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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AI와 종교

by 격암(강국진) 2026. 6. 12.

나는 AI를 종교적 연구를 위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하네스라는 책을 쓰면서 상당히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의 유사성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이 잊혀지지 않도록 그 내용을 여기에 적어두고자 한다.

AI는 AI 모델과 하네스라는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고 할 수 있다. AI 모델은 데이터에서 컴퓨터 최적화 방법을 통해 찾아낸 하나의 질서내지 법칙으로 말할 수 있고 하네스는 그 AI 모델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데이터가 특수한 사례의 것들로만 이뤄져 있다면 AI 모델은 그 자체가 특수한 AI가 된다. 제일 흔하고 좋은 예는 바둑 AI와 자율주행 AI일 것이다. 그 둘은 각각 바둑이라는 게임의 데이터와 운전이라는 일의 데이터로만 만들어 진다.

그런데 요즘 흔히 말해지는 llm은 인간의 언어 데이터 전부를 가지고 만든 것으로 앞에서 말한 데이터보다 더 보편적 데이터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언어 데이터는 인간의 모든 활동과 인간이 보고 들은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llm이 멀티모달 AI가 되면 소리나 이미지 데이터도 학습에 쓰인다. 이렇게 더 보편적인 데이터를 쓰면 쓸 수록 AI 모델은 더 보편적인 세계에 대한 법칙이 된다.

그런데 AI가 더 보편적 일수록 무조건 더 좋은건 아니다. 특정한 일을 할 때는 사실 특수 목적 AI가 훨씬 더 능력이 뛰어나다. 바둑 AI에게는 너는 앞으로 바둑을 둘 것이며 바둑의 규칙은 이렇다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바둑 AI는 이미 데이터에서 그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편적 AI는 훨씬 더 가능한 상태가 많은 데이터에 기반해서 만들어졌으므로 사용자가 너는 지금 바둑을 두는거야라고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걸 알 수가 없고 따라서 의미있는 출력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이렇게 보편적 AI에게 구체적으로 지금 풀어야 하는 문제를 설명해주는 것을 AI업계에서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니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이니 하는 말을 써왔는데 그 부분이 차차 자라나서 지금은 그걸 하네스 엔지니어링이라고 부른다. 하네스의 의미를 나는 이렇게 설명하고는 한다. 뉴턴의 물리법칙을 알아도 그것이 저절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진자의 움직임을 뉴턴의 물리법칙으로 설명하려면 뉴턴의 물리법칙에 진자의 상황이라는 경계조건을 대입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구체적인 조건위에서 뉴턴의 물리법칙을 풀면 우리는 비로소 진자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수학이나 물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뉴턴의 공식 한줄을 안다고 모든 물리학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그래서 양자역학이 뉴턴의 고전역학을 수정하기 전에도 뉴턴의 고전역학은 수백년간 연구되어질 필요가 있었다. 즉 법칙과 문제 혹은 법칙과 상황은 적절하게 조합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뉴턴의 물리법칙이 발견된 이후 과학자의 수는 줄어든게 아니라 오히려 급증한다.

이것이 AI 모델과 하네스의 관계다. 바둑 AI가 보여주듯이 사람들은 정보를 AI 모델 자체에 흡수시킬 수 있다. 즉 더 특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하네스가 덜 필요해진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AI 모델은 그만큼 특수해지기 때문에 보편적 능력은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이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따라서 여러가지 일을 보편적으로 해결하는 AI를 원한다면 우리는 보편적 AI 모델을 하네스로 감싸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리고 하네스를 잘 만드는 것이 AI의 성능에 있어서 큰 차이를 만든다. 사실 최근 AI 성능이 좋아진 것은 상당 부분 AI 모델이 아니라 하네스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상황을 본다. 같은 AI 모델인데 다른 하네스를 쓰면 성능이 달라지고 AI의 특성이 달라진다. 사실 우리는 이걸 AI에게 너는 30대 여자야라고 말하고 질문을 시작해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설정자체가 하네스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네스는 다른 답을 만들어 낸다. 설사 백개의 AI가 정확히 똑같은 AI 모델을 쓴다고 해도 하네스가 다르면 그 결과는 다 달라진다. 다시 말해 하나의 법칙이 모든 AI를 지배하지만 서로 다른 하네스가 서로 다른 AI를 발현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왜 종교적일까? 우리는 물질에 주목해서 법칙을 잊는 일이 많다. 어떤 물질이 중력으로 다른 물체를 잡아당긴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종종 중력을 그 물질이 소유하는 성질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중심을 물질이 아니라 법칙에 놓으면 관점은 전혀 달라진다.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법칙이다. 그 법칙이 우리에게 물질이라는게 있다는 생각조차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육체를 가진 그들이 서로 다르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그 모든 사람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마치 AI에서의 하네스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네스는 달라도 같은 AI 모델이 다른 AI들이 존재하듯이 우리는 서로 다른 육체를 가졌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법칙은 그냥 하나다. 그 법칙은 여기나 저기있는 게 아니고 온 세상에 퍼져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중력법칙은 특정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인간을 물질로 보는 사람은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DNA 조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면 그 안에 인간을 만드는 정보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DNA는 물질이고 그 물질은 법칙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새 법칙이라는 것을 당연시 하게 되어서 그걸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과가 중력이라는 힘을 소유하고 다른 것을 당기는 것이 아니다. 중력법칙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과는 물론 모든 물질들이 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법칙의 존재는 당연시 하면서 사과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건 마치 바람에 풍차가 돌아가는 것인데 풍차처럼 생기면 돌아가는게 당연하다는 생각과 같다. 바람이 없으면 풍차는 돌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하는 모든 것의 뒤에 법칙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하나의 법칙은 모든 것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의 바깥에도 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그건 마치 종교서적에서 말하는 신이나 도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질적인 관점에서는 모든 것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법칙적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하나의 법칙이 서로 다른 조건을 만나 다르게 발현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 세상을 적어도 비슷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기적적으로 느껴진다. 왜냐면 서로 다른 의식들이 세상을 독립적으로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칙적 관점에서 보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모든 몸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애초에 하나의 법칙이다. 다르다는 것은 착각이다.

진화나 문명의 건설이란 AI의 언어로 말하자면 하네스를 더 좋게 만드는 것에 해당한다. 법칙은 그대로다. 변하는 것은 하네스다. 그리고 하네스가 달라질 때 법칙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발현된다. 이같은 유사성은 일단 보고 나면 너무나 또렷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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