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이것 저것 개발을 해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는 웹앱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건 브라우저를 써서 정해진 주소로 들어가기만 하면 쓸 수 있는 것으로 그냥 홈페이지 같아 보이지만 들어가면 프로그램처럼 쓸 수 있는 겁니다. 제가 만든건 유튜브를 케이블채널처럼 볼 수 있게 만든 앱이었죠. 구조는 간단합니다. 제가 구독하는 채널들이 있고 그걸 클릭하면 채널의 동영상을 나열해 줍니다. 기능적으로는 유튜브 앱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해서 AI를 써서 하루저녁에 만든 3개의 프로그램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공개하면 좋겠지만 무료 vercel 서버로 돌아가는 거고, 무료 구글 api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100명 200명이 쓸 수도 있는 일반에 공개할 수는 없군요. AI 코딩으로는 정말 하루 저녁에 만들 수 있는 것이니 할 수 있는 분은 직접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걸 만들고 써 보면서 자명한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쓰는 도구가 정말 우리의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튜브를 쓰는 걸까요 아니면 유튜브가 우리를 쓰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상태에서는 유튜브가 우리를 쓰는 겁니다. 유튜브앱이 이런 저런 기능이 있다는 사실은 꼭 좋은게 아닙니다.
좋은 도구 혹은 우리의 진짜 도구는 어딘가 제자리에 있다가 우리가 어떤 필요가 생기면 자동적으로 등장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구는 사용자인 우리의 의도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죠. 도구가 우리를 휘두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도구는 유튜브앱처럼 대부분 회사가 제공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도구를 많이 쓰면 쓸 수록 당연히 회사는 돈을 더 벌죠. 때문에 회사가 제공하는 도구는 끝없이 최대한 노력해서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계속 나를 들고 못을 박아달라고 조르는 마법의 망치같은 겁니다. 아니 저주받은 망치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유튜브든 SNS든 우리는 그것들이 도구이며 우리가 사용자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인 겁니다. 적어도 좋은 도구는 아니지요. 계속 우리의 관심을 요청하는 도구이니까요. 사실 우리가 쓴다고 생각하지만 그 도구들의 진실은 그것들은 회사들이 돈벌게 해주는 회사의 도구인 겁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정말 많은 나쁜 도구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는 누군가가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구가 대부분인데 그때문에 그 도구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용자를 유혹하는 성질을 가집니다.
그 도구들은 마치 내가 캔디를 몇번 먹었다고 캔디를 좋아하냐면서 캔디를 계속 줘서 캔디 중독자로 만들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독자를 만들어야 그 도구를 더 쓰고 그래야 그걸 만드는 회사가 돈을 벌테니까요. 이런 면은 유튜브나 SNS가 아니라 후라이팬이나 에어후라이같은 물질적 도구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그걸 만든 회사는 사람들이 자기의 도구에 중독되어 예를 들어 하루 세끼를 전부 에어후라이로만 해먹기를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하지요. 책도 도구라면 출판사는 그 책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고 따라서 최대한 안좋은 책이라도 잘팔리게 하려고 합니다. 그건 당연한 노력이지만 덕분에 책의 소비자인 독자는 좋은 책을 알아보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여담입니다만 그래서 위장이 뇌의 도구인지 뇌가 위장의 도구인지는 말하기 나름입니다. 위장은 뇌에게 계속 배고프다고 하니까요. 뇌의 도구로서 위장은 별로인거죠. 사실 발생학적으로 보나 정보가 흐르는 양으로 보나 뇌가 장의 도구라는 설이 더 유력합니다. 모든 동물은 사실 장의 기원인 튜브에서 시작하거든요. 그리고 장에는 방대한 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장에서 뇌로 보내는 정보의 양이 뇌에서 장으로 보내는 정보의 양보다 10배가 많다고 합니다. 명령을 더 많이 내리는 쪽이 주인이라면 장이 뇌의 주인인 셈이죠.
제가 만든 웹앱은 단순히 구독채널을 보여주고 그걸 클릭하면 그 채널의 동영상을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이 앱은 나에게 동영상 추천을 하지 않고 나를 봐달라고 조르지 않습니다. 구독채널도 내가 직접 더한 것입니다. 그걸로 유튜브를 보자. 제 마음이 훨씬 편안하더군요. 왜냐면 기능이 없으니까 비로소 내 의지를 반영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있다가 내가 구독하는 채널을 보여주는 도구가 된 겁니다.
