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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노암 촘스키의 과학, 마음 그리고 이해의 한계

by 격암(강국진) 2024. 9. 25.

저명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2014년 바티칸에서 과학, 마음 그리고 이해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저는 그의 강연문을 이번에 구해서 읽었는데 그에 대한 소감을 여기에 기록해 둡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모든 논리적 과학적 설명은 사실 어떤 출발점을 가지며 그 출발점은 이해가능한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말하자면 그 출발점은 자연법칙이 된다. 자연법칙은 물리학의 일부이므로 사람들은 그것이 논리적으로 이해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만약 어떤 자연법칙이 어떤 설명으로 이해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은 자연법칙이라기 보다는 더 근본적인 자연법칙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사실때문인데 첫째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사실을 잊고 과학에는 무지와 신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과학의 설명하는 능력에 압도된 사람들은 이 세상에는 더 이상의 무지와 신비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두번째 사실은 이같은 것은 정작 과학혁명의 주인공이었던 흄이나 뉴턴같은 사람에게는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 뉴턴은 접촉이 없이 힘이 작용한다는 자신의 중력이론을 가르켜 '너무나 큰 부조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당대의 사람들에게 뉴턴의 고전역학은 그 이전에 존재하던 자연에 대한 신비주의적 설명들이 가지던 오컬트적인 힘이 존재하는 불충분한 것이었고 그걸 뉴턴도 인식하고 있었다.

 

노암 촘스키에 따르면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은 기계적인 설명이 가능한 물질과 그렇지 못한 마음으로 세상이 이뤄져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그걸 정작 부정한 사람은 뉴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뉴턴이 심신이원론을 부정한 방식은 많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을 부정하고 물질만 세상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물질이나 몸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결국 신비와 무지가 없는 물질이나 몸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뉴턴의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물질은 중력의 법칙을 따르지만 그 중력의 법칙은 발견된 것일 뿐 그게 뭔지는 모른다는 거라면 결국 물질도 그게 뭔지 모르는 거라는 뜻이 된다. 뭔지 모르는 것이 마찬가지라면 물질과 마음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종종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의식이나 마음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크게 바꿔야 하거나 어쩌면 영원히 그걸 하는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지와 한계를 말하는 사람을 신비주의자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역학이나 양자역학이 단단한 과학이론이라고 해도 개미가 그걸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로 부터 설사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모두에 대해 예를 들어 인간의 마음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다고 해도 그걸 반드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유한하다는 점에서 개미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논리적 설명에는 출발점이 있지만 더 많은 관찰과 연구를 통해 그 출발점의 위치를 옮겨가면서 우리가 설명할 수 없던것까지 설명할 수 있게 될거라는 전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발전은 무한정 계속될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기대에 대해 노암 촘스키는 화학의 역사를 보면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도 그게 우리의 생각처럼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물리학이 발전하면 화학이 물리학으로 환원될 거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고전물리학의 발전한 끝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물리학이 등장한 후에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지금의 뇌과학이 지금의 형태대로 발전했을 때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지능이나 마음의 설명에 도달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노암 촘스키의 글은 이해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라던가 과학적 이해란 어떤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런 발표를 한 지 10년이 지난 2024년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는 과학적 패러다임과는 다른 AI 패러다임의 성장을 예언하는 듯한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조만간 인간의 마음이나 뇌에 대해서 전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게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이해라는 말의 의미를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AI 패러다임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과 뇌를 설명하게 된다면 말이다.

 

참조 : 이 강연문의 원본과 번역문은 첨부해 두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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