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인간의 지능을 5개의 혁신의 결과로 설명하면서 어떻게 인간의 지능이 발달했는가에 대한 진화론적이고 신경과학적인 그리고 인공지능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그의 설명은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흥미롭고 명확하다. 그래서 뇌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인공지능과 뇌과학을 전공하고 연구했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이 책은 내가 좀 더 젊었을 때 읽고 싶었고 내가 직접 쓰고 싶었던 종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쓸 수 없는 책으로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칭찬할 수 밖에 없다. 뇌란 매우 복잡한 것이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것같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또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을 읽어본 비전공자들은 느끼겠지만 신경과학을 처음 공부해 보면 뇌의 여러가지 부분 부분의 이름만 읽는 것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게다가 한국인은 그걸 영어로도 알아야 하고 한국어로도 알아야 한다. 한국어 이름만 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데 그렇다고 영어 이름만 하는 것도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잘 남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닥핵이라는 이름도 알아야 하지만 베이설 갱그리아같은 이름도 알아야 한다. 물론 이름은 한가지 문제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다음에는 각각의 뇌의 부분들이 가지는 온갖 성질을 공부해야 한다. 이런 문제로 인해서 저명한 신경과학 교과서를 읽으려고 노력한 사람은 그 안에 나오는 수없이 많은 조각난 사실들 앞에서 좌절하기 쉽다. 뇌과학은 몇줄의 법칙을 쓰고 그게 뭐든지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물리학과는 정반대에 존재하는 분야다.
그런데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속에서 그 뇌의 여러 부분들을 소개하고 어떻게 지능이 발달해 왔는가를 설명한다. 이 진화론적 설명은 물론 상당부분 신경과학계의 검증을 거친 것이지만 또한 동시에 어느 정도는 주장에 불과한 것도 있다. 뇌에 대한 고전역학같은 분명한 이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도 이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를 직역하면 그것은 간략한 지능의 역사다. 역사란 과학이 아니다.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의 명확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다는 것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감탄하고 흥미로워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할만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5개의 혁신은 조종-강화-시뮬레이션-정신화-언어다. 맥스는 선충이라던가 파충류, 영장류의 뇌가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면서 어떻게 뇌가 탄생하고 진화하면서 지금의 인간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뇌의 특징들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그런 설명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즉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발전과 뇌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게 된 것을 나란히 비교하면서 맥스는 자신의 설명을 좀 더 설득력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뇌에서 예측과 자기 이해가 생겨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하지도 않은 행동을 예측하고 또 다른 사람과 스스로가 아직 겪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떤 마음상태에 있을까를 이해하게 하는 능력이 생겨나는 과정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작가는 언어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나는 작가의 설명을 읽는 동안 언어란 어쩌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발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즉 언어 능력이 뇌손상에 의해서 감퇴되면 그냥 말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사고 자체가 심각히 손상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이 책이 매우 훌룡한 책이라는 점을 말하고 난 뒤에 나는 약간의 경고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인간의 지능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에는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로 앞에서도 말했지만 얼핏 들으면 과학적으로 들리는 이 책의 설명은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의 신화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과학은 엄밀하고 기계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고 추상적이고 애매하게 설명하는 것은 과학이라고 까지는 말하기 힘들다. 그런데 사실 뇌는 그런 엄밀하고 기계적인 설명을 제공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대상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인공지능의 강화학습이 일어나는 방식을 이해하고서 뇌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뇌에서도 강화학습이 일어나는 것같다는 증거를 찾고 그걸 주장할 수 있다. 그런 주장은 훌룡한 과학논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건 엄밀한 과학이론이라기보다는 비교에 의한 주장단계에 머문다. 인간은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신경세포간의 연결을 해석할 수 없다. 그러니까 매우 강화학습처럼 보인다는 것이 정말로 그런지는 영원히 확실해지지 않는다. 사실 컴퓨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뇌는 컴퓨터라고 단언했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강화학습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작동하는 것을 본 사람이 뇌도 강화학습을 한다고 여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여기에 오해가 있기 쉽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런 예를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맥스가 소개하고 있듯이 도파민은 처음에는 기쁨이나 보상 자체와 연결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후일 도파민은 보상에 대한 예감에 관련이 있다고 주장이 바뀌게 된다. 