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 특히 젊은 남자들의 극우화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럼 뭐가 잘못된걸까요? 젊은이들이 뭐가 문제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해 당연한 것이지만 젊은이들만 문제가 아니고 그들은 오히려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역시 기성세대죠. 그들은 싸울 상대를 잘못 찾고 있는 겁니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정체성을 묻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역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더 그렇습니다. 먹고 살 방법이 없다거나 불안하거나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자연스레 왜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내가 아는 누군가는 나처럼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질문이기 때문에 자연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이데올로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힘듭니다. 물론 과거의 젊은이들도 힘들었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요즘 젊은이들이 더 힘듭니다. 그 이유는 과거에는 내가 뭘 해야 할 지가 보다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더 배우고 공부하고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면 되는 것이 과거였습니다. 사회개혁은 둘째치고 개인적으로 잘살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하고 저축하며 너무나 말도 안되는 야만적인 행동과 싸우면 되는 시대였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군사독재의 악행과 부패 그리고 전근대의 악습과 싸우는 것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교과서에 답이 있어도 무식한 시대와 싸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금이 더 힘들다고 내가 단언하는 것은 지금은 뭐가 옳은 지 자체가 아주 불분명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가고 좋은데 취직하는지 자체가 불분명합니다. 대학입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고 좋은 직장을 잡을런지 자체도 불분명하며 좋은 직장도 평생직장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그 길이 험해도 분명한 한줄기 길이 있었다면 지금은 앞에 수백 수천의 갈래길이 있어서 도무지 어느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 자체를 모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래가 불안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정도가 훨씬 심해졌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당연히 고통을 줍니다. 이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말했듯이 이런 질문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은 손쉬운 답을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정체성을 주는 기성의 이데올로기 중에서 하나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여성은 여성이라서 차별을 당한다는 페미니즘을 그 답으로 삼기 쉽습니다. 그리고 남성들은 진보가 남성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극우 이데올로기를 그 답으로 삼기가 쉽습니다. 이것이 소위 이대남 극우화의 원인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섣불리 쉬운 답을 잡은 겁니다. 젊은이들의 고통의 원인은 성별에 있지 않습니다. 진보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근대라는 시대자체가 몰락하는게 원인입니다. 근대의 몰락은 모두에게 위협이지만 젊은 세대는 가진게 없으니 더 위험한데 기성세대가 자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보수적으로 굴면 점점 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젊은 세대는 더 위험해 집니다.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젊은이들이 힘든건 시대착오적인 학교나 교육을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 기성세대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 때문에 젊은이들은 무의미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미래가 더 불안해집니다.
본래 학교란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키는 곳이고 따라서 근대 교육이란 근대 사회를 살아갈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너무나 많이 그리고 빠르게 변해서 근대라는 시대가 상식으로 여기는 것이 더이상 통하게 되지 않으면 근대 교육 자체가 엄청난 억압이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시대에 맞지 않으니까요. 이러면 교권은 무너지고 학생들은 불행합니다. 선생님들은 힘든데 아이들은 거꾸로 선생님이 그 일부인 교육시스템 자체가 그들을 고문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도 많은 기성세대는 자기가 어렸던 옛날 생각만 하면서 옛날 교육이 당연한 것으로 말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아이들을 탓합니다.
이걸 이런 식으로 생각해 봅시다. 시대가 바뀌어서 근대화가 되었는데 아직도 조선시대 유학교육이 정상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사서오경 외우라고 하면서 바쁘게 만들고 이런걸 요즘 배워서 뭐하냐는 말에 호통이나 치면서 그럼 뭐가 또 있다는 말이냐고 하면 어떨까요? 그런 일들을 계속 하면 정말 괜찮을까요? 그런 아이들이 가장 먼저해야 하는건 그런 전근대적인 교육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서 초중고 그리고 대학의 과정을 거칩니다. 정말 그것이 그럴 가치가 있을까요? 물론 성공적인 사례도 많을 겁니다. 즉 어떤 학생들은 그 안에서 가치를 찾을 겁니다. 하지만 몇%의 학생들이 그렇습니까? 절반? 5분의 1? 10분의 1?
