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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이성적 신학

by 격암(강국진) 2008. 6. 13.

%이글은 신화에 대한 글과 상당부분 겹칩니다.


수학자들에게는 웃기는 버릇이 있다. 어떤 수학문제를 풀려고 끙끙대면서 토론하다가 그답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들이 그 답을 누구에게 설명할때는 흔히 그들은 그건 자명한 것이고 그건 간단한 것이고 초보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동안을 고민해서 답을 찾아내고도 그들은 아 그건 쉬운거지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해는 사물을 객체화하고 종속변수화한다. 따라서 이해된 사물이란 '아무 가치없는 것'에 가깝다. 그것은 다른 주요변수 즉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실제로는 무한히 많은 사실들가운데 극히 일부분의 것에 대한 인과론적 결과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한데도 우리는 과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이는 세상을 단순화 시키는 것이며 그결과 우리는 우리주변의 것들과 우리 자신도 단순화하고 아무 가치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먼옛날 인간은 세상의 아주 많은 것들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했다. 샘에는 샘물의 신이 있어서 물이 나오는 것이며 산과 강과 태양과 바람과 비와 천둥번개가 다 각각의 신이 작용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쌀통에도 신이 있어 쌀이 마르지 않게 해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신이란 우리가 조종할수 없는 , 이해할수 없는 것이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

 

과학의 발전, 인간 이성의 발전은 이것을 바꾸게 된다. 이에 따라 신의 숫자는 줄어들고 급기야는 유일신의 사상이 널리 퍼진다. 그 유일신 조차 과학과 인간이성의 제약을 받아 매우 부자유스러운 존재가 된다. 신조차 스스로가 만든 법, 즉 자연의 법칙을 어길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티븐 호킹같은 우주론자들은 연구를 하다보면 신이 이세상을 창조하는데 별로 큰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라는 말을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수많은 무지와 신에 둘러쌓여 있을때 우리의 삶이란 그 신들의 사랑의 증거다. 다시 말해 우리의 존재는 그자체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선택받은 존재, 신의 축복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생존할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이러한 신화를 무너뜨린다. 과학은 많은 신을 몰아냈고 인간이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것을 보임으로서 우리의 존재의미를 약화시켜왔다.

 

때문에 인간이 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지동설이나 인간은 원숭이와 같은 조상을 가졌다는 진화론이 인간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신으로 충만한 시절, 풀잎하나 작은 동물하나가 모두 신의 은혜가 아닌것이 없었다. 과학은 그모든 의미를 빼앗아 버리고 만다. 인간이 생물의 탄생이나 생명의 조작을 이해할수 있다면 생명을 없애는데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덧 산과 강과 나무와 짐승들이 그 신성함을 잃고 밀어버리고 죽여없애도 괜찮은 존재로 하락했을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가 의미를 잃어버리기 시작한것이다.

 

시험관에서 아기를 만들수 있다면, 유전자 조작으로 아이를 만들수 있다면 인간과 짐승의 사이인 어떤 미지의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생명의 존엄이란 도대체 뭘 말하게 되는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이해는 사물을 객체화하고 종속변수화한다. 이해된 사물이란 아무 가치없는 존재가 되기 쉽다.

 

우리가 이무의미의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바로 우리가 여전히 매우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았다고 착각할때 모든 것은 시시하고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변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가. 여기 수박한통이 있다고 하자. 수박이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재배하고 어떤 맛인가를 안다는 것으로 우리는 수박에 대해 안다고 할수 있는가. 모든 수박은 다 똑같은 것인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평상에서 쩍쩍 갈라지는 수박을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마당을 바라보면서 한입 베어물었을때 그 입안에 들어있는 그 수박은 세상 어디나 있는 수박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의 대상으로 그시간 그장소 그런 환경에만 존재하는 수박이다. 아무리 많은 말로 그것을 설명해도 그것은 그 수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활기에 넘칠때 우리는 오히려 세상이 많은 신비와 무지로 가득차 있음을 알게되며 과학에 대해 잘 알수록 세상은 여전히 과학으로 설명된 것말고 무수히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의미를 찾게 되는 과정이다. 정신적 활기가 적을때 모든 것은 이미 질리게 먹은 음식을 또한번 먹게 되는 것처럼 지겨운 것이 되고 삶과 생명은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섯불리 모든 청소년은 똑같다고 생각하고 모든 여름 피서는 똑같다고 생각하며 모든 버스와 모든 꽃들과 모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해 되었고 우리에게 의미를 주지 않는다.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신이 뭔지 알아야 한다. 정의해야 한다. 그런데 신을 정의하면 신은 신이 아니게 된다. 많은 미신적 종교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적으로 분노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신을 믿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신이란 정의될수없는 무지이며 우리가 이해하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무지함을 믿고 자각할때 세상과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겸손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 신이라는 말에는 진실된 면이 있다.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양파를 벗기는 것과 같다. 우리가 우리의 어떤 것을 이해했다고 할때 우리는 그 껍질이 더이상 우리 자신의 일부가 아님을 깨닫는다. 이해하려는 과정자체는 객체화 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히 이해한다면 사랑이란 우리 자신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감기처럼 우리가 걸리는 증상에 불과한 것이 될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벗겨도 그 내부에는 우리자신이 남는다.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아무런 자유의지를 지니지 않은 기계인형이나 파블로프의 개가 보여주는 조건반사의 총집합이다. 우리가 살아야할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안에 우리가 이해할수 없고 정의할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가 존재함을 믿는 사람은 우리 스스로가 신이라고 생각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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