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프랑스 대혁명당시 상대적으로 사회변동에 온건한 지롱드당이 의회의 오른쪽 부분에, 급진적인 자코뱅당이 의회의 왼쪽 부분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좌익(左翼) 또는 좌파(左派)는 정치 성향 분포에서 우익의 반대편에 위치한 쪽으로 사회의 변동을 추구하는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편으로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중시하는 정치 입장을 말하기도 한다. 비슷한 말로는 진보주의가 있으며 세계사에서 볼 때에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를 좌익으로 본다. (다음 백과사전)
그러나 한국에서 좌파우파라는 말은 훨씬 애매모호한 말이다. 이 좌파우파 논쟁에는 숨겨진 함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말의 함정이다. 애초에 좌나 우는 방향에서 나온 말로 좌우로 세상을 나누면 좌도 우도 아닌 것은 없다. 중도란게 있을 뿐이나 그것은 역시 좌우개념에서 나온 것이므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과연 좌파세력의 반대는 우파세력일까? 이세상에 존재하는 사회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좌나 우의 개념으로 나누는 것이 온당할까.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민족주의자들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우리나라 우파를 자칭하는 한나라당이 민족주의자들에게 지지받는가? 그렇지 않으니까 민족주의자들이 우파인가? 민족주의라는 것은 당연히 전통의 존중을 주장하는데 보수가 왜 좌파인가?
오히려 이것은 한국을 지배하는 양대 세력이 자신들을 제외한 제3의 세력이 출현할수 없게 만드는 지배의 방식이다. 이세상에 존재하는 사고의 방식이 좌나 우 둘중의 하나밖에 없다는 식으로 판을 짜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오면 묻게 된다. 너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난 둘다 아니라는 답은 선택에 없다. 마치 넌 여자인가 남자인가 물었는데 둘다아니라면 사람이 아니라는 식이 되는 것처럼 좌우 딱지붙이기는 두가지 생각의 방식이외의 사고 방식을 숨쉴수 없게 한다.
한국의 좌파세력이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와 자본가,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분별과 대립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기괴하다. 가난한 포장마차 주인은 자영업자니까 자본가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훨씬 많은 돈을 벌어도 노동자일까? 포장마차주인이 노동자라면 점원몇명을 둔 중국집 주인은 어떤가. 고용주고 자본가인가? 중국집주인도 좌파가 말하는 기득권과 자본가가 아니라면 중소기업은 어떤가. 어디에다 우리는 선을 긋는가? 노동자라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노동자고 웹프로그래머같은 사람은 노동자가 아닌가? 여러가지 작업환경이 전혀 다른데 모두 싸잡아 한가지로 말하는게 온당한가.
한국에서 자기집 가진 사람은 상당히 많다. 이사람들은 전부 부동산투기를 하는 자본가인가?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돈없어도 요새많이 한다. 이사람들은 주주인데 자본가인가? 문제는 이사람들도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고 주가가 오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전통적 노동자 자본가 개념으로 생각하면 자본가적인 발상이다. 이들도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기본적 인권이 보장안되는 시대에 변화의 방향은 분명했다. 기본적 인권정도는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증거도 없이 권력이 개인을 죽이고 가두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투명한 선거정도는 해서 국민의 기본권인 투표의 권리정도는 제대로 발휘할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현실이 나쁘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고 해도 어디로 변화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그리 간단치 않고 단순하게 변하냐 변하지 않는가로 물을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좌파와 우파로 구분하고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또 그렇게 딱지붙이기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좌파 우파가 세상을 편갈라 지배하니 한국은 사상적으로 빈곤해 진다. 결국 어느쪽이나 낡은 생각을 강조해서 한국인들을 전부 바보로 만드는것이다. 결국 한국인은 좌냐우냐 둘중하나를 선택하면 끝이다. 한국의 책방이 모두 망하고 이젠 서점이 드문드문 있게 된것이 놀랍지 않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에게 책을 골라줄때가 많다. 그러다보면 난 불만을 터뜨리게 된다. 세상에 대한 시선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짜증이 나는 것이다. 한국의 창작동화는 한결같이 극빈자나 결손가정같은 사람을 그린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은근히 풍겨나오는 패배주의가 있다. 소설을 읽으면 독자는 소설의 주인공의 삶을 대신 경험하게 되는데 결론적으로 말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삶으로 가득차 있다. 설사 주인공이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글을 읽게 하고 싶지 않은것이다.
또 한국에 잘 히트치는 책이 성공담류의 책이다. 그런데 그런책을 보면 한결같이 깊은 철학이 없는 책들이다. 하버드 나 서울대 들어갔다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다. 고생한 이야기는 있으나 그안에 있는 것은 결국 개인적 성공이냐 실패냐의 문제이다. 거기에는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 이것은 결국 부자나 가난뱅이냐만을 보는 배금주의를 가르친다.
한국에서 진짜로 논해야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란 무었인가에 대해 선입견없이 논하는 것이다. 패거리 생각을 떼어내고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이 살만한 사회란 뭔지에 대해 그 기초부터 우리의 자신의 생각으로 논할 필요가 있다. 서양의 누구가 뭐라고 했다던지 너 그거 빨갱이 아니냐 뭐 이런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권위주의다. 자신생각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점과 생각에 메몰되는 것이다. 기본부터 생각해 보라.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낡은 생각과 배금주의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한국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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