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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댓가를 치루는 것과 희생을 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 아니다.

by 격암(강국진) 2025. 12. 17.

우리는 뭔가를 하자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 하나를 얻자면 어떤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안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부지런히 그렇게 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며 그것이 현명한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만원에 파는 것을 9천원에 살 수 있다면 아니면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우리가 주어진 상황에서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가 문제다. 예를 들어 만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여러분이 열심히 찾은 결과 9천원에 파는 곳을 찾았다고 하자. 그렇게 한 것은 정말 현명한 일일까? 반드시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이 새로운 장소를 찾는데 에너지와 시간이 든다. 그러니까 천원을 절약했지만 실은 그것도 어떤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때문에 돈을 잘벌고 바쁜 사람들은 가격을 깍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면 그걸 그렇게 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서 다른데 쓰는 쪽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가서 비싼 돈을 주고 외식하는 것이 꼭 그게 더 맛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때로는 요리하고 치우는 데 쓰는 에너지와 시간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 에너지와 시간을 아껴서 자기 일을 하는 쪽이 더 가치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른 측면도 있다. 우리가 들인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계산은 장기적으로 보면 또 달라진다. 이번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좋은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그 좋은 가게를 그냥 쓰면 되기 때문에 천원을 깍기 위해서 들인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평가는 장기적으로 보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것이 누적되면 그것은 단지 천원의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이란 무엇인가? 여러분이 매일 매일 새로운 도시로 가고 있으며 그 도시로 돌아올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도시에서 좋은 가게를 찾는다고 해도 그 가게를 또 사용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는 생각보다 흔하다. 우리의 삶이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하면 우리가 어떤 것을 시간을 들여서 규칙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의 가치는 줄어든다. 그러니 어떤 문제에 대한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딱 들어 맞는 정답을 찾으려고 너무 노력하면 그 노력은 사치스럽고 낭비가 심한 일이 될 수 있다. 다음번에는 그게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필요한 목적에 적당한 곳을 찾으면 되는 것일 수 있다. 만원이 아니라 9천원에 그걸 살 수 있으면 좋지만 만원정도면 내 예산과 예측에 그다지 문제가 없다면 그걸 사서 빨리 다음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더 좋은 일일 수 있다.

 

이것은 천원 아끼기라는 사소한 행동이 실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가를 알려주는 시작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새로운 장소를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나아가면 이야기는 훨씬 더 복잡해 진다. 예를 들어 두 가게가 있다고 하자. 하나의 가게는 된장찌개를 만원에 파는데 옆의 가게는 9천원에 판다. 그럼 9천원에 파는 가게가 당연히 선택되어야 하는 집일까? 그럴리가 없다. 만원 짜리 된장 찌개 백반과 9천원 짜리 된장 찌개 백반은 분명히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놓고 가격만 보면서 그걸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두 가게를 다 먹어보고 그것도 여러번 먹어보고 이 두 개의 백반을 비교해야 할까? 이렇게 되면 천원을 아끼는 건가 엄청난 돈을 낭비하는 걸까? 많은 상황에서는 이게 가능하지 않다.

 

설사 티비같은 공산품처럼 그게 정확히 같은 물건이라도 이런 문제가 남는다. 식당에서 파는 식사는 당연히 요리의 질은 물론 가게의 분위기등 여러가지 평가할 것이 많지만 삼성 티비를 이 집에서는 백만원에 팔고 저 집에서는 90만원에 판다면 같은 물건이니까 판단하기가 훨씬 쉽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고 하더라도 만약 어떤 가게에서 백만원짜리 이 티비를 50만원에 판다면 우리는 이게 횡재라고 하면서 무조건 사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좋은 가격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이거 혹시 사기당하는거 아닐까? 배달이 안오거나 티비가 실제로 오는 시간이 너무 늦어진다거나 하는 또 다른 댓가를 치뤄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서 싼거 아닐까?

