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사는게 재미없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먼저 말해두고 싶은 것은 그 이유가 극단적인 경우를 빼면 객관적 상황일 수는 없으며 혹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인생이 재미없는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단어의 뜻 그대로 우리는 대개 극단적인 상황에 있지 않다. 우리는 금방 죽을 것처럼 아프거나 당장 오늘끼니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하지는 않다. 타고난 장애가 심각하거나 전쟁난 나라처럼 사회적 상황이 극단적인 곳에서 살고 있지 않다. 또한 우리는 BTS같은 유명가수도 아니고 이재용같은 재벌3세도 아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노벨상 수상자도 아니며 차은우처럼 잘생겼거나 이병헌처럼 인기있는 배우도 아니다.
내가 지금 사는게 재미없는 것이 내가 어떤 극단적 성공을 한 누군가처럼 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윤리적 철학적 가치를 따지기 전에 적어도 단기간에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이유로 삼아서 내가 사는게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마치 로또를 사면 매번 당첨되어야 하고, 주식을 사면 수익률이 3배 5배로 펑펑 터져야 인생이 사는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물론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우리의 삶을 재미있게 만들 리가 없다.
이런 태도가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바로 허세다. 분수에 맞지 않는 고급 아파트에 살거나 명품백을 들고 명품차를 타면 행복할거라는 생각을 하는 허세는 그렇게 하면 인생이 재미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또 맞아야 행복할 거 같은데 그런 일은 안 일어나니까 그런 척하는 허세를 부리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인생이 재미있을 것같아서 뭐뭐하는 척 하는데 시간과 돈을 쓴다.
하지만 가짜가 되기 위해 치뤄야 하는 희생도 그렇지만 그런 소비로 달성하는 기쁨이 계속 진행될 리가 없다. 재미있는 드라마도 열번 스무번을 보면 재미있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은 계속 새로워지는 것에서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번 무리하게 가짜로 치장해서 재미를 보기 시작하면 그 삶은 지속적으로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 마치 마약처럼 더 강한 마약을 쓰지 않으면 이제 소용이 없어진다. 소비로 달성하는 재미란 그럴 수 밖에 없고 1억을 버는 건 매우 힘들지만 1억을 쓰는 건 쓰는데 치중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콩나물값을 걱정하던 주부가 5억 10억짜리 아파트 계약은 턱턱하는 일은 흔하다. 결국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재미있는 삶에 도달할 수 없다.
인생의 진짜 재미는 그런 가짜 놀음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것을 모으고 성장하는데 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는게 뭔가하는 것에는 의견차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결국 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행복에는 돈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다가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그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돈이 쌓이는 것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통장의 돈이 백만원 천만원 1억으로 불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돈버는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결론은 요즘 세상에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돈을 버는 것은 물론 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결코 공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재산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번 돈을 세는게 행복하다지만 돌아보니 지난 10년간 그저 돈만 세느라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사는게 재미없어 질 것이다. 돈 모으는 재미는 강력하기 때문에 그것에 오래 빠져 있을 수는 있지만 정신차리면 본질적으로 허무한 것이다. 왜냐면 결국 돈은 그걸 써야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면 돈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아첨을 듣겠지만 그렇게 얻는 아첨이 지속적인 재미를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 친구요 가족같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사람은 소중하다. 사랑은 소중하다. 그러나 인간은 나를 포함하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모두를 포함해서 유한하다. 소중한 사람들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를 잃고 타인만에 기대어 산다면 결국 실망하고 상처입을 수 밖에 없다. 배우자도 자식도 친구도 결국 타인을 다 알 수 없다. 내가 타인을 다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타인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이 내 삶의 의미 자체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뭔가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다면 나는 그것이 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런 판단은 내 가치판단이다. 즉 내 목숨따위는 저 것보다 중요하지 않으니 희생한다는 것은 내 판단이다. 이런 경우 내 목숨을 던져도 나는 여전히 나를 잃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사는게 나다운 것이니까 말이다.
