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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삶은 전쟁일까?

by 격암(강국진) 2025. 8. 24.

우리는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즐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연히 어떤 철학을 그로부터 흡수하게 된다. 철학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다르게 말하면 어떤 환경의 인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오늘 말할 그 환경이란 전쟁상황 같은 극한의 상황을 말한다. 그러니까 드라마나 소설의 배경이 시스템이 무너지고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죽이며 극한으로 몰리는 그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재미를 느끼기 더 쉬운 면이 있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는 무엇과 무엇의 싸움에 대한 경우가 많고 그런 싸움때문에 여러가지 일들이 생겨나는 것을 말하곤 한다. 더구나 싸움이라면 그걸 전투 장면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아서 이야기의 재미를 증가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흔한 뱀파이어 이야기는 뱀파이어 종족과 뱀파이어 헌터의 싸움을 그리는 것이다. 요즘 인기가 많다는 일본 애니 귀멸의 칼날은 뱀파이어 이야기의 일본판 변형으로 역시 오니와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다른 인기작인 케이팝 데몬헌터스도 악마와 인간의 싸움을 그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모든 이야기는 크고 작은 흔적을 우리에게 남기는데 이런 싸움에 대한 이야기는 세상을 전쟁터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그 이야기 속의 인물들의 정서에 공감하면 할 수록 그렇게 된다. 그런데 파병되어서 실제로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이 은퇴하면 겪는 병이 있다. 그것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소위 PTSD다.

 

PTSD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으로 하여금 그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는데도 그 극한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니까 평화롭게 사는 사람에게 뭔가가 쾅하는 소리는 그저 작은 소음이지만 PTSD 환자에게는 총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 사람은 그런 소리를 그렇게 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 사람은 전쟁터에서 돌아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PTSD 환자를 생각하면서 세상을 보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PTSD 환자를 떠올리게 생각하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이 세계가 약육강식의 논리가 작동하는 세계이며 사악한 악당들이 우리를 공격하니 우리도 강력하게 방어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북한에서 탈북하여 남한으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래 보인다. 그들은 어쩌면 독재가 만든 세상에 대한 PTSD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TSD 증상의 반대에 해당하는 것을 나는 평화 탄핵 집회에서 본다. 평화로운 탄핵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믿음에 차있다. 그러니까 줄도 잘 서고 쓰레기도 줍는다. 욕설과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생각에 차있다. 그래서 몇십만명이 모여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다시 문화 컨텐츠로 돌아가면 어디든 싸움의 이야기는 나오는 것이니 그런 걸 금기시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나는 어떤 종류의 문화적 검렬을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뭐든지 정도의 문제가 있고 우리는 뭔가를 소비하면서도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컨텐츠가 뭔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양의 뱀파이어 이야기도 물론 폭력적 전쟁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는 싸움은 어딘가 뒤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일상은 평화로운게 흘러간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일이 많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같은 애니에서도 싸움은 은밀히 진행되고 일상은 그저 감동적인 콘서트같다.

 

귀멸의 칼날이 극찬을 받지만 약간의 극우논란이 있는 걸로 안다. 그런 문제들은 각자 판단할 일이지만 나는 화제가 되었던 몇몇 이야기와는 다른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이 영화는 러일 전쟁 직후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직후의 세계 즉 제국주의 일본이 팽창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 자체는 판타지지만 그래도 그 시대적 배경이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다. 그래서 귀멸의 칼날은 비록 이야기속이지만 세상이 전부 전쟁속에 있는 상황을 그리는 면이 있어 보인다. 즉 평화는 없으며 모두가 갑자기 비참한 비극을 겪을 수 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칼을 들어야 마땅하다. 심지어 공격을 하는 오니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과거를 가진다는 점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남한의 병사는 물론 북한의 병사도 나름의 이유와 삶을 가진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만들 것이다.

 

세상은 특히 21세기의 한국은 물론 많은 문제들이 있고, 사람들이 죽고 죽이기도 하는 세상이지만 결코 전쟁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세상이 아니다. 문제는 많지만 그 문제를 이야기하고 풀어나갈 여유가 없지는 않다. 윤석렬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처럼 엉망진창인 정권들이 있었어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다. 세월호 비극이나 이태원 비극의 희생자들은 그 정권들이 실제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할수도 있고 그것은 사실이며 윤석렬은 아예 군사독재를 하려고 군인을 국회로 보냈지만 그래도 한국은 전쟁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평화로운 집회가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꼭 귀멸의 칼날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그 특정한 영화에 대해서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질서가 무너진 전쟁터처럼 그리는 컨텐츠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세상에는 전쟁이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나 이스라엘은 현실이 전쟁터니까. 다만 내가 말한 PTSD를 연상시키는 철학을 퍼뜨리는 컨텐츠가 너무 양산되지 않았으면 한다.그걸 소비할 때 약간의 준비를 해줬으면 한다. 현실의 한국에 대한 믿음과 연결이 약해지면 우리는 문화컨텐츠를 통해서 PTSD 증세에 빠져들 수 있다. 이 세상은 그냥 귀신이나 악마뿐이고 우리는 정신없이 그것들과 싸워야 하고 그걸 미워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빠져들면 안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우경화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이런 현상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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