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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이해하기

뇌와 언어 그리고 사고

by 격암(강국진) 2025. 7. 31.

인간은 생각 혹은 사고를 가지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일까? 아니면 언어 없이는 인간의 사고라는 것도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그 질문 자체가 한때 참신한 것이었고 언어 없이는 인간의 사고도 없다는 결론도 언어의 중요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받아들여졌다. 비트겐슈터인 같은 철학자가 언어의 중요성을 말하고, 노암 촘스키같은 언어학자는 인간은 언어능력을 타고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고들은 21세기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마치 세포라는 개념없이 의학을 하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 언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고란 무엇인가? 이런 말들은 우리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말같지만 실은 우리는 생물학을 무시하면서 이미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도 무시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언어와 사고란 결국 신경 세포의 활동 패턴일 수 밖에 없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뇌속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들의 활동패턴이 언어이고 사고라는 것이다. 그걸 누가 모르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같은 점을 생각하면서 처음의 질문을 생각해 보자. 언어없는 사고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서 언어와 사고를 모두 신경세포들의 패턴이라고 여긴다면 이 질문은 뭔가가 이미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 위해서 언어의 기원에서 시작해 보자. 언어의 기원은 여러 사람들이 연구했지만 그들은 언어 그 자체를 연구했다. 예를 들어 언어에는 수화가 있고 음성언어가 있다. 수화는 몸동작을 통해서 소통하는 것이고, 음성언어는 소리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인데 언어학자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언어들을 따로 연구하기 쉽다. 우리가 언어의 기원을 인간의 외적 행동을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언어는 어린애가 말을 배울 때처럼 누군가가 어눌한 말투로 이런 저런 단어를 썼던 것에서 시작된다고 여기기 쉽다. 혹은 그냥 인간은 언어행동을 하는 본능을 타고 난다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신경패턴의 차원에서 보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실은 모든 언어를 이루는 단어들은 결국은 뇌 안의 패턴이다. 즉 어떤 단어를 의미하는 손동작은 시각적 정보가 만드는 뇌 안의 패턴이 되어서 인식되고 기억되는 것이고, 어떤 단어를 의미하는 소리는 청각적 정보가 만드는 뇌 안의 패턴이 되어서 인식되고 기억되는 것이다. 서로 다르지만 결국에는 모두 그냥 뇌 안의 패턴이라는 것이다.

 

이 뇌 안의 패턴이란 개념을 이해하면서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보자. 언어 없는 사고는 가능할까? 그 답은 어떤 의미에서는 물론 그렇다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은 사고가 뭘 의미하는가에 따라 애매해 진다. 시각적 사고 (얼굴을 알아보기), 감각적 기억 (음식 냄새를 인식하기), 직관적 판단 (뭔가 이상하다고 주어진 상황에서 느끼기), 운동기억 (악기를 연주하기)같은 것은 언어 없는 사고이거나 적어도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들은 의식적인 사고 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언어 없는 사고는 누적되고 조합되기 어렵다. 그것은 의식화되고 기억되어져야 조합되어 사용될 수 있고 그 단계가 되면 이미 그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고가 되고 만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전개는 애매하고 복잡하다. 이같은 애매함과 복잡함은 언어나 사고같은 개념을 등장시키고 어떤 것이 더 원초적인가를 따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두 그냥 뇌 안의 패턴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질문을 보면 상황은 훨씬 단순해 진다. 정보는 신경망 내의 패턴이라는 생각은 적어도 요즘 인기있는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당연한 것이며 현재의 뇌과학에서도 상식이다.

 

언어의 기초인 단어는 뇌안의 패턴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패턴을 기억하고 후일 다시 인식한다. 그것이 조직화되면 우리는 그것을 언어로 인식하고 그런 조직화가 없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언어없는 사고다. 결국 언어의 기원은 정보의 저장에 있다. 어떤 특정한 패턴이 특정한 조건속에서 뇌 안에서 잘 재생되는 현상에 있다. 예를 들어 아빠라는 구술언어의 단어는 그런 소리가 뇌 안의 패턴으로 잘 저장되고 그리고 잘 재생되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특징은 물론 인간의 뇌가 가진 유전적 특징으로 인한 것이다. 지금도 인간은 그냥은 잘 못 외우는 정보를 음악을 만들면 잘 외운다. 노래 가사는 쉽게 외우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구술언어는 리듬과 구조를 가졌을 때 잘 외워지고 전승된다. 이게 다 무슨 말일까? 결국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뇌 안의 패턴이 잘 저장되고 잘 재생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언어와 사고는 서로 다른게 아니다. 둘은 거의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속에서 뇌 속에 여러가지 패턴들을 재생시키는데 그것이 사고고 또한 언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언어없는 사고가 가능한가라던가 사고가 어떻게 언어로 표현되는가같은 질문은 괜한 혼란만 주는 질문이다. 뇌 안에는 논리적 사고나 단어를 처리하는 프로세서가 작동하지 않는다. 뇌 안에는 뇌 세포의 활동패턴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언어를 발명하지 않았다. 동물은 언어를 쓰지 않는데 인간만 언어를 쓴다는 말도 혼란 스러운 말이다. 우리는 언어가 뭔지 정의도 안하고 애매하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신경세포의 활동패턴이란 모기도 가지는 것이다. 뇌속의 패턴이란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는 다 언어를 쓰고 사고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따로 언어나 사고에 대한 복잡하지만 근거없는 정의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정의는 어느 정도 편리함을 줄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음동의어의 반복을 만들 뿐이다. 인간에게만 있는 뇌속의 패턴을 언어라고 부른 후 인간만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 마나한 소리다.