하지만 물론 사용자의 의도를 반영하는 좋은 도구라면 쓰기 편해야 합니다. 이 면에 대해서는 제가 언제나 말하는 AI가 등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AI도 도구를 씁니다. 클로드 는 mcp 서버라는 걸 쓰지만 따로 프로그램을 짜면 AI api가 각종 프로그램을 실행하게 도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AI와 소통을 하면 좋은 도구가 뭔가를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프로그램들에서는 그걸 쓰는 방법을 제가 익혀야 합니다. 그러니까 망치가 있다면 제가 망치를 찾아서 망치를 쓰는 법을 기억하면서 휘둘러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AI가 도구를 쓰는 상황은 마치 제가 못을 박아야겠다고 말을 하면 AI가 망치를 휘둘러서 못을 박는 상황처럼 됩니다. AI는 도구와 나를 잇는 신경처럼 작동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양한 도구를 갖춘 AI는 내가 뭘 하겠다고 말하면 알아서 적당한 도구를 찾아서 그걸 현실화시키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적절히 사용된다면 AI가 인간을 해방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도구로부터의 해방,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인간이 도구에 매여서 끝없이 자극을 받고 그것에 휘둘리는 세상에서 도구를 침묵시키고 인간의 의지에 따라 도구가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AI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튜브나 티비나 SNS같은 것이 우리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티비도 안보고 SNS도 일절안하며 유튜브도 보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래도 우리는 그런 도구를 씁니다.
마치 자동차에 익숙해 지면 몸이 약해지는 걸 알면서도 자동차를 쓰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약되는 것처럼 많은 도구들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용됩니다. 그걸 포기해도 된다는 사람들의 말이 꼭 틀린 건 아니지만 또한 그것이 우리를 어떤 단절로 이끈다는 것도 사실이죠. 티비는 많은 아이들을 어설프게 많은 것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불필요한 욕망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들은 티비와 같은 멀티미디어 채널을 통해 세상을 아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산골에서 어린이 답게 큰 아이가 반드시 더 똑똑한 건 아닙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면 제대로 된 도구의 사용, 제대로된 AI의 사용이란 어떤 것일가요? 옛날에는 서가에 가면 혹은 도서관에 가면 책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탐험하다가 괜찮아 보이는 책을 찾아서 그것에 빠져들었습니다. 책이 우리를 너무 자극해서 중독될 걱정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해온 것과 우리의 이런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의 생활은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정보채널을 쓰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AI와 대화해야 합니다.
AI와 대화하면서 궁금한 것, 관심있는 것을 찾다가 어떤 주제에 수렴하기 시작하면 AI에게 더 물어볼 수 있겠죠. 어떤 책에서 그런 걸 이야기하는지, 어떤 글을 읽으면 그걸 더 잘 알 수 있는지, 어떤 동영상이 나에게 그에게 대해서 잘 소개를 해줄지.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어떤 컨텐츠에 이르는 방식이 올바르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AI 자체가 똑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AI가 더 많은 도구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구글 뉴스 사이트에 가면 각종 뉴스가 우리의 관심을 얻으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AI가 구글 뉴스 검색과 연결되어져 있다면 우리와 이야기하던 AI는 우리의 관심사에 관련된 최신 뉴스를 검색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구글 뉴스 검색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정보 소스와 연결된 AI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AI는 우리를 쓸모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 겁니다.
정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뭔가를 아는 방법은 책이나 동영상을 보는게 아니라 직접 만들고 행해보는 것이죠. 어떤 요리에 우리의 관심이 도달했다면 레시피를 우리에게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 재료를 대신해서 주문해주고, 그걸 위해 필요한 도구도 마련해 주는 AI가 필요합니다. 로봇에 관심이 이르렀다면 당장 로봇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AI가 필요합니다. 여행을 가고 싶다면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해 주는 AI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AI가 그러니 아주 똑똑해져야 한다는 것은 전체 이야기의 절반에 지나지 않습니다. AI의 지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AI의 도구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비슷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AI를 쓰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에게 팔다리가 있어도 그걸 제대로 써야 우리는 달리고 뛸 수 있을 것입니다. 사고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던 사람이 재활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AI라는 신경을 더 많은 것들에게 연결시켜야 할 뿐 아니라 그런 상태에서 달리고 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팔이 있지만 팔을 쓰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AI가 이어주는 새로운 도구에게 잘 연결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어떤 의지를 가져야 하는 지도 모를 것입니다. 자기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날자는 의지를 가지지 못할테니까요.
지금의 우리는 AI를 그저 주체적 판단 능력을 가진 노예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내가 자동차가 없다면 개인운전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노예가 있어도 시킬 일이 없다면 그 노예는 실질적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건 마치 머리와 팔다리를 잇는 척추나 신경조직에게 그저 계산하고 생각하라고 말하는 머리와 비슷할 겁니다. 머리가 척추에게 너희가 내 노예라면 머리가 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도구가 사용자의 의지를 반영할 때 인간은 해방될 거고 비로소 조용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비로소 자기의 뜻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위장의 의지에만 휘둘리는 뇌가 되어 식탐에 빠져 힘겨워 하는 사람처럼 살지 않아도 될 겁니다. 모든 도구는 장단점이 있고 우리는 필요하기 때문에 부작용을 알아도 많은 도구를 쓰기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부작용에게서 벗어날 길이 보인다면 우리는 그걸 익혀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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