뒤에 오게 된다는 뜻이다. 

 

문제의 핵심은 생산력을 높여서 그것으로 부자가 되고 성장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소비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만약 누군가가 거의 공짜로 금을 마구 생산하는 기술을 만든다면 먹어서 없어지지도 않는 금의 값어치는 폭락할 것이다. 실제로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기술의 발달로 최근에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폭락하고 있다. 생산이 소비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래 아니 어쩌면 인류가 정착하고 농사꾼이 된 이래 자기가 소비하고 남은 물건 즉 잉여생산물의 문제는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잉여생산물의 문제는 그것을 외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달이 느렸기 때문에 과거에는 절망적인 문제가 안된 것이다. 즉 더 생산하면 그걸 소비할 외부의 사람들을 찾으면 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식민지 개발이었지만 20세기의 세계화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나라에게 낡은 기술을 주면서 너희들도 성장해서 우리처럼 될 수 있다고 하면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면서 선진국의 잉여생산물을 소비해 주었다. 그것이 자본일 수도 있고, 기술일 수도 있고, 생산설비일 수도 중간재일 수도 있다. 그러면 선진국은 쉽게 돈을 버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회사 퀄컴 같은 곳에 막대한 로열티를 내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에게서 돈을 벌어갔지만 우리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돈을 벌었다. 

 

왜 지금은 최후의 전쟁 상태인가? 그건 잉여생산물을 외부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유한하다. 이 말은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이 환경문제, 자원문제를 일으킨다는 면에서도 옳지만 마치 식민지 개발정책이 식민지 부족으로 끝이 나듯 더 성장을 갈구 하는 사람들을 구해서 소비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도 더이상 그런 사람이 없으면 끝이 날 수 밖에 없는 면에서도 옳다. 

 

선진국 사람들 특히 서구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오만했다. 우리도 사실 오만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성취에 도취된 나머지 개발도상국에게 너희도 발전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 결국 그 나라들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성장의 한계를 겪을거라고 생각한다. 즉 일본이 성장해도 일본이 서구를 위협할 정도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중국이 성장해도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베트남에 공장세우면서도 베트남이 한국을 능가할 거라고는 믿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벌써 20년전부터 지금은 중국이 잘나가지만 중국은 금방 무너질 거라는 말이 돌았다. 가난하던 시절 한국은 절대 민주화된 국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믿어졌다. 이런 믿음이 선진국을 안심시켰다. 

 

이런 오만한 견해에 따르면 개발도상국들은 스스로 성장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고 따라서 선진국들은 계속 그걸 기반으로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선진국은 계속 어떤 것을 생산하고 개발도상국은 계속 그걸 소비하는 구조다. 이것이 오만인 이유는 개발도상국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선진국 사람들이 스스로를 너무 과대 평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학원을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이 가득 채우는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 기술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성장하리라는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젊은이들은 뭘 했나? 그들은 돈놀이가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로 갔다. 공부는 싫어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성적 좋은 학생들은 모두 의대에 가려고 하고 그 이외의 전공은 인기가 없어진 상태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언제까지 기술 한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이 먼저 미국에게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중국이라는 가난한 나라가 성장을 갈구하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니까 일본은 미국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압도하고 세계 패권을 잡으려고 시도하던지 아니면 천천히 죽어가는 선진국이 되던지하는 선택지가 있었다. 한국도 만년 무역적자로 죽어가는 일본을 먹여살렸다. 그러나 지금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답이 없다. 인구가 14억이나 되는 중국을 먹여살릴 규모의 개발도상국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성장하지 않으면 빠르게 망하는 수 밖에 없다. 사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자원문제와 환경문제로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것의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다. 

 

만약 핵무기가 없다면 어쩌면 최후의 전쟁은 무력전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력 전쟁은 이미 발달한 기술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설사 그런 전쟁으로 중국인이나 미국인 전부를 죽이는 일이 있어도 문제의 본질인 성장과 소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어쨌건 무력전쟁이 선택지가 아니므로 지금은 경제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게 반도체 수출을 못하게 한다던가 관세장벽으로 중국 물건을 미국에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경제전쟁이다. 

 

그런데 사실 경제전쟁은 모순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애초에 세계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은 성장과 소비 문제였다. 그걸 위해서 세계화를 하고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인도 그렇지만 미국인이 잘먹고 잘사는데 필요해서 중국을 성장시킨 것이고 중국과 거래를 한 것인데 그 거래를 중단시키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장벽을 쌓고 자기 국경내에서 자급자족하는 길로 가면 경제문제가 해결된다고 누가 말하는가? 이건 마치 생활비가 풍족하지 않으니 퇴사해서 퇴직금을 쓰면 된다고 하는 것과 같다. 결국 퇴직금이 떨어지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경제전쟁은 길게 보면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얼마전에 중국이 값싸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딥씨크 AI가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것은 그것이 중국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즉 AI 기술에 있어서는 미국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닐 경우 미중간의 경제전쟁은 큰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미국 증시를 흔든 것이다. 만약 미국의 어떤 벤쳐회사가 같은 일을 했다면 미국 증시는 오히려 훨훨 달아 올랐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간의 싸움이 최후의 전쟁이 되는 이유는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해결책이 없다. 잉여생산물을 팔아서 성장하겠다는 사람은 소비자가 필요하다. 기술이 너무 너무 발전해서 잉여생산물이 소비자에 비해 너무 많아지면 이젠 생산이 아니라 환경보호나 자원고갈 문제에 집중해야 할지 모른다. 실제로 식량생산으로만 보면 세계 인구가 80억이 되었는데도 우리는 그들 모두가 먹고 남을 식량을 생산할 기술이 있다. 누군가는 한쪽에서 굶지만 누군가는 그 식량으로 연료를 만들고 고급 스테이크를 만들어 소비한다. 그러면서 지구 환경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우리도 낡은 방식으로 성장하겠다고 했을 때 그걸 막을 명분도 없다. 스테이크 먹고 뚱뚱해진 사람들이 마른 사람에게 너희들은 굶으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정치가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언제나 그랬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결국 정치가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국가적 단위의 비전이 있고 그 비전을 통해 국가가 성장하는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개발을 하던 제국주의 시절이나 세계화를 하던 시절의 정치가들은 윤리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떠나 옳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비전을 찾기 힘들다. 사람들이 답이 없으니 사이비 종교의 교주같은 사람들이 날뛴다. 즉 진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나 솔직히 답을 모르겟다고 하는 진짜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엉터리 해결책을 가지고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밀려나서 무시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기술은 발전하고 자본주의의 위기는 심화되며 따라서 전쟁의 압력은 커진다.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비전이 있을까? 있다. 그것이 AI다. 그래서 지금 세계가 AI 때문에 난리지만 AI 기술이 어떤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리가 안되고 있다. AI가 정말로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비전을 주는가 안주는가에 상관없이 최후의 전쟁은 점점 심각해 지고 있다. 결국 우리가 알던 세상은 가까운 시일내에 크게 변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배가 나타나서 인류를 태우던 그렇게 하지 못하던 자본주의라는 타이타닉은 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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