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어떤 시대가 왔을까? 텔레비전을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들이 스타가 되는 시대? 그게 꼭 틀린 건 아니지만 사실 더 큰 건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전파한 영화배우나 정치인들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AI의 시대라고 하면 AI 개발자가 스타가 되는 시대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그래서 AI에 대한 기술적인 세부사항을 공부하거나 코딩을 공부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이해로 가는 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AI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무엇이건 누구도 한가지는 부정하지 않는다. AI는 이제까지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기술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가능성이 크게 늘어난다는 AI의 시대에 우리는 역사를 돌아보고 소프트 파워와 문화의 힘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진 말이지만 소프트파워라는 단어를 잠깐 소개해 보자. 소프트 파워는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조세프 나이가 주장한 개념으로 경제력이나 군사력같은 하드 파워 대신 매력, 설득, 가치 공유를 통해 타인이나 타 국가를 영향력 아래에 두는 힘을 말한다. 조세프 나이에 따르면 소프트 파워는 주로 세가지 요소에서 나온다.
- 문화: 영화, 음악, 예술 등 매력적인 콘텐츠.
- 정치적 가치: 민주주의, 인권 같은 이념적 매력.
- 외교 정책: 공공 외교나 국제 협력으로 쌓는 신뢰.
제국주의의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AI 기술의 힘을 생각하면 우리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소프트파워가 하드파워와 함께 작동할 때 하드 파워가 효과적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소프트 파워가 하드 파워를 압도하는 미래가 올 것이다.
근대화 이전의 먼 옛날에는 국가를 지키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역시 군사력이었다. 군사력이 약하면 결국 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고 상업이 발달하자 군사력이 경제력도 만들어 내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근대화 이후의 제국주의였다. 영국의 함대는 식민지를 만들고 그 군사력을 경제력으로 만들어 낸다.
그런데 기술과 시장이 더욱 발달하자. 군사력과 경제력의 관계는 역전된다. 군사력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경제력이 군사력을 만들어 낸다. 돈이 없으면 무기도 살 수 없고 전쟁도 계속 할 수없다. 이제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남의 나라를 침범해서 약탈하고 부자가 된다는 발상은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에 시장을 거스르면 경제력이 약화되고 그 결과 군사력도 약화된다. 이걸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예는 북한일 것이다. 북한은 군사력 기르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북한은 1970년대만 해도 한국보다 잘살았다. 하지만 남한과의 경제력 차이가 수십배에 이른 지금 남북한 간의 군사력 비교는 민망한 일이다. 물론 지금도 북한은 안보에 대한 위협이지만 한해 한해가 갈수록 두 나라간의 군사력 격차는 엄청난 속도로 벌어진다. 산업 기반이 다르고 남한이 쓰는 국방비가 북한의 1년 예산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같은 군사력과 경제력 사이의 역전은 제국주의 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눈에는 믿기 힘든 일일 것이다. 나라는 군대가 지키지 상인이 지키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누가 뭐래도 나라는 경제가 지킨다. 군사력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라 경제가 군사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는 나라는 소프트파워가 지키지 경제력이 지키는게 아니라는 문장을 비웃어야 할까? 실제로 봉준호나 BTS나 헌트릭스가 나라를 지킨다는 주장은 지금 현재로서는 우습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AI가 강력한 개혁의 힘을 발휘할 거라는 사실과 경제력과 군사력간의 역전현상을 생각하면서 고민하면 이 문장은 웃기만할 일은 아니다.
사실 AI 시대를 맞이해서 국가 공동체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국가를 지키는 기본적인 제도는 조세제도와 화폐발행권이다.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고, 화폐를 정부가 아니라 누군가가 마음대로 찍어낸다면 그 나라는 유지될 수가 없다. 그런데 암호화폐같이 여러가지 지불수단이 등장하게 되니까 이러한 제도들이 도전받고 있다. 물론 그래서 정부는 열심히 새로운 제도를 고안해 낸다. 하지만 이걸 생각해 보라. 정부의 제도는 인간이 고민하고 심리해서 만들어 낸다. 그게 기술적 발달을 쫒아갈 수 있을까? AI의 시대에? 상상도 할 수 없던 새로운 지불수단을 만들고, 새로운 형태의 소통형식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엄마가 아들에게 밥을 해주는 것에 세금을 매길 수 없듯 정부는 많은 일들에 대해 세금을 매길 수 없을 것이다. 이건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나서서 기술적 발전을 금지하면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어서 망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 정부가 나서서 스테이블 코인을 보급하겠다는 일이 벌어진다. 아마 10년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믿기 힘들어 했을 것이다.