지금의 젊은이들은 교육 시스템 자체와 싸워야 합니다. 가정과 학교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시간낭비때문에 더 괴로운 겁니다. 모든 어른들이 악의에 차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건 나쁘건 기성세대는 낡은 시스템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시스템 자체가 아이들을 억압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 시스템을 구성하는 선생님들은 좋은 선생님이건 나쁜 선생님이건 대개 보수적이고 그 시스템을 긍정합니다. 그것이 거대한 시간낭비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잘못된 교육 시스템의 피해자로 여긴다면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건 자율입니다. 학교로부터 가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솔직히 말해서 기성 세대의 대부분은 기득권이며 그들은 젊은이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재산과 직장을 가지고 있고, 살던대로 살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의도도 없습니다. 본인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언제 그렇게 하는가하는 것이 논의의 대상일 수는 있겠지만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나와서 세상과 직접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을 지면서 살면서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이제는 세상 자체가 학교입니다. 세상에 있는 이야기로 부터 배워야 합니다. 저는 중학생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어디 캠프같은 곳에서 살면서 따로 지내게 하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부모에게 배우는 것보다 악영향을 받을게 더 많을 겁니다.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학생이 근대화시대를 살아갈 사람이라면 부모는 왕에게 충성하는것 밖에 모르는 전근대의 농부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예전에도 그랬지만 가면 갈 수록 쓸모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데 그걸 교과서로 만들고 가르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틀려있습니다. 교과서는 10년이 지나도 바꾸기 힘든데 학교 바깥에서는 10년이 지나면 너무나 다릅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학교는 뭘 가르치는가 보다 그저 평가해서 등수 매기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계속 그런 컨텐츠가 올라오죠. 영국 사람이 한국 영어시험을 보고 이해를 못한다. 물리학교수가 중고등학교 물리시험을 보고 이해를 못한다. 역사 교수가 역사 시험을 보고 이런걸 누가 아냐고 한다. 시험이 그저 평가를 위한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도 스님이 있고 신부가 있듯이 지금도 미래에도 근대적 교육 시스템이 적성에 맞고 그걸 계속해서 사회적인 자리를 차지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걸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끼리 공부할 때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자유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걸 허락해 줄 기성세대는 아이들이 엉망이 될거라고 말할 거고 자유를 얻게될 아이들은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배우고 가르쳐야죠. 교과서가 아니라 각자 배울 걸 찾으면 됩니다. 뜻있는 강사들을 모셔다가 미래에는 이런걸 하면된다고 강의라도 부탁하면됩니다. 읽고 공부할 것은 어디나 얼마든지 잇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뭔가를 느끼면 그걸 공부하면 되죠.
중요한건 어린 아이들을 어른과 구별하지 않는 겁니다. 졸업장으로 취업시험으로 사람을 나누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인의 기준을 12세로 낮출 수는 없겠지만 그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즉 선택하고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그게 인생이라는 걸 알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사회적으로 지원해주고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그래야 그들은 진짜 세상인 학교 바깥에서 뭔가를 배울 겁니다. 새로운 교육이 또다른 선행학습이나 체험학습을 의미해서는 안됩니다. 그런건 또 다른 격리고 가상환경입니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온갖 이유를 들어서 이런걸 허락해주지 않지요. 솔직히 말하면 따지고 보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겁니다. 마치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해도 자신이 월급을 더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나 비슷합니다. 기득권자로서 실질보다 시스템을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기존 사회의 모순은 지금도 차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런걸 잘모릅니다. 그냥 왜 요즘은 연애를 안하고 결혼을 안하냐. 명문대 나오면 취직이 잘되겠네. 취직했으면 빨리 집얻어서 결혼해라같은 말을 합니다.
한 유튜버는 그러더군요. 아마 지금의 대학생까지는 취업이란걸 하겠지만 그보다 어리면 취업이 아예 안될거라고. 5년후쯤에는 사람을 뽑는 회사가 없을거라는 말입니다. AI가 다 하니까요. 기존에 있는 직원으로 충분하고 남으니까요.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저는 이런 말도 꼭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미 신입사원을 뽑는 수는 매년 급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중학생이 미래에 뭘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데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른들은 아이들은 자꾸 얽어매려고만 합니다. 옛날 이야기만 합니다. 미래는 이렇게 살면 확실하다는 보장은 누구도 줄 수 없지만 그 반대는 보다 확신하기 쉽습니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고 질문해서 답이 즉각 나오지 않는다면 그 답은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은 시간낭비만 한 채 아무 차별점이 없는 어른으로 성장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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