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미국과 한국에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이 일의 배경에는 2008년 경제위기를 예언했던 미국 경제학자 루비니가 AI 거품을 이야기하고, AI가 실제로는 그렇게 잘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일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AI의 가능성이 과장되었다기 보다는 우리가 AI를 잘못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런 역사적 상상을 해보자. 마차 회사가 자동차 산업을 지배하고 있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할 수록 마차라는 상품은 팔리지 않게 되기 때문에 마차 회사로서는 자동차를 빨리 보편화시킬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역사적 상상이 아니다. 지금도 전기차 산업에 투자하는 대부분의 회사가 기존의 내연기관차 회사들이라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본래부터 전기차 회사였던 테슬라가 전기차를 만드는 것과 기존의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와이브로 라는 인터넷 서비스를 주관하는 회사들은 기존의 인터넷 서비스를 팔고 있는 회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와이브로 서비스를 독점한 회사들은 그걸 보급하는데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5G와 4G 서비스가 비슷한 입장에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통신이 민영화된 이래 한국이 가졌던 인터넷의 우위는 거의 사라졌다. 미래 서비스로 빠르게 전환하는게 아니라 제자리 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AI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니까 어떤 AI가 만들어야 하는가는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에 의해서 기본적으로 결정된다. 이같은 사실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AI 개발이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시장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앞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느끼게 된다.
아래에 더 말하겠지만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회사들은 AI가 충분히 발달하면 대체될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회사들이 AI 개발의 선두에 서면 AI가 풀어야 할 문제는 시대적 과제라기 보다는 미래에는 사라지고 쓸모없어질 회사의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AI가 큰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기득권은 그런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AI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노동자를 대체하는 기술로만 이해된다. 이것이 바로 기업의 문제다. 대부분의 기업은 그들이 전문화된 산업 자체는 그대로 두고 인건비만 줄이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물론 이것은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은 더 많은 일자리나 더 많은 권리를 원하지 자신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미래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AI에 대한 이같은 이해의 현실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AI를 정부같은 인간 공동체 중심으로 개발하는게 아니라 기업중심으로 시장중심으로 개발하는 결과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산과 플랫폼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자. 지금의 AI는 생산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 AI는 흔히 로봇으로 이미지화되고 노동을 인건비없이 제공하는 기계쯤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물론 AI가 가진 가능성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고 그게 제일 중요한 것도 아니다.
AI는 그보다 언어로 플랫폼으로 소통의 미디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구글, 아마존, 공유경제, 암호화폐, 넷플릭스 같은 단어들은 소통의 미디어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정보를 모으고, 유통시킨다. 그 정보가 상품에 관련된 정보이면 인터넷 상거래가 되는 것이고, 사람들이 가진 물건에 관한 것이면 공유경제에 대한 것이 되는 식이다. 빈방임대에 대한 정보를 유통시키면 그것이 에어비앤비다.
우리는 이미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지금의 세계에서도 많은 결정들은 인간에 의해서 내려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토마토가 농부의 농장을 떠나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위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직거래는 너무나 복잡한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중간상이라는 인간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잘라서 해결하고 물류가 빠르게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중간에 끼어드는 일은 현재로서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느리다. 그리고 이 부분들은 AI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다. 나는 이런 변화의 효과를 전화기와 자동교환기의 예로 설명하고 있다. 전화기가 있어도 자동교환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엄청난 수의 인간이 교환수로 일했어도 통화가 제대로 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일일이 판단해서 일처리를 하는 지금의 사회 시스템들은 정보 병목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을 해결할 자동교환기가 바로 AI다.
이것은 수 없이 많은 조직이 위협받는다는 뜻이고 이에는 지금 가장 부유한 회사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같은 변화도 그 시스템에서 일하는 인간의 실직을 의미하기는 한다. 하지만 소통의 미디어로서의 AI는 개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게 된다.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AI는 현재의 산업구조를 그대로 지키면서 인간만 대체하려고 한다. 이 차이는 아주 크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의 소통은 자본이든 인맥이든 토지든 가지고 있는 것이 작은 개인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고 그 개인이 전에는 혼자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해 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서비스를, 사람과 기술을 이어줄 것이다. 반면에 생산성을 위한 AI는 개인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로봇을 잔뜩 소유한 회사에 비해 개인은 아무 힘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로봇은 하드웨어다. 그러니까 개인이 대량으로 소유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소통의 AI는 마치 지하철이나 인터넷 서비스같은 사회적 인프라로 개인들을 강화하는 것이다.
세상을 진짜로 크게 바꿀 것은 소통의 방식이 변화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AI 붐도 LLM이라는 특수한 AI의 성공에 힘입은 것인데 LLM이란 인간언어에 특화된 AI다. 기본적으로 소통의 AI 인 것이다.
그래서 AI의 진정한 발전에는 사회의 특성이 크게 작동할 것이다. 계속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만 보는 사회는 AI의 진정한 힘을 일깨우지 못할 것이다. 그와 반대로 AI를 그 일부로 하는 사회적 인프라로 건설해서 개인과 AI가 융합되는 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사회는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중앙 정부가 AI를 사회적 인프라로 인식하고 사회 전체에서 정보를 빠르게 소통하도록 만드는데 집중한다면 AI의 현실적 의미는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인터넷의 역사가 어느 정도 암시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가장 먼저 개발한 것은 미국이지만 인터넷 역사의 초기에서 한국은 꽤 큰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인터넷을 한국처럼 열광적으로 먼저 썼던 곳이 없다. 어떻게 말하면 인터넷이란게 어떻게 쓰는 건지를 세상에 알게 한 곳이 한국이다. 나는 주커버그같은 사람이 한국을 보고 페이스북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인터넷 산업의 대중화에 있어서 한국보다 본래는 느렸었다.
지금에 이르고 보면 세계적으로 부유한 회사중에 인터넷과 관련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이것은 플랫폼의 변화다. 정보가 다르게 흐르니까 산업이 변했다. AI가 만들 가장 큰 변화도 이것이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 망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 우리는 진짜로 지능적인 즉 스마트한 망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 망이 모든 것을 연결할 것이다.
왜 한국은 미국보다 인터넷 사용에 열광적이었을까? 한가지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이유는 미국보다 정보의 유통이 후진적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아닌 신문, 잡지, 책, TV, 라디오등 기존의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효율적이면 사람들은 새로운 미디어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 시대가 오고 게시판에 글을 공유하는 시대가 오자 한국인들은 미친듯이 그것에 매달렸다. 신문 방송으로는 접할 수 없는 정보들과 기회들이 사이버 공간에는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글을 발표하고 그것이 나중에 책이되고 영화가 되었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신춘문예같은 기존의 평가 시스템이라도 통과하지 않으면 작가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은 기존의 패러다임에 깊게 빠져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데 오히려 느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AI가 가진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것이 AI 사용의 가치를 크게 높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에 가장 목마른 사회는 어느 사회일까? 이것은 반드시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국가적 차이에 관련된 문제다. 지금의 미국은 가장 중요한 가능성에 등돌리고 있다. 이것은 한국같은 나라에게는 큰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될 수 있다. AI가 가진 공공성과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의무교육처럼 단순히 시장에 맡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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