 

이렇게 뭔가에 대해서 댓가를 치루고 희생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일이면서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떤 자기만의 방식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다툼과 싸움이 생기기 쉽다. 한쪽에서는 댓가를 적게 치루려는 합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데 다른 쪽이 보기에 엉뚱한 것에서 비용을 줄이려는 그런 노력이 바로 큰 댓가를 치루게 만든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보험비는 낭비라면서 보험을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사고는 결국 나기마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게 더 큰 지출로 이어질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현실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개 불확실해서 도박과 같다. 뭔가를 선택하는 일은 위에서 말했듯이 자세히 생각하면 우리가 주어진 시간내에 정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아니 정답이란게 정의가 안된다. 그런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아니 된장찌개가 만원이 아니라 9천원이면 당연히 9천원짜리를 먹어야 이득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단순화와 획일화를 통해 결코 같을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당연히 같다고 여긴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단순화와 획일화는 지적하고 깨닫게 하기가 대개 쉽지 않다. 차를 좋아하는 남자에게 차이가 있는 두 대의 차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똑같아 보일 것이고,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제품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똑같아 보일 것이다.

 

그러니까 희생을 하고, 댓가를 치루는 것은 낭비도 아니고 바보짓도 아니다. 누구나 이 문장에 대해서 내가 방금한 것처럼 어떤 설명을 더하지 않는다고 해도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그걸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동의하는가가 문제다. 우리는 그걸 각자의 의미로 이해하고 동의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인생의 의미라고 생각하는 구도자에게는 천원을 아낀다라던가 티비를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 자체가 크게 다를 수 있다. 취업에 합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절박한 취업생의 생각은 어쩌면 회사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사람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극단에 이를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게 얼마전에 나왔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주제였다. 그 영화는 그걸 보는 사람에게 그게 꼭 그럴 일이 아닌데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점을 느끼게 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그럼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정답은 없으니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그걸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말했듯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각자의 상황과 입장은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환경은 서로 다르면서도 어떤 같은 측면을 공유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환경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한국인들이라면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미시적으로 보면 우리는 다 다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공통점이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가 18세기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의 보편성이 우리 철학의 보편성을 정당화한다. 그 환경이란 것도 결코 우주적이고, 시간에 무관한 보편성이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시공간적으로 유한한 존재이므로 그래도 여전히 주어진 환경속에서 유효한 전략이 있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이 세상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전략은 우리는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하루 하루를 하나의 게임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고, 언제나 좋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 결과가 좋으면 그건 다 내가 선택을 잘한 탓이고, 결과가 나쁘면 그게 내탓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은 안정적이기 시작한다.

 

동전은 한번 던져서는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동전이 대칭적이라면 수 없이 던지면 앞면이 나오는 경우가 절반에 수렴할 것이다. 한번 한번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삶의 예측 불가능성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번 던지면 어떤 고정적인 법칙이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안정성이다.

 

우리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가? 그에 따라서 결과도 달라지고 우리가 치뤄야 하는 댓가도 달라지며 기뻐하고 실망하는 일도 달라진다.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유한한 우리가 그래봐야 유한하지만 그래도 더 넓고 큰 시야로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불안하고 절망적인 기분을 제거해 갈 수 있다. 스스로를 구도자로 여기는 사람은 한번의 성공과 실패에 기뻐하고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구도자로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치뤄야 할 댓가는 뭐고, 어떤 것이 진짜로 가치있는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작은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과는 다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돈이나 취업이나 명예나 연애따위는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구도자니 뭐니 해도 칼에 찔리면 아프고 굶으면 배가 고프다. 그래도 우리는 코앞의 게임의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다가 나중에 돌아보면 어쩔 수가 없다라는 영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터무니 없는 댓가를 치룬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리는 일상을 무시하지 않지만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있고 그걸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그걸 메타인지라고 부른다. 나는 지금 그 초월을 가르켜 구도자의 태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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