이런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가 열리고 그 가능성이 행복한 미래를 약속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을 위협하는 시대에 뭐가 가장 중요한 일일까? 그건 당연히 신뢰다. 할 수 있어도 믿어야 할 수 있다. 하고 싶어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믿을 수 없으면 있는 기술도 현실화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프트파워가 경제력을 뛰어넘는 미래가 보인다. 한 국가가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강력한 신뢰를 가질 때 즉 강한 소프트파워를 가질 때 인력과 자본은 지금 굉장히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훨씬 더 빠를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적 친숙함,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 외교적인 안정성이 존재할 때 그 같은 공동체는 아주 큰 경제력을 빠르게 손에 넣을 가능성이 있다.
군사력의 시대에는 군사력이 경제력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경제의 시대에는 경제가 소프트파워를 상당 부분 만들었다. 세계 최고 경제 국가는 미국이고, 세계 최고 소프트 파워 국가는 미국이다. 그게 아니라도 부유한 선진국들이 결국 소프트 파워에서도 강국이었다. 그러나 그같은 추세는 지금은 사실이 아닌 것같다. 중국의 경제력을 생각하면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높이 평가되지 않는다. 중국의 시장을 탐내는 사람도 중국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사이에 낀 한국인들 중에 미국보다 중국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중국은 국민투표로 대통령을 뽑지도 않는 나라다.
사람들은 AGI가 나오면 모든 일이 해결될거라고 생각하거나 중국이 국가적인 노력을 다해서 AI 개발에 앞장서면 AI 시대에 부유해 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은 강력한 AI를 개발해도 그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인터넷의 힘도 제대로 다 쓰지 못한다. 정부가 검렬을 하고, 부패로 기업을 망가뜨린다. 인터넷이든 AI든 정보 소통이 핵심인데 정부가 스스로 데이터 소통을 막고자 한다. 그러니 한계는 금방 닥쳐올 것이다.
다른 시대처럼 AI 시대도 여러가지를 요구한다. 어느 한가지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AI 시대는 소프트파워의 시대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천년전쯤에는 소프트파워보다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중요했지만 백년뒤에는 소프트파워가 다른 모든 하드파워를 압도할 것이다. 그리고 10년뒤나 20년뒤에도 이미 그 중요성은 막대할 것이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던 천년전쯤에는 사냥잘하고 싸움잘하는 사람이 지도자 다운 사람이었을 수 있다. 경제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모든 사고를 돈을 중심으로 한다. 돈 잘버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좋은 지도자란 국민들을 부자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군사적 평화가 당연하기 때문이다.
시장 시스템이 당연해 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쩌면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그 시대에 하드 파워는 마치 텔레비전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매력과 설득력 그리고 가치 공유를 통해 남에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여러 사람이 공감하기만 하면 그것을 현실로 만들 기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가장 소중한 것은 그 공감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다. 그 능력만 있으면 경제력이건 군사력이건 다른 능력들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여겨질 것이다.
이같은 전망은 요즘 특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트럼프 정부가 이끄는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매우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매력은 줄었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전처럼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외교는 우방과 하는 외교가 아니라 강도가 돈을 내라고 협박하는 것같다. 어쩌면 중국처럼 트럼프의 미국도 AI의 힘을 제대로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다. 상황이 더 심각해 지면 우리는 히틀러 시대에 유럽의 지식인들이 유럽을 탈출하던 것을 또다시 보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미국이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전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같다. 이는 세계적 위기이지만 동시에 한국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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