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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잘못되고 고정된 해결

by 격암(강국진) 2026. 5. 30.

최근에 내가 본 유튜브 영상에서는 한 서양남자가 한국을 거론하면서 한국과는 달리 자신의 나라에서는 미혼모가 키우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말하기를 그것은 바로 미혼모에게 주는 지원금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에 대해서 국가가 보조를 해주니까 사람들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일을 즉 미혼모가 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되었고 그래서 미혼모가 늘어났고 그래서 너무 많아 아이들은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비슷한 사례를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아프리카에 식량이 없어서 아프리카에 식량을 보내자는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위아더월드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식량을 보내서 굶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어떻게 되었을까? 아프리카의 인구가 늘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해졌고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에 기상 이변같은 일로 식량이 부족해졌는데 그 부족한 식량이 제대로 오지 못하면 더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굶는 사람을 돕는 일이 굶는 사람을 늘어나게 했다.

 

노인 복지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홀로된 노인들을 돕는 복지 지원을 늘리면 어떻게 될까? 이쯤 되면 이제 우리는 패턴을 예측하게 된다. 홀로된 노인들이 늘어난다. 이런 패턴대로라면 가정 폭력을 당하는 여성을 도와주면 가정 폭력이 늘어나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는 식의 예측이 가능하다.

 

이렇다고 할 때 우리가 이러한 패턴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기계적 시스템은 결국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요즘 AI로 인한 자동화가 한창 진행중이지만 AI 같은 것 없어도 우리는 근대화 이래 많은 자동화를 추진해 왔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게 해왔다. 예를 들어 수돗물이 나오고 쓰레기를 치워가는 것은 시스템이다. 세금을 받아가고, 연금을 지급하고, 도시와 시골의 길을 정비하는 것도 시스템이다.

 

우리는 어느새 시스템을 어떤 문제에 대한 자명한 해결책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밥을 먹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 급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망각된 것은 인간은 살아있으며 이런 기계적인 해결책은 결코 영구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것은 시스템을 자꾸 더 키우고 변화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해결책은 고정되어 있으면 안된다. 변화는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다. 어떤 것이 기계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그것이 예측가능한 것이 될 때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것이었다고 해도 그 결과가 차츰 나빠지기 시작한다. 제도는 점점 악용된다. 그래서 우리는 돕는 일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거나 아예 돕지 말아야 한다. 아무 것도 주지 않던 정부가 매달 10만원씩을 고정적으로 준다고 해보자. 소위 기본소득이다. 그런데 이런 도움이 오래가면 이 도움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뭐가 부족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도움은 더 커져야 한다. 그러니까 가능한 제도의 개혁은 매달 10만원을 20만원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도와줘봐야 쓸모없다고 해서 아예 끊어버리는 것이다.

 

뭔가가 고정적으로 반복될 때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무의식과 무관심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과 무관심이 제일 나쁘다. 내가 길 가다가 어려운 아이를 보면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으면 내가 도와야 한다. 그런데 아이를 도와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시스템이 도와줄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한 아이가 길에서 끔찍한 일을 당해도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있지 않았어?라고 말하면서 죄책감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든다.

 

뭔가가 고정될 때 부모를 돌봐드리는 것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 이웃을 돕는 것,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그냥 시스템과 규칙의 일이 되고 만다. 그리고 나서 잊혀진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시스템과 규칙의 욕을 한다. 우리는 세상이 엉망인 이유는 시스템이 망가졌거나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규칙과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칙과 시스템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다시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도 상상만큼 끔찍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아마도 끔직한 비극일 것이다. 인간이 지금만큼 식량과 에너지를 생산하며 살아가는 것은 그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말한 걸 생각하면 우리는 시스템이 필요악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어쩔 수 없이 이용할 뿐이다. 언제나 그런 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여기 아주 작은 가족이 있다고 하자. 그냥 부부만 사는 집이거나 형제가 둘이서 사는 집이다. 시스템과 규칙에 중독된 우리는 이런 작은 공동체에서도 모든 걸 규칙으로 만들면 편하고 공평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밥은 누가 할 테니 설거지는 누가하고, 청소는 언제 어떻게 하며, 생활비는 어떻게 분담하고, 일주일에 몇번은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식의 규칙을 세세하게 정해놓으면 참 좋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문제를 만날 때마다 그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이런 규칙을 정하면 좋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실제로 우리의 삶은 이런 규칙들로 채워지기 쉽다. 평등한 부부란 평등정신을 담은 온갖 규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그런 규칙은 좋지 않다. 사실은 가능하다면 규칙 따위는 하나도 없는게 좋다. 모든 상황에서 대화하고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느끼고 그에 따라 적절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는게 좋다. 한 사람이 피곤하다면 설거지는 그냥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하면 된다. 규칙은 우리를 무관심하게 만들고 무책임하게 만든다. 우리가 규칙으로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강제하겠다고 하는 순간 그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불신하여 기계가 일하게 한다는 말과 같다. 집이 더러우면 청소하고, 피곤하면 쉬고, 돈이 필요하면 지불하는게 아니라 의무로 청소하고, 의무로 쉬고, 의무로 돈을 내게 된다. 그런 규칙성이 오래되면 우리는 파괴되고 약해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응하는 것이다. 규칙이 우리를 어떤 형틀에 묶어놓으면 우리는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움직여지게 된다.

 

동네에 미혼모가 있어서 어렵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그걸 본 사람들이 그 미혼모와 아이를 도와주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을 기계적으로 이뤄지게 만들면 이제 좋은 사람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어진다. 누구도 적절하게 좋은 일을 할 수가 없다. 규칙이 인간을 지배한다.

 

물론 이런 지적에는 전제가 있다. 사람들이 감수성이 있고, 행동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즉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고 그 해결책을 쉽게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거대한 사회에서는 시스템을 만들어 자동화하는 일이 정당화되기 쉽다. 인간의 눈으로 거대한 사회의 모두를 살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움이 너무 늦게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문명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직접적인 대화와 눈치로 고작 몇십이나 몇백의 사람들의 사정만 살필 수 있는 인간은 기계적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필요악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반응하는 일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스템이 모든 것의 해결책인 것처럼 점점 더 모든 것을 자동화하고 그 시스템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된다. 자식은 부모가 돌보는 것이고, 학생은 선생님이 키우는 것이며, 부부는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다. 이 당연한 말들이 온갖 규칙이며 시스템 속에서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 져서는 안된다. 일이 잘못되면 그건 우리 탓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언제나 그렇듯이 AI 시대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이 글을 마치자. AI 시대를 이 글에서 말하듯 자동화를 더 심하게 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면 우리는 근대의 문제를 더 크게 겪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것들이 기계화될 것이다. 그러나 AI는 개인들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사용될 수 있다. 즉 규칙을 되도록 없애고 개인들이 직접 보고 행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AI를 쓸 수도 있다. AI가 사람들의 새로운 눈이 되고 손이 되어줄 때 그런 일이 가능하다. 나는 그런 미래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온갖 규칙으로 만들어 온 것을 해체하고 그 대안으로 AI로 강화된 개인들의 네트웍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고정된 기계가 답인 시대는 끝이다. 정부같은 고정된 시스템이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들의 네트웍이 부지런히 그리고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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