그러니까 내말은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이론도 바뀌기 쉽다는 것이다. 과학은 본래 이런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엄밀한 과학은 그렇지 않다. 패러다임이 그렇게 휙휙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물리학이나 화학같은 분야가 아니면 엄밀한 과학은 불가능하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우리는 인간 지능에 대한 설명을 엄밀한 과학적 결과로 받아들이는데에 있어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확신은 위험하다. 그럴듯한 이야기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걸 고전역학이나 양자역학같은 이론처럼 확신하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두번째로 말하자면 이 책이 인간지능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사실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 미흡하다. 이 책은 어쩌면 침팬지의 지능을 이야기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지 모른다. 왜냐면 이 책이 말하는 4번의 혁신은 침팬지에서도 있었고 침팬지와 인간을 나누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의 기원이나 발달에 대해서는 작가 스스로도 풀지 못하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이 차이도 미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건 중요한 차이다. 인간은 침팬지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그 차이가 침팬지를 동물원에 있게 하고 인간을 우주선을 만들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아직 풀지 못한 부분에 있을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래서 언어나 문자에 대한 집중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그것보다는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을 더 선호했지만 그 결과 인간의 지능과 침팬지의 지능을 비슷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이 책을 인공지능에 대한 소개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도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 책은 인공지능의 연구를 인간이 가진 지능의 재현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진 시각이지만 당연한 것은 아니다. 뛰어난 지능이란 정말 인간처럼 공감능력과 감정을 가지고 욕망을 가진 것을 의미할까? 인간이 필요한 것이 그것일까? 인간과 더 닮은 것이 더 뛰어난 지능일까? 책이 이런 인상을 주게 된 것은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뇌의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히 뇌가 가진 기능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인공지능 연구의 목적처럼 보이기 쉬운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교훈중의 하나는 지능이란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문제란 환경에 의해서도 주어지지만 나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의해서도 주어진다. 내게 날개 자체가 없다면 어떻게 더욱 잘 날 수 있을까라는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이 보여주듯이 진화에 의해서 발달한 뇌는 더 복잡한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문제를 처음부터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기능과 뇌의 구조 위에서 뭘 더 가지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가라는 식으로 그 문제는 정의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자면 새와 비행기가 다른 원리로 날아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새는 날지 않을 때도 새다. 그러니까 새가 난다는 것은 새의 육체를 가진 뭔가가 하늘을 나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는 제트기처럼 날 수 없다. 새에게는 막대한 에너지를 가진 연료통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비행기는 새처럼 날 수 없다. 왜냐면 비행기는 새가 가진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핏 보면 날아야 한다는 공통의 문제를 가진 것같지만 날아야 하는 기계와 날아야 하는 새는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지게 되고 다른 해법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새 중에는 인간의 몸무게를 가진 것도 없다. 반면에 비행기는 수톤이나 되는데도 잘 날아다닌다. 난다는 것에 대한 해법이 다른 결과다.
우리는 같은 것을 인공지능과 뇌에서도 본다. 뇌는 최첨단 인공지능도 해내지 못하는 것도 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차지하는 부피는 사람의 머리정도 크기이고 그것이 소모하는 에너지는 전등을 켜는 정도의 에너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빌딩사이즈의 크기를 가진 데이터 센터에서 돌아가고 새로운 발전소가 필요할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할 때 지능을 가진다라는 애매한 표현의 문제가 정말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해도 컴퓨터와 뇌가 지능을 가지려는 문제는 서로 같은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꼭 같은 해법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능의 핵심이 문제의 정의이며 메타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세계 모델이라는 말로 그걸 소개하지만 약간 그게 애매하다. 즉 어떤 객관적인 세계 모델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가정해서 문제의 정의가 쉽게 정의되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능은 문제에 대한 해법이다. 그리고 문제가 제대로 정의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환경속에서 어떤 존재가 이 문제를 가지는가를 정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정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환경과 자기 정체성의 문제는 객관적으로 유일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물리학 법칙으로 이 세계를 제대로 모델하는 어떤 부분이 존재한다고 그것만으로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노력하는 것처럼 멀티 모달 AI가 나온다고 갑자기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지능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이같은 부분이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선충이나 파충류를 이야기할 때는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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