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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모순

by 격암(강국진) 2026. 6. 17.

일찌기 장자시대부터 법이 전부가 아니라는 지적은 있었지만 요즘들어 같은 구조의 문제가 세상에 누적되고 있는 것이 아주 분명해지고 있다. 그건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아동 성추행범이 아동을 성추행했다.

이런 성추행범을 막거나 처벌할 충분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법을 만들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이런 과정이 틀렸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아동성추행범 같은 나쁜 사람을 벌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법이라는게 묘한데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로 불법이 등장하면 합법도 등장한다. 어차피 현실에 존재하는 무한히 다양한 상황을 법이 다 다룰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이전에 그 각각의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상식을 적용하고, 그 분야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 처벌할 수단이 충분히 없을지는 몰라도 법이 없어도 사람들은 나쁜 것과 좋은 것에 대한 판단은 있다. 하지만 법이란 건 만들어지면 평등하고 보편적이다. 대한민국의 법조문은 대한민국 사람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서 옳은게 있고 틀린게 있게 된다.

 

초등학교 앞에서 30km/h로 달리라고 하면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앞에서 상황에 상관없이 그렇게 되는 식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30km/h로 달렸으면 합법이고 나는 잘못한게 없다는 것이 된다. 즉 상황에 따라 괜찮았던 일이 불법이 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안좋게 여겨지는 일이 합법인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일이 되는 것이다. 아마 많은 장소와 상황에서는 40km/h도 문제가 안될 것이다. 반면에 어떤 곳과 상황에서는 20km/h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게 법 때문에 다 지워진다. 

 

이는 현실적으로 법을 무한히 복잡하게 만들고, 그렇게 되고 나서도 현실과 괴리를 만든다. 현실이란 사실 법이 바뀌는 속력보다 더 빨리 바뀌고는 한다. 그리고 그런 일 속에서 사람들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더 이상 섬세하게 상황을 둘러보지 않고 그냥 규칙, 법을 보고 그걸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둘째가 어쩌면 더 나쁘다. 이건 유명한 논리적 모순이다. A 이면 B 이다라는 말은 B이면 A이다라는 말과 다르다. 강도가 신월동에 산다는 말과 신월동에 사는 사람은 강도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위에서 내가 위에서 말한 법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보면 이런 모순을 범하기 쉽다. 남편이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일이 아무리 많아도 전체 남편중에 가정 폭력범은 아주 소수다. 그런데 법을 만들다 보면 모든 남편을 잠재적 가정폭력범으로 가정하고, 여성은 가정폭력범일 리가 없다는 식으로 가정하기 쉽다.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은 많은 남성 범죄자를 본 사람이거나 피해를 봐서 처벌을 요청하는 아내들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본 사례들에서 100중 99는 남편이 가정폭력을 저질렀다라고 해도 그것이 전체 사회를 제대로 본 건 아닌데 그들은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동 성추행범은 아이를 쓰다듬는다. 그렇다면 아이를 쓰다듬는 어른은 아동 성추행범일까? 지금도 한국과 외국은 차이가 있지만 내가 젊었을 때 미국이나 영국에 가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고 느낀 것은 거기 사람들은 외부인들이 자기 아이를 쓰다듬는 행동에 아주 민감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꼭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한국 사람들은 길가다가 귀여운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일이 아주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귀엽다고 아이들 성기를 잡는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걸 성추행과 연관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아동성추행범이 없다는 말인가? 비율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법이 만들어지고 세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점차 한국 사람도 이제는 아이를 만지는 일에 대해서 민감해 지게 되었다. 이런 것에 대해서 나는 뭐가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한다기 보다는 이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비극적 사건 하나는 이제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없었던 행동이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린다. 그러면 전체 사회 구성원의 행동이 교정된다.

 

그런데 전체 마을 사람수가 1-200명인 작은 마을과 대한민국 전체는 굉장히 다르다. 비극적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쯤 되면 언제나 일어난다. 요즘은 발달한 미디어 때문에 온나라 아니 온 세계가 하나의 마을처럼 변했다. 덕분에 지금은 그런 비극적 사건들이 전국민의 행동을 나아가 전세계인의 행동을 조금씩 교정시킨다. 보험회사 직원인척 하고 유부녀를 연쇄강간한 유명한 강간범이 나타나면 갑자기 보험회사 직원에게 문을 열어주는 행동이 미친 짓이 된다.  99.99%의 보험회사 직원이 강간범이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사람들의 행동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을 가르게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한 여성이 쓰러져서 심폐소생으로 살렸더니 성추행으로 신고를 당했다더라 같은 이야기가 퍼지면 어떻게 될까? 길에 쓰러진 여자가 죽어도 모른 척하는게 현명한 일이 된다. 모른 척하고 아무 일도 안한건 합법이다. 그걸로 기소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여자를 건드리면 성추행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오피스에 있는 동료 여성이 유달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말하지 않는게 좋다. 예쁘다고 말한 건 잘못하면 기소될 여지를 남긴다. 그 가능성이 아무리 작아도 말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안하면 합법이다. 그러니 현명한 사람은 입을 다물고 살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것 때문에 아예 여자 직원이나 여자 제자를 기피하는 남자 상사나 남자 교수도 있을 것이다. 접촉이 없는게 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차별이라는 지적만 잘 피하면 된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법은 악을 벌하기 위한 것으로 보통 이해되지만 그것은 악을 악이 아닌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왜냐면 악에 법이라는 정의가 생겼기 때문이다.  법이 없으면 악당을 처벌할 수 없다.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A 이면 B이다라는 식으로 만들어진 법은 악당이 아닌 사람을 악당으로 고소하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법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담는 사람은 으례 그걸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데 쓴다. 이거 고소하면 불법인거 아시죠 같은 문장이 쉽게 나온다. 

