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방식은 한계가 분명해졌지만 새로운 시대는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는 과도기적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증상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반드시 과거에는 사람들이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종종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하지만 그 무지의 의미가 달랐다.
과거에 있었던 무지는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게 모두 농사를 짓던 시절에 농사꾼이 가진 무지 같은 것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농사도 쉽지 않고 최고의 농사꾼은 하나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농사꾼은 모두가 농사짓는 시대에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라서 무기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갑작스런 불행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농사꾼의 무지였다.
하지만 요즘에 사람들이 느끼는 무지는 마치 근대화의 초기에 농사꾼들이 느꼈을 무지와 같다. 농사의 시대에 있었던 사람이 태어나서 배우고 살아가는 삶의 관행에는 농사가 깊게 젖어들어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이 흔들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대화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 20살까지 학교라고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거나 겨우 한글이나 뗀 정도라면 그 사람의 미래에는 희망이라고는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농사의 시대에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살았다. 농사짓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농사꾼은 근대화를 목격하면 본인의 무지가 너무 커서 뭘 어디서 부터 배워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그리고 뭘 배우려고 한다고 해도 이미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들게 된다. 뼈속깊이 이미 농사꾼인 자신이 이제와 변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농사꾼은 말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는 무지란 이런 것이다.
근대인으로 커온 사람들은 대개 초중고와 대학으로 이뤄지는 긴 교육과정과 취업 과정 그리고 결혼 따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사람은 태어나서 공부하고 취직하고 늙도록 일하다가 은퇴하면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죽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 자연스러운 근대인의 삶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기 쉽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점점 더 그저 학교 시험을 잘보기 위한 것으로 여겨질 뿐 그걸로 학교바깥에서 뭘 할 수 없을 것같다. 굉장히 공부를 잘해야 들어가는 것이 서울대학이고 서울대학을 잘 다니면 잘 살 것같지만 이런 예측은 점점 더 맞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서울대를 졸업해도 취직이 당연히 되는게 아니라는 현실에서 반영되고 있다.
그나마 나이가 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가정을 유지하고, 직장을 유지하고, 벌어놓은 돈으로 죽을 때까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부딪힌다. 가진 것은 없는데 열심히 살 수가 없다.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알아야 열심히 달릴 것이다. 방향이 틀리면 열심히 한 결과 더 큰 실패를 할 수가 있다. 근대화가 밀려오는 시대에 소로 농사짓는 농사법으로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더욱 철저히 낡은 시대의 농사꾼이 되려고 하면 과연 답이 나올까? 과거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요즘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학위나 취업성공은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런 것들의 가치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그래서 1등만이 살아남는 것같다. 1등이 아닌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그 결과 전세계에는 일,소비,출산,결혼,인간관계를 최소화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들도 많이 생겼다. 한국의 N포세대가 그렇고 일본의 스네프가 그러하며 미국의 니트, 이탈리아의 밤보치니, 제너레이션 탕기가 그렇다. 구세대의 사람들은 이들을 답답해 하면서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살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말은 공평하지가 않다. 가진 것없고 더 오래 살아야 할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낡은 세대가 말해주는 답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창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과도기에 새로운 시대를 느끼는 사람들은 다시 말해서 창의적인 사람들은 대개 아무 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직장의 시대에 중독된 사람들은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와서는 하루 종일 집안 일을 한 사람에게 너는 하루 종일 놀았다고 말하기 쉽다. 왜냐면 그들에게 일이란 직장에 나가서 하는 행위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패러다임이 무너질 때 그들은 언젠가 깨닫게 될지 모른다. 정말 아무 것도 안한 사람들은 자신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들은 그저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척만 한 것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왜냐면 그들이 한 일의 의미가 패러다임이 바뀌면 찾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 열심히 유학공부를 하던 선비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성실하고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나라가 망해가는데 유학공부하던 선비들이야 말로 아무 것도 안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코사인도 모르고 알파벳도 모르는 사람이 뭘 공부했다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답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는 사회가 조직되고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근대가 왔을 때 전근대의 방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았던 것은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빠르게 변했기 때문이다. 미래는 현재가 실패하기 때문에 온다. 즉 우리가 이제껏 추종해온 근대의 방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그 증상은 여러가지 부분에서 나타나는데 그 중의 하나는 가족제도가 망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치료법은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아는 것에서 만들어 진다. 우리는 그래서 병의 원인을 더욱 확고히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결혼의 종말과 조직의 논리라는 글의 서문 형식의 글입니다. 아직 그 글을 읽지 않으신 분은 연결해서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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