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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인간을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by 격암(강국진) 2025. 11. 24.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에게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가능성, 인간의 선함에 대해서 매우 낮은 기준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 그들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그건 마치 사기꾼과 조폭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저 조금 의리있고 조금 양심있는 사람도 있다는 식의 말이랄까. 그들은 인간이 이기적이고 어리석다는 것을 아주 깊이 확신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도 낮다. 아니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인간에 대한 가장 생생한 예이다. 어쨌건 누군가가 세상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도둑이나 사기꾼으로 본다면 자기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옆의 사람이 나에게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도 나를 지킬 수 있다. 옆 사람이 나를 무시하려고 한다면 나는 내가 잘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은 그걸 약점으로 인식하고 공격할 것이다. 인간에대한 기대치가 낮은 사람들은 남을 무시하고 쉽게 판단한다. 인간이란 결국 아주 얄팍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이에 달려드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인간에 대한 기대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제껏 사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정말 다 사기꾼이고 깡패였다면 그 사람이 인간이란 본래 다 그렇다라고 믿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것은 경험적 진실이다. 그러니까 불행히도 사회적으로 질서가 무너진 지역 즉 윤리가 무너지 지역의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쉬울 것이다. 말로는 우리가 형제라고 말하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지만 뒤로는 서로를 배신하는 일이 당연한 사회, 부모와 자식도 서로를 이기적으로 배신하는 사회에서는 앞에서 얼마나 친근하게 구는가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서로를 배신할 것이다. 배신하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다는 것을 계속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직업도 무시할 수 없다. 검사같은 사람들은 직업상 범죄자를 주로 만나는 데다가 상대방을 의심하는 것이 직업의 한 측면이다. 범죄자가 와서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걸 다 믿는 사람은 검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믿는 것이 검사라는 직업의 한 측면이다. 계속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만 보다보면 모든 남자가 가정폭력범으로 보이고, 꽃뱀만 계속 보다 보면 모든 여자가 꽃뱀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검사들이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기가 쉬울 리 없다. 뒤집어 말하면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검사를 하면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고통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없애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괜찮은 사람을 봐도 잘 믿지 않는다. 그리고 종종 그 괜찮은 사람을 타락시키고 망하게 하려고 한다. 그 사람이 안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왜냐면 그 괜찮은 사람의 존재는 본인의 믿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 믿음에 따라서 살아 왔다. 이제와 세상에 괜찮은 사람이 존재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그 괜찮은 사람을 유혹해서라도 그 사람이 안괜찮다는 것을 밝혀야 마음이 편안하다. 선한 사람은 선한 척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저 잘난 척하고 싶어서,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지극히 어리석거나 혹은 정말 이상한 이데올로기에 미친 인간일 뿐이다. 인간은 모두 쓰레기이어야만 한다. 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환경이 인간을 완전히 결정해 버린다는 말을 믿는다. 왜냐면 그들에 따르면 인간은 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다. 가난한데도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있어서는 안된다. 3류 대학을 나왔는데도 지혜로운 인간은 있을 수 없다.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않는다. 인간을 천하고 귀한 것으로 구분하면 천한 인간들은 환경 때문에 천해지기 마련이다. 구정물에 발을 담그면 그걸로 그 사람은 끝인 것이다. 

 

인간을 믿지 않는 인간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불쌍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결국 좋은 사람을 주변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물론 환경탓만 할 수는 없다. 환경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성찰의 능력도 있다. 즉 경험상으로는 세상이 검어 보이기 쉬웠지만 더 넓고 깊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그 눈을 돌려 자기 자신을 보면서 그게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능력도 인간에게는 있다. 그러니 환경탓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환경을 무시할 수는 물론 없다. 인간을 믿는 사람은 범죄자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사람도 나쁜 환경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을 뿐 좋은 환경속에서는 괜찮게 행동할 거라고 믿는다. 반면에 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은 나쁜 인간은 본질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한다. 좋은 환경에 있어도 인간은 나빠진다고 생각한다. 평생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이 빛의 존재를 믿기가 쉬울 리 없다. 

 

인간은 결국 가장 근본적으로는 자기에 대한 믿음에 근거해서 살아간다. 즉 자기가 합리적이고, 양심적이며,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인간일 때 세상에 존재하는 수 없이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믿고 남을 믿는다. 믿는다는 것은 반드시 나나 타인들이 무한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타인도 유한하다. 그러니 우리의 선함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한성을 조금이라도 더 극복하려고 발버둥친다. 즉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내가 나를 믿을 때 나는 남도 완전히 포기하게 되지 않는다. 남이 아무리 나를 무시하려고 해도, 내가 아무리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도 나는 내가 가치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조금만 더 좋아지면 우리는 선하게 지혜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한가지 장소는 글이다. 우리는 긴 글이나 책속에서 어떤 사람의 일관된 태도를 느끼고 그것을 통해 그걸 쓴 저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느끼게 된다.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좋은 책을 쓴 사람은 자기와 세상에 대한 절망속에만 있을 수가 없다. 세상에 진리라는 것이 없다고 믿는다면 진리를 찾아헤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구도의 길을 적은 기록같은 것을 보면 진리나 도같은 것이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그런걸 진심으로 찾아다닌 구도자가 있다는 것은 느끼게 된다. 책은 세상에 구도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리고 세상에 구도자가 있다면 인간은 짐승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서관에 가서 책이 가득한 서가들 사이에 서보면 우리는 우리가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된다. 그 책들의 내용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 글이 꼭 그 저자를 잘 표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글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많은 책들의 적어도 상당부분은 우리가 현재의 자기를 능가하는 뭔가가 되고 싶어서 노력한 결과물이다. 진리나 도에 도달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다. 

 

완전히 흑백론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이분법적으로 사람들은 둘로 나뉜다. 겉으로만 보면 그저 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믿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치 종교를 믿는가 아닌가처럼 분명한 믿음의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 믿음에 따라서 상당한 행동의 차이도 보인다. 

 

그렇다면 누가 옳은가?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왜냐면 우리는 결코 확실한 답에 도달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진실은 광화문에 서있는 세종대왕동상처럼 하나의 진리로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우리가 그걸 찾아내야 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인간을 믿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인간을 믿을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느 쪽 믿음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누가 옳은가라는 질문의 답은 없다. 

 

다만 인간을 믿는 것은 자기를 믿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이 세상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반대로 인간을 믿지 않는 것은 우리를 점점 더 짐승으로 만든다. 어쩌면 인간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믿는게 아니라 믿어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을 믿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많은 논리나 증거는 이 믿음의 문제를 제쳐두면 의미가 없어진다.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정말로 높은 산에 오를 수는 없을 것이다. 50년전에 한국이 선진국이 될 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정말로 그 말을 모두가 믿었다면 그 말은 사실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믿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한국은 선진국이 된 것이다. 인간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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