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가지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지금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어쩌면 대형마트가 인기가 줄어서 망하는 것처럼 대형 플랫폼도 머지 않은 미래에 크게 변화하거나 망할지 모른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 소규모 그룹, 그러니까 가족이나 노동조합 혹은 동네 사람들만을 위한 포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들 수 있다는 예측을 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나는 최근에 우리 가족을 위한 포털을 만들었다. 그걸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하루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그 조각이 될 것들을 거의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우리 가족을 위한 NAS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우리 가족의 사진과 동영상들을 백업해둔 게 있다. 그 분량이 백 기가가 넘는다. 그런데 이런 사진들은 백업만 해두면 잘 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족 사진들을 원격에서 접속할 수 있는 NAS 서비스를 만들었다. 이 사이트의 주소는 랜덤 넘버를 포함하게 했다. 이 주소 링크를 가족들에게 보내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브라우저에서나 우리 가족의 사진과 동영상을 둘러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런 기술이 없지만 cloudflare와 AI 덕분에, 그리고 새로 산 맥미니 덕분에 간단히 만들 수 있었다. 맥미니는 24시간 켜둘 수 있고, cloudflare가 주소를 제공한다. 사진과 동영상은 인터넷에 올라가는 게 아니라 접속자가 요청하면 그때그때 맥에 연결해서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링크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태블릿에도 바로가기를 만들어서 언제나 지난 동영상을 볼 수 있게 해드렸다. 브라우저 기능이 있는 우리집 거실 티브이에서도 모든 가족 사진과 동영상을 꺼내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에 만든 건 가족 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지금은 아주 간단하게 만들어진다. 내 스마트폰을 PC에 연결한 상태에서 새 신문 만들기를 누르면 PC가 내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들을 기반으로 소식지를 만들어 준다. 앞에서 말한 NAS가 백업 속 지난 사진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가족 신문은 최근 사진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신문에는 댓글과 사진 올리기 기능도 있어서 멀리 있는 아이들이 자기 사진을 올리면 다음번 가족신문에 그 사진도 실리게 되어 있다. NAS는 켜놓으면 되고, 가족 신문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폰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만들어진다.
그런데 가족 신문과 NAS를 만들고 나자 나는 주소가 두 개가 생겨서 관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내가 내가 쓰는 indiebizOS 안의 몇몇 기능들을 쓰고 싶어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미 있는 기능들을 모아서 하나로 만들었는데, 그 결과가 가족을 위한 작은 포털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나는 indiebizOS를 개발하는 데 긴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이 포털을 간단히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indiebizOS건 다른 어떤 오픈소스 하네스건 세상에서 공짜로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다운받을 수 있게 되면 같은 개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누구나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포털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게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다면 이런 건 정말 새로운 일일까? 우리는 이미 게시판이나 홈페이지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그다지 놀랍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와 새삼 홈페이지 같은 걸 만들 수 있다는 게 뭐가 새롭다는 것인가? NAS도 드롭박스 같은 걸 이용하면 예전부터 쓸 수 있는 기능이 아닌가? jellyfin 같은 걸 설치하면 우리가 가진 동영상으로 나만의 넷플릭스를 진작에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우리가 이제까지 이런 걸 만들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개발과 관리를 위한 비용이다. 포털은 고사하고 홈페이지 정도만 스스로 운영하려고 해도 그걸 업데이트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걸 불필요하게 느낀다. 우리가 블로그 플랫폼에서 블로그를 하고 SNS에 가입하는 이유도 그거다. 관리는 거대 플랫폼에 맡기고 우리는 최소한의 일, 그러니까 사진을 올린다거나 글을 한 편 쓰는 정도의 일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위해서는 거대 플랫폼에 의존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우리는 대가도 치른다. 그 대가 중 하나가 우리의 요구에 맞게 포털이나 블로그를 운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이 만든 시스템에 맞춰야 한다. 가족이 자가용을 타는 대신 언제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식이다. 또 어떤 정보는 넓은 공유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만 봐야 할 사진과 동영상을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리면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다. 우리 동네 주민들이 보는 인터넷 카페가 거대 포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편한 것도 아니다.
AI는 여기서 결정적 변화를 만든다. 일단 html로 기초부터 홈페이지 같은 걸 새로 짜서 올리는 비용이 거의 없다. 전에는 전문가가 노동을 해야 할 일이지만 AI는 이런 코딩을 아주 잘한다. 내 홈페이지를 이렇게 저렇게 고쳐달라고 하면 html 수준에서 새로 짜서 업데이트해 준다. 포털의 설정 화면에 들어가서 약간 수정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내가 직접 해보고 알게 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에게는 jellyfin을 설정하는 것보다 AI와 함께 같은 서비스를 직접 만드는 쪽이 더 쉬웠다. 바로 이것이 예전의 자가 운영과 지금이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홈페이지도 NAS도 미디어 서버도 전부터 있었지만, 남이 만든 기성품을 내 환경에 맞게 설정하고 관리하는 비용의 벽이 있었다. AI는 그 벽을 무너뜨렸다. 맞춤 제작이 기성품 설정보다 싸지는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한번 세팅해두면 AI에게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네이버 같은 거대 포털은 거대한 회사가 하는 플랫폼인데도 그것과 비슷한 것을 일개 개인이 만들 수 있으며, 사용자가 몇백 몇천 명 수준이라면 큰돈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독립함으로써 우리는 포털에 대한 전권을 가지게 된다. 원하는 건 뭐든 더 만들 수 있고, 뭐든 간단히 고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포털이 작동하는 곳은 관계가 이미 존재하는 집단이다. 가족, 동네, 노동조합, 회사 — 이런 집단은 구성원이 소프트웨어보다 먼저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정말 소중한 소통의 대부분은 사실 이미 있는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것이 사소한 사례는 아니다. 자가용의 시대가 와도 우리는 여전히 기차를 타고 버스나 전철을 탄다. 나는 앞으로도 거대 플랫폼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이며, 모두가 스스로 만든 포털만 이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가용의 시대가 오면 기차가 아직 있어도 기차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기차가 독점적으로 존재가치를 가지던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거대 플랫폼들에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크다. 플랫폼 독점이 무너지면 연쇄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수익률이 나빠지면 서비스가 나빠지고, 그 결과 사용자가 더 줄어드는 것이다.
같은 원리는 회사에도 적용될 것이다. 회사 역시 구성원이 이미 정해진 집단이기 때문이다. 개인도 가족 포털을 만드는데 자본을 가진 회사가 외부 소프트웨어에 계속 의존할 이유가 있을까. 원한다면 회사 전용 메신저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어떤 회사들은 벌써 사서 쓰던 대형 업무 소프트웨어를 해지하고 내부 AI 시스템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넓게 퍼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새로운 AI 하네스를 사용하면 우리는 개인의 정보주권, 작은 소집단의 정보주권을 돌려받을 수 있다. 어렵지 않게 관리하면서도 거대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은 변화지만 큰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생각해 보면 메신저나 SNS가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지만 그것들 자체는 작은 서비스에 불과했다. AI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무너뜨린다는 말은 요새 아주 흔하다. 플랫폼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같은 일이 플랫폼에도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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