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같은 욕망과 충동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우리가 진화했던 수렵채집인의 환경과는 지극히 다른 인위적이고 문명적인 환경속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 이상의 생각이 필요하다. 먹을게 부족했을 때는 보이는 대로 먹어도 좋았지만 먹을게 많은 곳에서는 체중조절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능하고 가난해도 괜찮다.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는 우리는 반드시 무능하고 가난하게 되어있다. 이 세상은 이미 너무나 크고 복잡해져서 우리는 한없이 출세할 수 없고, 모든 일을 잘 할 수 없으며, 가지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을 모두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우리의 현실적 한계의 한쪽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노력해도 무한히 유능하고 부유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된다. 이 점이 더욱 중요하고 그것이 내가 이 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지적하려고 하는 것의 핵심이다.
나는 종종 악의 시작은 대개 지나치게 출세하려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즉 자기가 가진 능력보다 더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자리로 출세했기 때문에 우리는 악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의 예를 21세기 들어서 탄핵당한 2명의 대통령들에게서 극명하게 볼 수 있다.그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명예와 부를 즐길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평가하기에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로또에 맞은 것처럼 운이 좋은 것이었지만 그들은 만족하고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더욱 더 많은 것을 원해서 결국 대통령이라는 아주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올라서고 말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큰 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예는 대통령들같은 극단적인 경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뭔가를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하면서 살기 마련이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 역할도 없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거나 적어도 매우 드물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더 큰 역할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 욕망을 억누르고 적절한 수준에 머무는 것에 실패한다. 자연스럽게 일이 벌어지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
그 결과 우리는 탄핵당한 대통령들처럼 어떤 의미에서 악이 된다. 우리의 부족한 능력은 우리가 일을 대충 처리하도록 만들고, 우리의 과도한 소유는 우리를 더욱 바쁘게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부지런히 회의를 주재할 의도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그렇게 바쁘게 살아갈 의도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기회만 된다면 안간힘을 다해 그런 자리에 들어서려고 한다. 그런 허세를 부리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일은 나쁘게 흘러가기 쉽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은 뭔가 희생해서는 안될 것을 희생하기 시작한다.
출세욕에 가정을 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흔한 것은 자기를 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유와 역할에 우리 자신을 빼앗긴다. 오히려 우리는 흔히 그런 것이 우리라고 생각한다. 즉 내 재산이나 내 직위가 나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뭘 하든 멈춰서서 자신에게 내가 이런 것을 원하는지, 정말 매순간 나의 판단이 이뤄지고 있는 지를 물어볼 여유가 없다면 우리는 자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변할 수 있고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흔히 변한다. 그러니까 고양이로 태어났으니 평생 고양이로 살겠다는 식의 생각은 옳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고양이니까 고양이처럼 산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게 나자신으로 사는 것이고,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떤 소유, 어떤 지위에 대한 욕심으로 자기를 버리면 그때부터는 자기도 세상도 파괴하는 악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같은 것이 결코 야망을 버리고, 소박한 행복을 찾아라같은 메시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보기 드문 성공을 한 사람들은 모두가 아니라면 거의 모두가 남들이 하지 않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남들이 한 것과 똑같은 선택만 한 사람들은 큰 성공을 할 수가 없다. 큰 성공을 한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성공을 한 후에는 그들의 삶을 뒤돌아보면 그들이 단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대단한 성공을 이뤄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남들은 왜 그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왜냐면 그 길이 더 안정하고 빨라 보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성공으로 가는 길로 확신하는 길이라면 모두가 그 길을 가지 않을리 없다. 그러니까 지금 대단한 성공을 한 사람도 어느 시점에서 보면 더 성공하고 소유하는 길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기이한 선택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연아는 피겨선수로 역사에 남는 선수가 되었지만 그런 그녀가 성공하기전에 그 길을 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한국은 피겨계의 불모지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길을 갔다. 그나 그녀는 그저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했고, 고양이는 고양이 다운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남들이 하지 않은 선택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남들의 주목을 끌지 않은 채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다가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하는 선택만 한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았던 사람이 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 그녀는 악이 되지 않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울타리를 지키면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을 가지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지키면서 살 수는 있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고 불안하지 않게 살 수는 있었다. 탄핵당한 대통령들이 보여주듯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은 성공할 수록 불안해 하고, 불행해진다. 이미 그들은 자기의 성공을 즐길 감각을 잃어버린 상태다.
자기 다운 선택을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서 자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인정받았을 때 그 사람을 다른 사람이 이기기는 힘들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 생각도 없었던 시기에도 그 사람은 오랜동안 그걸 해왔기 때문이다.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란 마치 요즘 무슨 주식이 오른다고 하면 우하고 몰려가서 투자하는 사람과 같다. 이미 주식이 오른다는 말을 듣고 가서 주식을 사면 돈을 벌기 힘들다. 그것이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결국 자신을 알고 자신으로 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그런 방식이 어쩌면 세상의 인정을 받아서 객관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잃으면 우리는 결국 넘어지게 된다. 그건 마치 마라톤을 하는데 욕심을 내서 잠시 전력질주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얼마지나지 않아 우리는 결국 천천히 뛴 것보다도 더 느리게 가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무능해도 된다. 가난해도 된다. 우리는 모든 일에 유능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그것에 휘둘리기 쉽다. 그러니 가난한것도 괜찮다. 가난한 것에는 장점도 있다. 가지많은 나무 바람잘날 없다는 우리 속담은 사실이다. 내가 무능해서 너무 많은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게 아니다. 자기를 잃고 불행해지는게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잃어버리기 쉽다. 나태때문에 그렇게 되고, 쾌락때문에 그렇게 되며, 분노와 질투와 비교하는 마음때문에도 그렇게 된다. 그러나 그같은 일들로 자신을 잃고 나면 그때야 말로 우리의 인생은 끝장이 나고 만다. 죽을 때까지도 정신을 못차릴 수도 있다. 그것이야 말로 낭비다. 내 혀는 이미 마비되어 미각을 잃었는데 배가 터져 죽을 때까지 허겁지겁 입에 음식을 집어넣는 것은 나에게도 음식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살아야 한다.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철이 들어야 한다. 살기에 행복하기에 삶의 의미를 찾기에 충분한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귀중한 시간을 잘 음미하지도 못하고 그저 아득바득 더 가지려고 하고 남을 질투하고 미워하는데 시간을 쓰면서 살다가 죽는 것은 아까운 일이기 전에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죽기전에 어떤 사람으로 죽어야 할까? 우리는 모두 다르게 살지만 모두가 구도자로 살다가 죽어야 한다. 자기를 잃고 욕심에 눈이 머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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