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인터넷을 달군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회사의 직원이 프롬프트를 써서 일을 하는데 AI가 결과물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공유하자고 하니까 그 신입사원이 왜 이걸 공유해야 하냐고 대답해서 이게 맞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프롬프트는 아니지만 액셀 마크로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심지어 재판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퇴사하면서 그걸 지우고 간 것에 대해서 회사가 고소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여러가지 각도에 이야기될 수 있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일이라는 점에 있다. 이런 공유가 문제가 되는 근원적 이유는 사람들이 남의 프롬프트나 액셀 마크로를 공유해 달라고 하는 것에 대한 지금의 인식에 있다. 예를 들어 너의 집에 빈 방이 있다면 내가 좀 가서 자도 되지? 라던가 네가 투자를 잘한다던데 너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나에게 공유해줘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프롬프트나 액셀 마크로는 별거 아니고 따라서 언제나 공유를 해달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훨씬 많다. 이것이 인식의 차이이다.
잘못된 인식의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그것이 드물게 생기는 일이라면 우리는 크게 관심을 둘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같은 사건은 앞으로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의 시대를 끝내고 하네스의 시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노동 시간을 강조한다. 그런 사고 방식이 소프트웨어에 적용되면 나는 열심히 10시간 걸려서 일하는데 누군가가 소프트웨어로 10분에 그 일을 하고 있다면 뭔가 억울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소프트웨어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치사한 것이고 나는 피해자다. 노동자의 관점에서는 소프트웨어의 소유라는게 그렇게 핵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자격을 갖추고 몇시간을 일했냐가 핵심이다.
하네스의 시대에서는 반대로 노동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노동은 직접적으로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 노동이 중요하다면 그건 내가 어떤 데이터, 스킬,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노동을 했는가가 중요하고 이 중요성은 간접적이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1억원어치 주식을 샀고 3년간 팔지 않았는데 그게 지속적으로 수입을 올려주고 있다. 주식 투자를 안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의 소득을 불로소득이라고 말하고 특히 주식을 사고 난 뒤의 3년간은 그 사람은 정말 아무 것도 안했는데 큰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노동자의 관점에서는 이익을 얻자면 계속해서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주식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주식의 소유 자체가 소득을 올린다. 마찬가지로 하네스의 시대에는 개인이 독점적으로 가지는 정보가 소득을 올린다. 그러니까 프롬프트를 공유해 달라고 하는 건 누군가가 주식으로 돈을 버는 걸 보고 나에게도 네 주식을 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노동자의 관점에서는 이 이익이 불공평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런 관점이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있다. 사실 관점의 변화는 처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근대 사회의 노동자는 전근대의 농부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 종일 노동했다는게 노는 거 같을 수 있다. 주식 투자자는 많은 사람의 눈에는 일은 안하는 사기꾼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관점의 차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의 차이는 시대적 환경이 만든다.
소유가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소유로 이득을 올릴 수 있을 때다. 세입자가 없으면 임대할 집을 소유하는 것은 돈만 낭비하는 일이고 귀찮은 관리업무만 생기는 일이다. 음원을 살 방법이 없으면 음원으로 돈을 벌 수 없다. 음원을 사고 파는 시스템이 있으니까 mp3 파일을 사고 팔 수 있는 것이다. 앱을 만들어도 그걸 팔 수 있는 앱시장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노동 자체도 그렇다. 직장이라는 시스템이 있으니까 노동은 월급이라는 수익으로 전환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하네스의 시대는 두가지를 말한다. 첫째로 미래는 AI를 통해 일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하네스는 AI 모델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장치다. 둘째로 그 하네스가 바로 개인들이 정보와 경험을 소유하고 유통시킬 방법이 된다. 이제까지는 많은 개인의 정보가 관리되지 못했고 된다고 해도 포털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플랫폼이 수익의 상당수를 가져갔다. 게다가 플랫폼은 대개 대중을 위한 것이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작은 일들을 다 해 줄수는 없다. 이 말은 아주 많은 개인의 일들이 이익을 가져오지 못한 채 버려져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AI로 인한 자동화가 진행되자 상황이 바뀐다. 노동은 사라지고 소유가 중요하다. 노동의 의미가 바뀐다. 지금의 노동을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마치 농업이 세상의 중심이던 시절 물건을 여기서 저기로 옮길 뿐인 상업이 천하고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기계화로 농업인구가 줄어들었는데도 여전히 상업은 가치가 없고 들에서 몸으로 일하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고 하면 그런 상황을 우리는 이상하다고 말할 것이다.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이 상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시에서 가져온 물건을 원가만 받으라고 하거나 봄철에 쌀 때 사둔거니까 그 때값만 받으라고 말하면 상인은 화를 내지 않겠는가.
AI가 지금 우리가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을 빠르게 사라지게 할 때 가치가 있는 건 노동이 아니라 정보의 소유다. 그러니까 네 프롬프트를 모두에게 공유하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과도기인 지금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미래적 관점에서 보면 위에서 말한 농부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그다지 가치가 없는 일을 하면서 가치가 있는 걸 공짜로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일의 가치는 과대평가하고 남의 일은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는 빠르게 오고 있다. 그러니 같은 문제들은 곧 사방에서 생겨날 것이고 많은 회사들은 붕괴할 것이다. 왜냐면 노동의 시대의 관점에서 회사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금새 매우 불합리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인의 정보를 보관하고 보호하고 거래할 시스템이 별로 없다. 그래서 직원이라면 그 직원이 생산하는 정보를 모두 회사에게 주고 플랫폼의 사용자는 자신의 정보를 플랫폼에게 주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정보가 진짜 귀한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걸 보존하는 것이 미래의 핵심이라는 것이 분명해 질 수록 분쟁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내 것과 회사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젠 종신고용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회사에 모든 정보를 다 주고 나면 그 사람은 퇴사와 동시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인간이 될 것이다. 아니 회사안에서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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