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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양천구 신월동과 서울의 미래

by 격암(강국진) 2008. 8. 4.

2008.8.4

이젠 수원으로 이사가셨지만 우리부모님은 신월5동에 오래사셨다. 집값이 싼 곳이고 대단한 공원이 주변에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곳은 나름대로는 살기 괜찮은 동네였다고 기억된다. 작은 야산도 하나있고 큰 길가로 나오면 여러가지 음식점이며 가게도 많아 나름대로 좋은 점이 많았지만 내 기억에 가장 좋았던 것은 공간의 여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연립밑의 평상에 앉아 동네주민들과 수다를 떠시곤 했다.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맘대로 자기들끼리 뛰어 놀아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목하듯 풀어놓고 기를 수 있었다.

 

그게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은 5년쯤 혹은 10년쯤 전부터 였다고 본다. 재개발붐을 타고 여기저기서 집을 허물고 더 고층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야산자락도 점점 더 아파트에게 자리를 빼앗겨 자연스러움이 줄고 인위적 공원같은 곳으로 변했다. 그렇게 되자 제일 먼저 피부로 느껴졌던 변화는 사람의 증가였다. 사람이 늘어나고 뜨내기 살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네인심이 흉흉해졌다. 쓰레기를 내놓는 일이며 소음이며 주민들이 서로 모두 잘알던 때는 잘 넘어가던 일이 통제가 어렵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웃들이 있는 우리동네라는 느낌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인사도 안한 이방인이라는 식의 느낌이 강해졌다. 두번째는 길이 위험해 진것이다. 고층으로 빌딩을 올리니 거주민이 많아졌고 차가 많아지니까 전처럼 골목길이라고 해서 마구 뛰놀기 힘들어 졌다. 주차전쟁은 전에도 있었지만 더 한층 심해졌다.

 

부모님은 결국 다른 이유지만 그곳을 떠나서 수원 영통의 아파트단지로 이사를 가셨다. 그곳에서 본 동네는 말하자면 신월동에 일고 있는 변화의 정점을 보는 것같았다. 연립주택에서 서로 모두 알고 지내던 분위기와 고층빌딩 아파트단지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이웃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고 그러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번잡했다. 몇십가구가 울안에서 살면서 평상에 앉아 잡담하다 서로 인사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선 고층아파트에서 어떻게 이웃과 사귈 수 있을까. 왜 이웃과 사귀어야 할까. 사람들은 어딘지 중요한 공동체의 일원에서 수많은 사람중의 한명인 이름없고 얼굴없는 부속품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고층아파트란 많은 사람들이 좁은 땅위에서 사는 장소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공간에 산다는 것은 같은 수의 사람들이 독립주택이나 저층아파트등에 살면서 넓게 퍼져서 모여사는 마을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 마을에서는 이웃이 의미를 가진다.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고층아파트에서 이웃이란 무시무시하게 많은 근처에 사는 사람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지도 느낄 수가 없다.

 

부동산 축재의 욕심은 애초에 인간이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든다는 생각하고는 같은게 아니다. 동네에 부담이 되고 나빠도 내 땅에 내 건물 짓는데 당신이 뭐냐는 식으로 개발은 진행되기 쉽다. 서울처럼 땅이 비싸고 개발의 이득이 높으면 사람들은 이성을 지키기가 더더욱 힘들 것이다. 덕분에 소위 뉴타운이라는 곳이 여러가지 시설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들었다. 부산에서도 유명한 센텀시티주변도 그랬다. 아파트는 유명한데 주변에 시설은 잘 안들어온다. 사람들이 성냥갑처럼 아파트를 지어놓으면 저절로 주변환경이 만들어질거라고 믿는 것일까. 영통에서 내가 본것은 너무 비인간적인 생활공간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못한 환경이 얼마든지있단다. 서울에 아파트는 계속지어지고 있고 이미 너무 많이 지어졌다는 느낌이다.

 

너무 많은 아파트가 지어진 곳은 어쩌면 가까운 장래에 빈민들이 사는 슬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지금 사람들은 마취가 되고 이성이 마비되어 삶의 질을 따지지 못하고 있다. 일단 아파트 값이 오른다는 전망이 멈추면 대탈주가 벌어지기 쉽상이다. 부의 상징이었던 타워펠리스가 실상은 불편하고 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은 주거공간이라는 이야기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한다. 부동산 거품붕괴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흔히 경제적 충격에 촛점을 맞춘다. 그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진짜로 가슴아픈 일은 또있다. 부동산 투기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한국의 여기저기가 중병에 들어있음을 우리는 알게 될것이다. 제일 병이 깊은 곳은 당연히 개발이 가장 치열했던 곳일것이다.

 

나는 옛날의 신월동이 마음에 든다. 옛날의 서울에도 장점은 있었다. 변하는 것이 발전을 위한거라는 말은 항상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투기에 편승하여 필요없고 무자비한 개발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우리의 소중한 마을들을 파괴해 버린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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