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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내가 생각하는 하네스의 의미

by 격암(강국진) 2026. 7. 28.

나의 최근 책 <<하네스: AI 시대의 새로운 몸>>이 가지는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는 AI시대에 각자의 하네스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하네스는 단지 컴퓨터 코드가 아니다. 물론 그건 분명 코드를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것이 핵심적인 부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하네스는 단지 코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제도까지 다 포함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AI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AI를 매개로 해서 인간과 사회와 사회 시스템을 전부 나에게 연결해야 하고 그 연결된 총체가 나의 하네스라고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를 말할 때 환경은 아주 중요하다. 핵무기를 가진 남자는 손가락 하나로 엄청난 파괴를 할 수 있다. 그건 그의 손가락의 힘이 아니라 핵무기 시스템이라는 환경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극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현대인들이 선사시대의 원시인보다 더 뛰어난 건 사실 거의 없으며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전부 환경의 탓이다. 자동차가 있으니까 운전기술이라는게 의미가 있고, 휘발류나 전기가 있고, 수리센터가 있으며 교통법규가 있으니까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는 것이며, 나아가 사회적 치안이라는게 존재하니까 바깥에 나가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야생에 던져진 현대인은 무능할 수 밖에 없고 문명사회에 익숙해진 나머지 대부분은 죽기 쉽다. 물도 먹을 것도 잠잘 곳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강력한 AI가 나오면 인간의 모든 소원이 이뤄진다는 식으로 AI 시대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말은 그 강력한 AI가 뭐냐는 뜻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마술의 램프안에 있는 무한의 힘을 가진 요정같은 걸 상상한다면 그건 틀린 것이다. 강력한 힘이 작동하자면 핵무기를 누르는 손가락처럼 세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요즘 AI가 코딩을 잘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AI도 코딩만으로 탁자위의 사과를 띄울 수 없다. 로봇손이라도 있어야 그걸 움직여서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로봇손은 수단이고 내가 말하는 하네스는 넓은 의미에서 이런 수단들을 포함하거나 전제한다. 

 

그래서 하네스는 어떤 의미에서 사람도 포함한다. 내 주변에 전문가가 많아서 내가 아플 때 아픈 이유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전문가들이 나의 하네스 인 것이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는건 AI가 미디어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직접 아는 의사에게 물어보는 상황과 AI가 적절한 전문가를 찾아내고 그 전문가의 컨설팅을 요청해서 답을 받아오는 상황은 서로 다르다. AI가 뭐든지 한다는 생각은 AI를 단지 의사를 대체하는 존재로만 강조한다. 그같은 예측은 많은 경우 가능해지겠만 미디어로 작동하는 AI를 강조하는건 상대가 AI의사건 인간의사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정보나 액션의 수단과 내가 연결되는 것이다. 

문제해결의 핵심은 데이터다. 그런데 제 아무리 뛰어난 AI도 내 손안에 뭐가 들었는지를 나에게 묻지 않고 알아낼 수는 없다. 지금의 AI 모델들에게도 뭘 물어보면 대부분 최신 정보를 위해서 검색을 한다. 이건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미래에도 가장 뛰어난 박스 안에 들어있는 AI가 모든 답을 알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AI는 네트웍으로 세상과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연결을 결정하는 것은 그리고 결정해야 하는 것은 상당부분 인간이다. 도로도 엉망이고 교통 법규랄 것도 없는 곳에서 AI보고 자율주행을 하라고 하고 그걸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AI도 자동차를 운전해서 하늘을 날게 할 수는 없다. 일의 성공실패는 컴퓨터 안의 AI의 성능이상으로 사회적 환경이 결정한다. 

하네스는 인간과의 연결이고 사회와의 연결이다. 다만 우리는 그걸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친구와 직접 대면으로만 이야기하던 시대는 전화기나 텍스트 메신저가 나와서 크게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AI가 있다면 우리의 연결이 지금같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강을 건널 배가 있는데도 굳이 위험하게 계속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는 일이 된다. 

