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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아니라 동아시아라고 해야 한다.

by 격암(강국진) 2025. 8. 17.

최근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읽고 있습니다. 분명 좋은 책이지만, 한 가지 오류가 계속 신경을 건드립니다. 바로 '중국'이라는 단어의 오용 문제입니다. 유럽과 프랑스의 차이는 누구나 압니다. 하나는 대륙의 이름이고, 하나는 국가의 이름이죠. 그런데 서양 학자들은 종종 '중국'을 동아시아 전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는 단순한 용어 혼동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용어가 만들어내는 왜곡

문제는 서구 학계의 이런 용어 사용이 학문적 권위를 통해 '객관적 사실'로 굳어진다는 점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것은 1949년이지만, 마치 5000년 전부터 '중국'이라는 단일 국가가 존재했던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자를 영어로 'Chinese character'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알파벳은 'English letters'일까요? 한자는 상나라 시대(기원전 1600년경)부터 발전해온 동아시아 공통 문자인데, 이를 현대 국가명과 연결시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실제 역사: 분열과 다양성

동아시아 역사를 들여다보면 통일보다는 분열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진시황의 통일은 겨우 15년(기원전 221-206년)이었고, 그마저도 현재 중국 영토의 일부인 황하·양자강 유역만 지배했습니다. 삼국시대는 그 자체가 60년의 분열기였고, 이후 서진의 통일도 36년(280-316년)에 불과했습니다. 그 다음은 다시 300년 넘는 분열기가 이어졌죠. 

더 중요한 것은 문화적 다양성입니다. 동아시아는 크게 두 문화권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북방 문화권: 한국, 몽골, 만주, 일본 등. 교착어 구조(주어-목적어-동사)를 가진 알타이어족 언어 사용

남방 문화권: 한족 중심. 고립어 구조(주어-동사-목적어)의 중국어 사용

언어 구조의 근본적 차이는 이들이 별개의 문명에서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중국 역사의 상당 부분은 북방민족의 지배기였습니다. 원나라(1271-1368)는 몽골족이, 청나라(1636-1912)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였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청나라 영토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한족 중심 역사관을 고수하는 모순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국가공동체로서의 중국이 몇천년된 역사를 가진다는 주장은 허구인 겁니다. 

현대적 함의와 위험한 미래

이 문제는 단순한 학술 논쟁이 아닙니다. '동아시아=중국'이라는 잘못된 등식은 현대 중국의 패권주의적 역사 해석을 정당화합니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김치나 한복을 중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류의 부상은 이런 인식에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하고,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으면서, 서구인들도 동아시아가 '중국'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서구인들은 아시아인을 보면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이냐고 물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허구적 개념의 가장 큰 위험은 파시즘적 팽창주의를 정당화한다는 점입니다. 티베트, 신장위구르, 내몽골은 역사적으로 독립된 문명권이었는데도 '고유한 중국 영토'라고 주장합니다. 이미 960만 평방킬로미터라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고도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피해의식을 조장합니다.

이는 1930년대 독일과 유사합니다. 게르마니아라는 허구적 개념으로 유럽 전체에 대한 지배욕을 정당화했던 것처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구호 아래 끝없는 팽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이라는 단어를 동아시아라는 지역명처럼 쓰는 것은 또다른 히틀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용어는 단순한 명칭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을 규정하고, 때로는 왜곡합니다. '중국'이라는 용어의 오용이 만들어내는 역사 왜곡과 현실적 위험을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동아시아는 동아시아이고, 중국은 1949년에 건국된 한 국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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