 

이 모든 일들은 절대 법을 만들지 말자고 주장하기 위해 말해진게 아니다. 그럼 어쩌라는 말이냐라는 말에 나는 그저 구조를 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게 어떻게 일을 진행시키는 지를 보라는 것이다. 발달한 미디어 때문에 5천만명이 이웃처럼 사는 현대에 법치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데 법이 없으면 현대 사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법치는 현대 국가 그 자체다. 법이 무력해 지면 세상이 망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끝없이 납득이 안되는 판결의 이야기들을 듣는다. 수십년간 공부해서 법의 구멍을 찾아낸 변소사들의 도움을 받는 부자들이 법위에 사는 모습을 본다. 초코 파이 먹었다고 기소당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원봉사 표창장 문제가 이유가 되어서 4년형을 받는데 사람이 죽어도 그보다 형이 작은 경우도 많다. 

 

특히 배심원제가 없는 한국의 법체계는 법귀족을 만든다. 사회는 엄청나게 달라졌는데 법은 판례를 소중히 여긴다. 이 말은 판사가 그렇게 판단하면 그것이 법상식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제 아무리 법정밖의 상식과 괴리가 있어도 말이다. 성공한 구데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가, 서울은 경국대전에 의해서 수도이므로 관습에 따라 항상 수도여야 한다는 판결도 내리는 판사들이 상식을 만든다. 오만해 지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성추행이라고 판정하면 성추행이고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 예전에는 여자가 저항을 안하면 성추행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여직원에게 사장이 팬티만 입고 성기를 만지라고 했는데도 성추행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여자가 싫다고 해서 뺨을 맞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판례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법상식 위에서 지금도 재판을 받는다. 그래서 검사들은 유죄 무죄에 상관없이 일단 법으로 검사를 받는 입장이 되면 곤란해질거라고 사람들을 협박한다. 

 

그러나 그들의 오만함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판례와 법조문을 모두 아는 AI가 법 시스템의 구멍을 누구에게나 찾아주는 AI 법시스템 해킹의 시기가 머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약점을 이용해서 고소당해도 재판을 안받고, 세금 안내고도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조만간 전체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법원의 상식과 법원바깥의 상식의 충돌은 훨씬 더 거세질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일까? 짧게 말하면 나도 모른다. 그저 한가지 예를 들자면 보편적 법이 잘 안통한다면 지역자치같은게 답일 수는 있을것이다. 하지만 지역자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알듯이 그것도 만병통치는 아니다. 나는 결국 이 모든 건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시대가 끝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지금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앞으로는 조심히 삽시다라는 말은 물론 옳은 말이지만 답이 될 수 없다. 모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옳다면 이 구조적 문제는 이미 너무 많이 누적되었고 앞으로 더욱 빨리 그렇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법질서는 무너지고 무력해질 것이다. 

 

그걸 전제로 하고 말하자면 점차로 복잡해지기만 해온 법질서는 이제 해체되고 비교적 훨씬 간단한 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법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복잡한 대학입시 제도가 교육을 살리는게 아니라 가장 빨리 교육을 망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법도 문제가 있어서 복잡한 법을 만든 것이다.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거듭 말하지만 나도 모른다. 그래도 한마디 해보자면 사람들이 만나고 일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AI가 제공할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주 복잡한 일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다시 작은 수의 사람과만 만나면서 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게 가능할 것이다. 사실 인간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과 엮이면서 살게 된건 대부분 직장때문이고 직장이야 말로 근대의 상징과 같은 것이다. 


답은 없어도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도 법은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어진 법도 의문을 남긴다. 우리는 대개 법따위는 모르고 상식적으로 살지만 어느 순간 법체계의 검렬을 받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눈 먼 법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두려운 공포는 근거가 있는 공포다. 앞으로 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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