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한다. 그런데 문화적 상상력은 대개 기술적 배경과 단단히 얽혀있지 않기 때문에 꼭 그대로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법은 없다. 자비스나 휴머노이드가 그 좋은 예다.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토니스타크는 자신이 만든 AI 자비스와 대화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한다. 스타워즈나 터미네이터, 아이 로봇같은 영화에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게 정말 우리의 미래일까? 우리는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자비스나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향의 발전은 이미 많이 이뤄져 있고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AI나 격투기를 하고 덤블링을 하는 휴머노이드를 보면서 열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열광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자비스와 휴머노이드는 당연한 미래라기 보다는 그저 특수한 목적을 가진 AI의 한 형태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사실 가까운 미래에 가장 빨리 성장할 분야도 아니다.
먼저 자비스를 보자. 자비스가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사람의 손짓을 이해하는 것 따위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며 공학적 발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소위 말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내가 안녕이라고 타자를 치고 AI가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문자로 대답하는 것과, 내가 말을 하고 AI가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 사이에는 기술적 격차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용자 인터페이스라고 불리는 분야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자동차에 타서 집으로 라는 버튼을 누르면 차가 집으로 가는 경우가 있고, 내가 말로 집으로 라고 하면 집으로 차가 가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목소리 인식을 하는 것이지만 하는 일은 똑같다. 즉 차를 집까지 운전한다라는 일은 똑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목소리를 인식하는 부분과 차를 운전하는 부분은 전혀 별개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말을 아주 잘 알아듣는 AI가 있다고 해도 운전을 못할 수 있고, 목소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운전을 잘하는 AI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페이스 기술에만 너무 집중한다. 그래서 자비스처럼 대화하는 AI가 가장 발전한 형태의 AI라는 착각에 빠져든다. 하지만 구글의 허사비스가 AI로 노벨상을 받았을 때 자비스처럼 대화하는 AI를 만들어서 받은게 아니다. 그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백질 접기 문제라는 특수한 문제를 푸는 AI로 노벨상을 받았다. AI의 진정한 능력에 비하면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부분은 어찌보면 사소한 것이다. 사실 지금도 음성인식은 아주 잘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쓰고 있다. 그런데도 필자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타이핑을 하고 있다. 여러분은 곧 여러분의 PC에서 마우스와 키보드가 사라질거라고 믿는가? 컴퓨터가 인간의 말을 잘 알아들으니까? 그렇지 않다. 말하는 것보다 종종 손가락이 더 빠르고 덜 피곤하다.
AI는 하나가 아니다. AI는 수 없이 많은 도구들이 연결된 형태일 때 비로소 힘을 낸다. 자동차없이 자율주행 AI가 의미없는 경우는 극명한 사례이지만 챗GPT나 클로드등 많은 사람들이 쓰는 AI도 사실은 그 본질인 LLM만 있으면 상당히 무력하다. 거기에 껍데기를 씌우고 도구를 가져다 붙여야 힘이 생기는 것이다. 프롬프트를 설계하고, 에이전틱 루프를 만들고, 히스토리관리를 해주고 도구 설명을 제대로 해야 똑똑한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집중해야 하는 부분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빠르게 발달할 수 있는 부분은 인터페이스 기술이 주는 자비스 체험부분이 아니라 AI에게 더 많은 도구를 연결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이메일과 합쳐진 AI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대신 써줄 수 있다. 논문 사이트와 결합한 AI는 나의 질문에 대해 최신 학술논문들을 검색하고 그 의견을 종합해서 대답을 할 수 있다. 부동산 실거래가와 상권 정보와 결합한 AI는 요즘 수원의 아파트 전세값이 어떻게 되냐는 나의 질문에 실거래가를 참조해서 아파트 전세값을 가르쳐 줄 수 있고, 다나와나 네이버와 연결된 AI는 아내의 생일선물은 뭐가 좋을까라는 나의 질문에 이 계절에는 캐시미어 옷이 좋겠다면서 검색결과 이런 저런 상품이 이 가격에 있다고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
전혀 음성인식 없이 문자로만 나와 소통한다고 해도 이 모든 기능들은 편리한 것이다. 반면에 멋진 목소리를 가졌다고 이런걸 당연한 듯이 해내는게 아니다. 말했듯이 도구의 연결과 관리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을 그냥 거대 회사가 알아서 해줄거라고 생각하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늘날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해내는 도구를 만들면 너무 크고 복잡해지고, 모든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도구를 개발한다고 해도 상업성이 없거나 관리가 힘들다. AI의 시대는 DIY의 시대다. AI로 자기가 필요한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정수기 필터를 자기가 직접 끼우듯이 말이다. AI의 도움을 받으면 그런 개발이 그리 어렵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개발이라는게 이미 있는 프로그램 부속들을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가져다 붙이는 것인데 그걸 AI가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그냥 말만 해도 된다. 일기장 앱이 필요하면 만들어 달라고 하면 만들어 준다. 블로그가 필요하다고 하면 만들어 달라고 하면 만들어 준다. 홍보비디오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런 걸 해주는 도구를 만들어 준다.
