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죽었다라는 말이 요즘 가끔 보인다. 블로그 포스팅에서 SNS, 유튜브등 많은 플랫폼 컨텐츠들을 이미 AI가 만들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쓰레기 데이터로 넘쳐나게 되었고 인터넷은 점점 무의미해 진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관론에만 빠지지 말아야 한다. AI를 사용해서 컨텐츠를 만드는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소통할 컨텐츠를 양산하게 만든 일은 반복되어 왔다. 어쩌면 이미 인쇄술의 발달이 그것일 수도 있지만 가깝게는 사진기나 이메일, 메신저들의 사용이 그것일 것이다. 사진기가 나오기 전에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사람이나 말로 자기가 본 것을 잘 묘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경험을 컨텐츠로 만들기 어려웠다. 그런데 사진기가 나오자 누구나 사진기를 가지면 사실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진기가 스마트폰안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매일 매일 사진찍었고 공유했다. 그 사진이 전세계 최고의 사진이어서가 아니라 지인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소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본 카페, 내가 만난 사람들의 표정을 우리는 이제 쉽게 사진에 담고 공유한다. 아무나 사진을 찍는게 공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요즘 AI를 써서 만드는 컨텐츠가 종종 공해취급을 받는 것은 사람들이 스위치를 누르는 사람이 누구든 같은 것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컨텐츠를 만들 기 때문이다. 즉 컨텐츠 안에 그걸 만드는 사람의 개성과 선택이 들어가 있지 않다. 친구가 그린 말의 그림은 친구의 개성을 가지지만 AI에게 말을 그려줘라는 짧은 말로 만들어 낸 말의 그림은 사실상 내 친구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런 컨텐츠를 양산해서 세상을 채우면 사람들은 거기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의미없는 것은 정보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컨텐츠가 개인화되지 못하다라는 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AI의 본질적 문제점으로 보기보다 우리가 지금 AI를 잘못 쓰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AI는 AI 모델과 하네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이 하네스는 개인화되어야 한다. 그럴 때 AI가 만든 것이라고 해도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내가 신문을 AI에게 만들어 달란다고 하자. 정해진 주제에 대해 뉴스들을 뽑아서 신문을 만들 때 그저 신문을 한장 만들어줘라고 한다면 그 결과는 내 개인의 판단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신문사의 편집장이 된 것처럼 주제를 세심히 정하고, 기사 하나 하나를 뽑아서 신문을 만든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신문은 분명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신문의 예가 인간과 AI가 합쳐져서 어떻게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가 하는 점에 있다. 이전의 인간은 간단히 신문사가 될 수 없었다. 신문 하나를 편집하는 데 드는 일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를 사용하면 다르다. 이제 1명의 인간은 훌룡한 신문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진 신문은 대개 세계최고의 신문은 아닐지라도 내 카톡과 인스타그램 사진이 그렇듯 내 지인들에게는 의미를 가지는 신문이 될 것이다. 이것은 사진이 스마트폰을 통해서 어떻게 소통의 수단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지만 AI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컨텐츠의 다양성과 질을 크게 다르게 할 수 있다.
AI로 만든 컨텐츠가 아직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더 뛰어난 AI 모델이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용함에 따라 개인화하는 하네스가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글이나 앤스로픽이나 오픈AI같은 회사가 만드는 AI만 쓴다면 혹은 다른 어떤 AI 플랫폼을 써서 컨텐츠를 만든다면 이 점을 벗어날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오픈 플랫폼은 그걸 쓰는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극복하기 위해서 메모리나 RAG 기능들이 발달하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개인화하는 하네스가 모두에게 주어져 있지는 않다. 말하자면 지금은 스마트폰을 어디서나 구할 수 없고 몇몇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흩어져 있는 부품들을 조립하면서 어렵게 자신의 개성을 집어넣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하지만 개인화하는 하네스는 출현해야 하고, 출현할 것이다. 내가 만드는 indiebizOS의 목표도 그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오면 우리는 즉 개인화하는 하네스를 가진 우리는 새로운 소통을 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과 후의 사람들의 소통이 다르듯 컨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에 있어서 새로운 도구를 가진 우리의 소통의 방식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는 AI로 만든 컨텐츠의 가치도 충분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AI 시대는 1인을 1인기업처럼 만든다. 그래서 개인이 신문사가 되고 방송국이 되고 영화사가 되고 출판사가 될 수 있다. 아직 그걸 처음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그걸 제대로 만들 방법을 찾고 있을 뿐이다. 물론 컨텐츠를 제대로 공유할 방법도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우리는 차차 개인화된 자신의 하네스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질 것이다. 이것은 그러한 흐름을 외면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쳐진다는 말과 같다. 그 뒤쳐짐은 스마트폰을 못쓰는 사람이 가지는 문제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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