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자주 이야기하는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은 서로 연결되어져 있어서 생각해 보면 서로 다른 뜻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니 그건 내 인생의 좌우명이라고 할만한데 그 좌우명이란 이렇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라.
내게 중요한 것이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렸을 때와 나이가 든 지금 그것이 다르다. 또 내가 운전 중이거나 연구 중이거나 가족과 여행중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뭘 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순간 중요한 것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은 대개 아무래도 좋다고 여긴다.
돌아보면 내가 이런 좌우명을 가지게 된 근본적 이유는 세상은 이해할 수 없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살아갈 인생의 가치나 의미가 단순한 것이었다면 나는 그런걸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저 그걸 이루려고 노력하고 살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설사 누군가 나 대신 그걸 찾아놓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그걸 찾고 그 다음에 열심히 살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게 아니었다.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지를 미리 결정해 놓고 그 계획대로 살 수 없다. 성장하면서 혹은 다른 곳에 옮겨가서 살면서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은 바뀐다. 물론 사랑도 우리의 가치관을 바꾼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우리 인생의 의미와 목표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매순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나는 말하자면 항상 우산을 잊어버리기에 우산을 꼭 지키자고 생각하면 이번에는 우산은 들고 집에 왔는데 그 덕에 가방이 없어지는 그런 사람이다. 기억력이 나빠서 몇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일을 잘 못한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기억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좋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을 생각해 보자.
매일 매일 식비를 아끼고 아끼는 절약을 해서 명품 가방을 샀다.
나는 이런 문장으로 명품가방을 사는 사람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게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개인의 판단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가치판단을 제외해도 우리는 위의 문장에 대해서 2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로 이게 절약인가 하는 것이다. 적어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로는 아닐 것이다. 명품을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명품을 사면서 나는 절약했다고 말하는 것은 보통 말이 안된다. 둘째로 우리는 명품 가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두가 납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식비를 아껴서 명품 가방을 사고자 할 때 그게 그럴 가치가 있다는 내 생각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를 했고 스스로 납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게 아니라 기억할 수 없는 언제인가 기억할 수 없는 이유로 명품가방에 이끌린 거라면 우리는 아주 소중한 것들을 팔아서 아무 가치없는 것을 사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부유하고 소처럼 일하면서도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뻔한 계산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사람이 보물을 보고도 모험 일정이 바뻐서 보물을 던져 버린다면 그건 바보같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모험이란 애초에 보물을 찾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모험을 해야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에 빠져서 모험 중간에 보물이 나타나면 그걸 던져 버린다. 자기 이론에 빠지면 보물은 어느새 우리가 모험을 한 끝에 얻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정의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공부하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남자의 역할은 뭐고 여자의 역할은 또 뭔가. 부모의 역할이나 자식의 역할은 뭔가. 이런 것들보다도 더 사소한 예를 들더라도 우리가 뭘 하기 시작하면 그건 대개 길게 늘어지는 일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점차 그 일에 빠져들고 애초에 왜 그 일을 시작했는가를 잊어버리기 쉽다. 생각없이 살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생각없이 말하는 비결이나 공식을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것에 얽매여 노예처럼 살게 된다. 나 스스로는 절약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식비를 아껴서 명품 가방을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이런 현살은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중요한 것이다.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모두가 농사 짓고 살다가 늙어죽는 세상에서는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일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세상이 변하는 속력에 비해서 너무 쉽게 뭔가를 당연시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런 태도가 우리의 삶을 낭비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어 초중고를 나와서 대학에 가는 일은 당연하니까 그냥 열심히 학교 다니고 부족하면 보습학원다니고 그렇게 해서 대학졸업하면 취직자리를 찾는다는 공식은 어떤가? 이런 일은 3-40년전에는 30%의 사람들만 하던 일이다 왜냐면 그때는 대학진학률이 그것밖에 안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학진학율이 70%를 넘은지 오래다. 요즘도 정말 3-40년전처럼 아무 생각없이 이렇게 살면 대학나오면 짠 하고 일자리가 우리를 기다려 주는가? 성적에 맞춰서 인서울 안되면 지방대가고 그냥 4년 다니고 졸업하면 일자리가 우리를 기다리는가?
세상은 변해가기 때문에 과거에 옳았던 일이 지금은 옳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남에게 옳은 일이 나에게 옳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무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답을 모른다. 안다고 하면서 어떤 이론이나 규칙을 말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우리는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그런 말들은 대개 주식이 오를만큼 올라서 폭락만 있을 무렵쯤에 주식을 사는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조언같은 말이 되기 쉽다. 즉 모두가 좋은 길이라고 말하는 길은 종종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서 좋지 않은 길이 되어버렸는데도 사람들이 그게 당연한 길이라고 말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지금 이순간 내가 뭘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잘 답하자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가? 왜냐면 모든 선택은 항상 댓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일 서울로 간다면 부산이나 전주로 갈 수도 있었던 기회를 날리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충분히 긴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심사숙고 해서 제일 좋은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현실은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주어진 코스를 가장 이상적으로 달리는 방법이 언제나 자명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전거 핸들을 돌리고 페달을 더 세게 밟는 선택을 하면 상황은 바뀌고 다음번의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우리는 또 그 문제를 해결할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빠르게 계속 해서 이어지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점검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실수 할 수 있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항상 사기칠 대상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다라는 식으로 급하게 선택하게 한다. 그 말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면 사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이미 은퇴한 나이가 된 나에게 중요한 게 뭔가를 적어보는 것으로 끝마치려고 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워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굶어죽을 정도로 돈이 없지는 않다. 자식들도 다 컸다. 내가 두려운 것은 내가 일상에 빠져서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고 그저 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맛집에 가고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옷을 입는게 나쁘지는 않다. 돈을 버는 것도 쓰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것에 멈춘다면 나는 그냥 사육되는 가축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활이 조금만 길어지면 겉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사는게 죽을 맛일 거라고 생각한다.
케익을 먹어도 드라마를 봐도 그것을 먹고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일찌기 누군가가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들의 삶은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일들이 많았냐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시인이 답하기를 그건 그 삶이 대단했던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인의 감성이 살아있었냐 없었냐의 차이라고 말한다.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느끼는 것이 서로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겉으로는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사람이 되기 쉽다. 우리는 그걸 피해야 한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은 말이다.
우리는 죽기 전까지는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사는 것이 의미도 재미도 있게 된다.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것을 놓치게 되면 그 이후에는 육체가 어떤 상태이건 별 의미도 재미도 없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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