 

예를 들어 공유나 판매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걸 위해 플랫폼을 거친다. 사회적 방법을 쓴다. 그것은 그저 몇명의 구성원으로 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른 방법이다. 그저 가족 몇명이라면 그냥 누구나 쓰라고 말하고 내버려두면 알아서 다른 가족이 가져갈 것이고, 얼마냐고 물어보면 얼마라고 말하고 판매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사회단위가 되면 힘들다. 그래서 인간은 시장을 만들고 인터넷쇼핑몰을 만든 것이다. 신용을 평가하고 사람들의 평점도 참고하며 돈을 지불하고 받을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대신해줄 AI 에이전트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옛날의 작은 세상에서 쓰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실은 이 AI 에이전트가 플랫폼의 AI가 아니라 나의 AI라는 것이다. AI가 발달하니까 여러 거대회사들은 자신의 플랫폼이나 기계에 AI를 붙이고 있다. 그런데 그런 AI는 나의 AI가 아니라 플랫폼의 AI다. 예를 들어 SNS에서 나에게 맞춤형으로 컨텐츠를 보여준다고 했을 때 AI가 어떤 기준으로 컨텐츠를 고를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SNS 회사쪽에서 결정한다. 그러면 자연히 그 AI는 수 많은 사용자의 다양한 개인적 요구를 다 맞춰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SNS 회사의 이익을 배반할 수가 없게 된다. SNS 회사에서 만들어서 SNS가 사실은 필요없고 다른 곳에서 정보를 찾으라고 하는 AI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고 만약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면 회사는 자신의 AI를 수정할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용자들에게 광고를 억지로 보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네스 : AI 시대의 새로운 몸>>이라는 내 책의 제목은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우리의 몸이라는 걸 의미한다. 남의 의지대로 움직이면 그건 남의 몸이다. 우리가 AI 시대에 무능하고 불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몸이 커져야 한다. 점점 커지는 남의 몸에만 의지하면 종국에는 나는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들의 네트웍만 커지고 나는 점점 고립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사실 AI를 쓰는 법을 배우자고 하면 지금의 방식은 종종 거대 회사가 만든 서비스를 쓰는 법을 배우는 것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건 남의 AI에게 점점 더 종속되는 것이다. 그건 마치 문자라는게 나왔는데 이걸 쓰는 법을 배워보자면서 문장을 잘 쓰려면 그걸 잘써주는 대필회사에게 가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말하면 된다고 답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문장을 만들면 자신은 영영 문장을 쓰는 법을 익히지 못할 것이다.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 중간에 언제나 대필사가 끼어서 나의 뜻을 그의 뜻으로 번역해서 전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무식해서 편지를 대신 써주는 비용이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도 이해를 못할 것이다. 

메뉴얼을 배우는게 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AI를 쓰는 법에는 더 큰 분야가 있다. 그건 궁극적으로는 연결에 대한 것이다.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적 규약을 정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AI를 이해하는 사람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AI는 스스로 문제를 가지지 않는다.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은 사람들이다. 회사들이 회사의 문제를 가지듯 개인들은 개인의 문제를 가진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걸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와 노력속에 만들어 지는 연결들이 쌓여서 우리 주변을 채워가는 상황이 바로 우리가 하네스를 짓는 상황이다. 언어를 알아도 말할 대상이 없고, 인터넷이 있어도 통신할 대상이 없다면 그 의미는 지극히 축소된다. AI를 박스안의 지능으로만 생각해서 그걸 쓰는 법만 익히는 것은 위험하고 AI의 진정한 힘을 해방시키지 못할 것이다. 

 

미래는 모든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나는 가능하고 필요한 연결이 무엇인지를 다 모른다. 다만 한가지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불필요하게 닫혀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이든 파일이든 아이디어든 더 자유롭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이전에는 신문이나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였다. 인터넷이 나오고 나서는 누구나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자 그 소통을 정리하는 온라인 상의 채널지배자들이 나타났고 그게 각종 플랫폼들이다. 아마존,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우버, 배달의 민족, 요기요, 당근, 네이버 부동산 등 모든 플랫폼들이 그렇다. 우리는 조금씩 여기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을 기꺼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가능한지를 서로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공유의 복잡함과 비용을 AI의 도움을 받아서 헤쳐나갈 수 있다면 말이다. 이건 새로운 광장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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