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진보냐 착취냐

by 격암(강국진) 2009. 8. 25.

2009.8.25

사람들이 수렵, 채취 생활을 마감하고 정주하기 시작한 때는 인류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축적하는 규모의 시대, 잉여재산의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보통 특별한 진보로서 인류의 생활향상을 가져왔다고 찬양되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진보에는 의문이 남는다. 규모와 잉여재산은 착취도 시작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사냥을 하기보다는 약탈을 하는 쪽이 더 쉬웠다. 그런 시대가 오니까 사람들은 군대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켜야 했고 군대의 지휘자는 지배자가 되었다. 사회적 위 아래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일단 위아래가 생기자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은 착취를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다. 노동시간이 삶의 모든 걸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인간이라는 호기심많고 계획하기 좋아하는 생물은 본래 이렇게 살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말하자면 현대인들은 진보라고 불린 역사적 과정의 결과 죽도록 일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게 정말 진보일까?

 

이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생각을 계속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상, 철학은 어쩌면 착취에 대한 변명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 최초의 것은 신화였을 것이다. 흩어져 살던 원시인들은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신화를 만들었다. 그것은 신의 아들따위로 불리는 누군가에게 착취당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후에 사회적 규모가 더욱 성장함에 따라 민족같은 개념이 발생했다. 우리는 민주주의나 휴머니즘, 자유같은 추상적 말들도 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면 그런 말들은 흔히 다른 나라에 간섭하고 자국민을 지키기 위할 때 쓰인다. 미국이 인간평등을 말하지만 아프칸의 사람과 자국민의 목숨을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숭고한 이상과 추상적 가치는 진보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더 많은 착취를 위한 것일까?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는 서구인들은 흔히 그들의 발전을 진보의 결과로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의 발전같은 것으로 인해 그들이 부자가 되어 풍요롭게 살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소위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상태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게 너희들도 우리처럼 발전된 사회가 되고 싶으면 우리의 아름다운 사상과 지식을 열심히 공부해서 배우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건 도둑질로 부자가 되어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자신의 성공은 성실함과 정의로움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만약 그들의 성공의 비결이 결국은 누군가의 착취였다면 문제가 있다. 세계에는 이미 식민지배할 미개국가도 발견될 대륙도 노예로 부릴 사람도 없는데 산업계의 후발주자는 어떻게 부를 축적해서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착취의 구조는 미화되어졌고 복잡해졌다. 이제 착취는 단순히 착취자와 피착취자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착취의 피라미드 구조는 위에서 착취당하는 피착취자가 그 아래의 사람들을 착취하는 착취자가 되기도 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것은 착취라기 보다는 그저 사회적 관행이나 세상의 법칙정도로 이해되기 쉽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사람을 착취하고 있는 사람도 스스로를 착취자로 여기기 보다는 오히려 착취를 당하는 사람으로만 여기기 쉽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계속될 수 있을까? 착취가 성장의 필요 조건이고 그것이 착취의 피라미드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우리는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중국과 인도의 인구만 합쳐도 20억가까이 된다. 이들의 밑에 들어갈 피라미드의 다음 층이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거 아닐까? 전세계의 최하층민들은 이미 그렇지 않다면 가까운 시일내에 좌절하게 될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무지나 게으름이 아니라 이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기득권이 착취의 피라미드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 질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피라미드를 전부 부시고 새로 만들지 않는한 더 이상의 진보란 있을 수 없다. 행복한 삶이란 불가능하다. 피라미드 사기는 본래 그 피라미디의 성장이 멈춘 순간 한순간에 무너진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물론 생산성에 있어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지구의 인구를 생각할때 현재보다 소비수준을 증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석유자원과 환경자원등이 순식간에 동이 날것이다. 물고기를 아주 잘잡는 로봇이 있어도 바다에 물고기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 지구의 자원이 바닥날 정도의 소비를 단기간에 인공지능이 해결할 수는 없어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때에는 전쟁이 났다. 예를 들어 식민지 쟁탈전이 격화되고 더 이상 세계에 식민지로 삼을 곳이 부족해지자 유럽에서는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리고 수천만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었다. 그 결과 전면전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졌고 인구가 줄어든 덕에 짧은 기간이지만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는 황금시대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인구는 다시 늘었고, 전세계의 낙후된 곳에 있는 사람들도 시장질서에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과 인도와 베트남같은 곳에서 엄청난 수의 대학졸업생들이 배출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전세계 각지에서 좌절하고 있다. 늘어난 수명때문에 죽지도 않는 노년세대, 성장할 곳이 없는 세계, 격화되는 경쟁, 해결할 방법이 있을수 있을까?

 

선진국은 대개 인구를 줄이려고 한다. 정부는 그걸 바라지 않지만 국민들의 반응이 그렇다. 한국도 버젓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시키려면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기에 국민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그러나 후진국에서는 그대로 엄청난 수의 아이들을 낳는다. 자유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것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핵무기가 아니라도 무기가 너무나 발달한 오늘날 진정한 전면전은 벌어지기 어렵다. 그 덕분에 압력은 올라만 가고 있는 것같다. 마치 강력한 증기압을 압력으로 누르는 압력솥뚜껑이 존재하는 것같은 상황이랄까. 그래서 이 뚜껑이 망가지면 이번에는 충격이 훨씬 더 엄청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게 될까? 이 뻔한 문제에 뻔한 답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너무 가슴아픈 일일테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