나를 잃지 않았다는 것은 이기적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나에게 대해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일을 계속 한다는 뜻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따위를 고민하는 가운데 우리는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것중의 하나는 후회없는 삶이다. 후회가 없다는 것이 실패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세상은 앞을 예측할 수 없고 나는 유한한 존재이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전부 그 뜻대로 이뤄질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삶이란 그보다는 매순간 벌이는 도박과 같다. 이길 확률도 있지만 질 확률도 있고, 내가 뭘 선택하든 나는 결국 이따금 지게 된다. 문제는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지금 내가 무슨 선택을 하는 지 알면서 선택을 하는가 하는 것에 있다. 나는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가? 우리 선택과 행동의 의미는 그것이 놓여진 문맥에서 발생한다. 오늘 집을 사기로 하면 나는 내년에는 집을 살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 집을 샀으니 이 동네에서 살게 될 수 있고 그것은 다시 어떤 결과를 발생시킨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것이 발생시킬 수 있는 가능한 미래들을 둘러 볼 수는 있다. 그런 시야의 넓이가 같은 행동에 다른 의미를 준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사람을 만나고, 한 권을 책을 읽고, 오늘 하루를 평범하게 보내는 것이 지극히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 지에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거대한 위대함에 이르는 길일 수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세상이 달라보이고, 시야의 넓이만큼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이런게 아니라 그저 계속 그래왔으니까, 남들도 그렇게 한다니까 하는 식의 시야로 뭔가를 한다면 뭔가를 하면서도 그 의미를 모를 것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오히려 아주 시시한 이유를 굳게 믿으면서 자신의 행동이 가지는 의미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사는게 재미없어진다. 내가 말하는 것은 영감이 넘치는 시인에게는 이 세상이 재미없는 곳일 수 없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에게는 많은 것들이 보인다. 그러니 낙엽이 하나 떨어지는 것까지 의미를 보고 느껴서 글이 넘처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그 이유는 사람의 기억력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따금씩 느끼는 의미들을 놓치는 것이 바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리에 앉아서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당연하기만 한 날이온다면 그때야 말로 인생이 재미없어 지는 때이다. 그런 상태의 사람은 이미 그렇지 않다면 머지 않아 탈출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것처럼 될 것이다. 글쓰기란 인간의 기억력을 초월해서 행동과 사물의 의미를 발견해 내는 행위이다. 우리는 단어들을 나열해서 우리의 삶의 의미를 발굴해 낸다. 그 속에서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런 걸 머릿속 생각만으로도 할 수 있지만 길고 긴 암산을 머릿속으로 하는 것처럼 이런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독서와 글쓰기 없이 평범한 사람은 짐승처럼 살 뿐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의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많은 의미를 주기 때문에 이것을 혼동하기 쉽지만 이 둘은 항상 같지 않다. 돈뿐만 아니라 집이나 차나 옷도 다 의미가 있지만 그것들이 언제나 의미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의미를 쌓아올려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서전을 집필하듯이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고 그 의미속에서 방향이 생기며 재미가 생긴다. 그렇게 긴 호흡으로 스스로를 쌓아가고 보살피듯이 사는게 아니라 뭔가에 쫒기는 짐승처럼 동으로 뛰고 서로 뛰며, 오늘은 여우인척 내일은 나비인 척해보면서 살아봐야 그것이 다 흩어지고 나면 허무할 뿐이다. 결국 인간은 데이터이고 기억이다. 인간은 기억과 데이터를 쌓아올려서 재창조된다. 그 재창조가 쉽지는 않다. 의미를 쌓아올린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멈추고 당연시 할 때 우리는 깊게 병이 들 게 된다.
나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과 같은 말일 수도 있고 다른 말일 수도 있다.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고민의 끝에서 우리는 나와 환경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거기서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게 뭐가 되던 우리의 생각이 무뎌지고 우리의 기억이 무너질 때 우리는 절박한 짐승이 되거나 끝없는 무료함에 빠진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으니 결국은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도달해서 오래 오래 사는 것은 내적인 고문과도 같을 것이다. 무료한 삶이란 독방 감옥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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