 

그러나 인간과 다른 동물이 같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조상에게서는 뇌의 진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뇌속에서 생길 수 있는 패턴의 복잡성을 어떤 임계점 이상으로 증가시켰다. 조금 더 잘 기억하고, 조금 더 재생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언어에 대해서는 인간의 목소리는 침팬지와 다르기 때문에 언어가 생겼다는 주장도 있고 이 말은 틀리지는 않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쓸데 없는 혼란에 지나지 않는다. 뇌 따로 목소리 따로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주어진 환경속에서 소리를 매개로 해서 정보를 인식하고 저장하고 방출하는 능력이 진화를 통해 어떤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그렇게 되자 인간은 침팬지를 넘어선 것인가? 사실 대단히 넘어선 것도 아니다. 독립된 개체로서는 인간은 침팬지보다 그렇게 대단히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작은 차이는 사회적 차이를 만들었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큰 차이를 만들게 되었다. 원시적 언어의 복잡성의 차이는 침팬지가 만들 수 있는 사회적 협력과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사회적 협력 사이에 차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 당장 침팬지와는 비할 수 없이 지적인 생명체가 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도 충분치 않다. 사실 문명 이전의 시대에도 인간과 침팬지는 같지 않았겠지만 인간이 문자를 발명하고 쓰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21세기 현재에 우리가 목격하는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누적이었다. 도구나 어설픈 그림도 전부 뇌속의 패턴으로만 존재하는 정보를 외부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도구는 동물도 쓴다. 하지만 어떤 임계점을 넘은 뇌는 인간이 약간 더 도구를 잘쓰게 만들었다. 특히 그렇게 해서 얻은 도구에 대한 지식을 남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것이 시간이 지나자 결국은 농사를 시작하고 문자를 발명해서 문명시대를 시작시킨 것이다.

 

인간은 구술언어로도 복잡하고 긴 정보를 기억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문명 이전의 시대에도 인간은 침팬지같은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보 저장 기술은 문자 시대가 되자 비교도 안되는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책은 인간이 기억할 수 없는 분량의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에게 정보를 퍼뜨리는 훨씬 강력한 방법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지질학적 시간 스케일에서는 만년은 아무 것도 아니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기만 쳐도 몇억년이나 된다. 그래서 작은 차이가 만년 십만년이라는 작은 시간이 지나자 엄청난 차이를 생기게 되었다. 지구를 인간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 만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간의 유전자가 바뀌어서가 아니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정보를 저장해 왔기 때문이다. 한때 정보라는 것은 뇌 안의 패턴이었는데 이제는 엄청난 정보가 인간의 뇌 바깥에 저장된다.

 

이런 시대에 사고란 무엇이고 언어란 무엇일까? 그게 반드시 뇌 안의 패턴일까? 책을 펴고 그 안의 문자를 읽어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걸 토대로 생각하는 인간의 사고는 반드시 뇌 안에만 있는 것일까? 유전자 중심으로 인간을 정의하고 파악하면 우리는 몇만년전에 혹은 몇백만년전에 살던 원시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정보 중심으로 인간을 파악하면 우리는 인간이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보게 된다. 인간의 사고라는 것은 우리 두개골 안에 있는 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긴밀하고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인간 사회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집단 생명체같아 보인다. 우리는 그런 사고의 일부를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그같은 면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AI가 지금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환경을 연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훨씬 더 빠르게 더 많은 정보를 사회적으로 저장할 것이다. 그런 환경속에서 사는 인간의 언어와 사고는 당연히 지금과 같을 수 없다. 그것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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