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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나를 바꾸는 타인, 타인을 바꾸는 나.

by 격암(강국진) 2025. 8. 23.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로 일반적으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너도 물들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은 좀 더 일반화될 수도 있다. 우리는 결국 스스로 홀로 존재하기 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서 정의되고 변화하는 존재다. 손을 젖게 하고 싶지 않다면 물을 멀리해야 한다. 물속에 있으면서 몸이 젖지 않을 방법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정도의 문제일 뿐 주변 사람을 바꾼다. 그리고 남도 나를 바꾼다. 누군가가 나를 볼 때마다 나에게 화를 내고 나에게 폭력을 저지른다면 나는 그것에 당하는 방식으로건 그것에 항의하거나 피하는 방식으로건 어떤 식으로건 그 사람에게 어떤 피드백을 주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나도 변하지만 그 사람도 조금씩 변한다. 우리는 이것을 타인이 타인으로 유지되는데 있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떤 일을 같이 하고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정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자식이 없이 아버지가 될 수 없고 남편이 없이 아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타인은 나를 나이게 하고 나는 타인을 그 사람이게 만든다. 

 

그렇지만 계속 말했듯이 정도의 차이가 있다. 정서적이건 물리적이건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사람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적어도 그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나에게 바짝 붙어서 쉴새없이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나를 나이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 남학생이 나에게 특별히 나쁜 일을 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 학생은 인기가 있는 학생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왜냐면 나는 그 학생보다 인기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그 남학생을 좋아할 수도 있으며, 결국 그 남학생은 나로 하여금 왜 나는 인기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그 남학생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이같은 것은 이렇게 써놓고 보면 모두 자명한 것이지만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이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누군가가 나를 억압한다고만 생각하지 내가 그 사람을 억압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을 정해 놓고 뭔가 불편한게 있으면 자꾸 타인을 바꾸려고만 하거나 나를 바꾸려고만 한다. 이것이 타인과 나의 상호작용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은 종종 잊혀진다. 

 

그걸 잊지 않는다면 뭐가 달라질까? 그걸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나 타인을 바꾸기 전에 나와 타인간의 적절한 관계, 적절한 거리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계속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바뀐다고 말했지만 사실 반대의 말도 옳다. 사람은 누구나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이거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그걸 요구해도 그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니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내가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노력은 종종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그걸 요구하는 사람은 간단하게 왼발을 오른쪽으로 한뼘쯤 움직이는 것처럼 쉽게 말하지만 그 사람으로서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나름의 누적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을 반성한다면서 외부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이리 저리 바꾸려고하는 것도 그렇다. 반성이 나쁜 것은 아니고 자신을 계속 바꿔가야 하겠지만 외부에서 무슨 요구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이리 저리 바꾸는 사람은 일종의 자기학대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사는 방식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리저리 자꾸 양보만 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목을 스스로 조이는 꼴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간의 거리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서로 맞추고 변하려고 노력도 해야겠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편안하게 공존할 수 있는 거리로 관계를 조절하는 일이다. 우리는 때로 사랑에 빠지고 좋은 친구를 만난다. 부모님이나 친척과도 친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때로 거리 따위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굴지만 그런 기간이 길어지면 문제가 대개 생기게 된다. 만약 여러분이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면 사실은 상대방이 느끼고 있을 수 있다. 가까워짐으로 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변화의 압력을 가하게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데도 그걸 무시하는 것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진다. 

 

너무 멀어져서 서로 섭섭하게 되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서로를 바꾸는 부당한 압력으로 변한다. 하지만 너무 가까워져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그것도 마찬가지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부분은 이런 것에 있어서 대개는 악의가 없으며 실은 선의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명절때 결혼하지 않은 청년이나 처녀가 제사에 갔더니 온 친척이 모여서 너는 뭘 하냐, 사람 소개 시켜 줄까, 너는 왜 이렇게 사냐라고 말해서 곤란했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이런 일은 친척들의 무신경함에도 일부분 원인이 있지만 다른 부분적인 원인은 악의가 아니라 순수한 관심이고 선의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주 자주 절박해 진다. 물에 빠지면 주변 사람들을 붙잡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가까워지면 절박할 때마다 주변 사람을 붙들기 쉽다. 내가 물에 빠지려고 하는데 바로 옆에 서있는 사람이 그걸 붙잡아 주지 않으면 섭섭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섭섭함은 잘 생각해 보면 착각인 경우도 많다. 누군가의 옆에 붙어서 그 사람에게 계속 뭔가를 요구만 하면서 오히려 섭섭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은 그냥 가깝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든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기의 사정에만 정통하다. 자기가 절박한데 나를 왜 안 도와주냐고 섭섭할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타인의 절박함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기에게는 잘 던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행복하기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만 재수가 없고, 나만 절박하다. 이런 일은 아주 흔하지만 정도가 심한 경우도 있다. 그러면 마치 재벌급 부자가 가난뱅이가 가진 한그릇의 밥을 보면서 욕심도 많다고 욕하는 것처럼 된다. 태연하게 남의 인생을 망치고 비웃음이나 날릴 수도 있다. 

 

결국 두 사람이 정말로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많은 사랑만 필요한게 아니라 넓은 사고의 폭이 필요하다.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호들갑떨면서 친한 척 해봐야 그 관계의 진실은 비참하기만 할 뿐이다. 그냥 서로 빼앗고 뺏기는 약탈적 관계랄까. 그래서 학폭을 저지르는 학생들도 걸핏하면 자신이 피해자와 같이 놀았을 뿐이라고 말한다지 않는가.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세상은 넓고 넓다. 그래서 내게 당연한 모습은 절대 보편적으로 당연하지 않다. 초등학생에게 아침마다 일어나서 회사에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는 어른은 어리석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초등학생이 어른의 세계와 욕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이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를 철없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초등학생에 비하면 쓸데없는 욕망과 허세로 채워진 자신의 마음을 그 어른이 알아보지 못한 것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을 가르치기 위해 어린애를 교육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렇게 영향을 주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불행한 것은 그런 요구는 꼭 말로 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때로는 존재 그 자체가 그런 요구를 한다. 결국 한계는 있지만 사려깊은 선택과 행동이 필요한 문제다. 그런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게 된다. 그러므로 근묵자흑이라는 말은 자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상냥해지기 위해서 기억해 둬야 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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