그러니까 모두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도구를 만들고 그걸 자신의 AI에 연결해서 일을 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는 서로 서로 연결되어서 일을 해결해야 한다. 연결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준다. 만능의 뭔가가 나오면 알아서 뭐든지 해주는게 아니다. 어떤 회사가 만드는 범용 AI도 알파고보다 바둑을 잘 둘 가능성은 없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내 데이트는 내가 결정하는대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왜냐면 당신은 그냥 인간이 아니라 지구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도구는 당신을 위한 맞춤형이어야 가장 효율성이 크다. 당신의 건강검진 데이터 없이 당신의 의사 AI는 당신에게 좋은 조언을 줄 수없다. 당신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AI 투자 컨설턴트는 당신에게 맞춤형의 조언을 줄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자비스 체험을 포함해서 인간과의 인터페이스 부분에만 몰두하는 것은 AI의 진정한 대중화를 위한 길이 아니다.
휴머노이드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할 지 아마도 여러분은 이제 알지 모르겠다. 휴머노이드도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AI의 당연한 형태도 아니고, 심지어 피지컬 AI라고 하는 것들의 당연한 형태도 아니다. 그것은 AI의 특정한 한 부분일 뿐이다. 휴머노이드는 이미 어떤 면에서는 인간을 능가한다. 예를 들어 배터리만 교체하면 쉴 필요도 없다. 눈도 인간보다 더 정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육체적 능력을 휴머노이드가 능가하는 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그때까지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자동차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우리가 화장실에 갈 때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니다. 휴머노이드가 발달한다고 그게 인간의 모든 삶의 구석구석에 금방 퍼질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휴머노이드는 지금으로 보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공장에서 육체노동자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택배를 로봇이 한다고 해도 택배라면 바퀴달린 자동차형태나 개처럼 4족 보행을 하는 쪽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걸 휴머노이드 형태의 로봇이 뛰어다니면서 할 이유가 없다. 좁은 계단을 인간처럼 능숙하게 두발로 오르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비싼 돈을 쓸 이유가 없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자동차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우리가 화장실에 갈 때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도구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면 할 수 있다고 해도 가성비가 너무 떨어져서 의미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자비스체험을 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휴머노이드 발전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그런 것에만 너무 열광하는 가운데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망각되고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이야 말로 AI의 진정한 힘에 대한 것이며, 보통 사람들이 미래 문명의 주인으로 남을 수 있는가 하는 가에 대한 것인데 말이다.
그 부분은 바로 연결이다. 우리는 직접 챗GPT같은 AI를 만들 수 없다. 그건 천문학적 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말이 우리가 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물리학전공자로서 나는 그걸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중력의 법칙같은 자연법칙이 세상 모든 일을 결정한다고 해도 중력의 법칙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고 모든 질문에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이것은 언뜻들으면 AI에 대한 말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표현같지만 잘 생각하면 AI시대에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자연법칙은 몇개 안된다. 그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바퀴를 굴리고, 포탄을 움직이는가는 경우에 따라 새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주어진 문제의 조건들을 자연법칙들과 이어붙여야 어떤 답이 나오는 것이다. F=ma라는 공식이 모든 문제의 답이라고 해도 그것만 보고 있으면 뭐가 나오는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법칙이 해마다 한개씩 발견되는 것도 아닌데 수많은 과학자들은 뭘 연구하고 있겠는가?
AI는 인간이 발견한 새로운 자연법칙같은 것이다. 그걸 누구나 발견할 수는 없지만 그걸 누구나 쓸 수는 있고, 그것 혼자서만 문제를 푸는게 아니다. 그걸 어떤 문맥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맥은 그것을 쓰기 위해서 제공해야 하는 정보는 물론 우리가 제공할 수있는 도구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들의 문제가 풀리기 때문이다. 즉 AI가 있어도 세상 모든 문제가 그냥 풀리지않는다. F=ma라는 공식이 있다고 문제가 저절로 다 풀릴 것같으면 물리학책에 문제들이 왜 그렇게 많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풀 새로운 방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각자 열심히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공유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진정한 AI 시대가 열릴 것이다. 자리에 주저앉아서 인간과 비슷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인형만 보고 있으면 AI의 힘이 저절로 발휘될거라고 생각하는건, F=ma라고 쓰고 이제 우주의 문제는 모두 풀렸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옳을지 모르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건 어떤 특수한 한가지 의미에서만 그런 것이고 실질적인 많은 의미에서 그건 사실이 아니다. AI 시대에는 인간이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아마 많은 사람들은 과로가 고민일 것이다. 새로운 방법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전에는 풀가능성이 없던 문제들이 풀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이것이 인간이 바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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