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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간단한 확율계산에서 배우는 지혜

by 격암(강국진) 2009. 6. 26.

서구 수학과 과학의 강점은 표준화와 엄밀성에서 나온다. 즉 1+1=2라는 수식은 언제 어디서나 참이다. 이렇게밀화되고 시공을 초월한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을 쉽게 축적할수 있고 분업을 통해 거대한 지적 구조물을 만들수 있다.  


지적 구조물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말고 좀 더 구체적인 것을 생각해 보자. 우리 주변에는 이루 말할수 없이 많은 부품으로 이뤄진 기계들이 많이 있다. 자동차, 컴퓨터, 비행기, 핸드폰은 물론 자전거 같이 간단해 보이는 것도 실은 많은 부품들이 조립되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자전거에 있는 부품의 이름만 생각해도 바퀴, 변속기, 체인, 페달, 브레이크, 포크, 안장, 차체, 핸들바등 가볍게 수십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기아도 여러개의 부품으로 되어 있다고 할때 자전거의 부품의 수도 나누기에 따라 몇백개가 되고 마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렇게 여러개의 부품으로 되어 있는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확율에 대해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 여기 부품이 하나 있다. 이 부품의 고장율을 1/2이라고 하자. 둘중 하나는 불량품인 부품이다. 이런 부품 두개를 연결해서 기계를 만든다면 전체 기계가 작동할 확율은 얼마나 되는가.


답은 1/2*1/2=1/4이다. 


그럼 이런 부품을 열개가 모이면 어떻게 되는가.


답은 (1/2)^10 = 1/1024다.


백개가 모이면 어떻게 되는가. 


답은 (1/2)^100 =  1/(7.88*10^31)이다.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을 만큼 정상적인 기계가 만들어질 확율이 낮다. 


물론 이건 부품의 불량율이 무려 50%나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량율 1%의 기계는 어떨까. 백개중의 하나만 불량한 부품이다.  그래도 정상적인 기계가 나올 확율은 36.6%로 약 3대중 하나만 정상이 된다. 이렇게 보면 엄청나게 많은 부품을 가지고 움직이는 기계들이 위대해 보인다. 물론 이때문에 복잡한 기계를 만들때는 부품하나가 고장나면 전체가 서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쓰이는 데이터 압축이나 주고받기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데이터를 원래의 형식에서 더 잘 압축된 형식으로 만들면 저장을 하거나 데이터를 주고 받는데 효율성이 좋아진다. 예를 들면 mp3같은 음악파일도 원래의 음악신호를 분량은 작게하고 손실은 적도록 압축시킨 전자파일이다. 그런데 파일이 길면 에러가 생기게 된다. 압축방식에 따라 하나의 에러가 전체 데이터를 모두 망치게 할수도 있다. 이런 것은 말하자면 나쁜 압축방식이다. 데이터는 길고 에러는 언제나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에러 수정의 문제이다. 


기계 이야기는 이쯤하고 지적 구조물이란 말로 돌아가보자. 기계나 전자제품만 지적인 구조물이 아니다. 책이나 논설문이나 사설도 수학적 증명이나 이론 물리학 이론도 사실은 지적인 구조물로 여러개의 부품들로 이뤄진 기계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어 단어, 사실과 주장은 여러개의 논리로 이어져서 사슬처럼 계속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4*4=16같은 것을 알고 있다. 이쯤되면 우리는 이것을 세어보면서 증명할수도 있지만 4000*4000=16000000 이라는 식은 분명히 일일히 세어보고 증명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산수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산수를 하는 방법은 곱하기의 성질에서 찾아 낸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것에서 더 복잡한 것으로 우리는 논리를 쌓아 나간다. 논리의 조각은 뭉쳐서 벽돌처럼 되고 논리의 벽돌이 모여서 논리의 집이 되며 논리의 집이 모여서 논리의 도시가 되는 식이다. 이것이 수학의 힘이다. 그래서 결국은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전혀 당연해 보이지 않는 복잡한 수학공식 같은 것을 증명해 내는것이다. 


그런데 수학은 매우 엄밀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1=2라는 사실은 시공을 초월해서 참이다. 말하자면 수학적 논리의 구조물은 매우 불량율이 적은 부품들로 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수백 수천페이지의 증명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경우는 그 결과를 신용할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증명이 수학이 아니라 단어와 문장으로 이뤄진 경우는 어떨까. 단어와 문장은 문맥에 따라 그 뜻이 바뀌거나 의미가 불분명해 지는 수가 많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논리적으로 분명해 보이는 글이나 주장도 사실은 매우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하물며 우리가 쓰는 언어는 상당수가 외국에서 온 경우가 많다. 그것은 번역된 것이다. economy는 왜 경제학일까. inflation은 물가상승이다. 단어의 뉘앙스가 바뀌고 그것이 중첩되면 읽은 사람은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수 있다. 이런 분명한 단어들도 그런데 새로운 공학적 과학적 철학적 단어들은  더욱 그렇다. 우리가 번역하여 읽는 인구론이나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과연 오해의 소지가 없이 읽혀지고 있을까. 


사람은 또한 뻔한 논리적 실수도 잘 저지른다. 유명한 3단 논법도 오류가 쉽게 발생한다. 삼단논법은 이런것이다.


A는 B다.

B는 C다

따라서 A는 C다.


그렇다면 다음의 논리를 보라.


그녀는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형용사이다.

따라서 그녀는 형용사이다.


말이 되는가? 이것은 각 단어가 쓰인 범주에 착오가 일어났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우리는 또한 인과적 순서를 자주 혼동한다. A이면 B이다를 B이면 A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범죄자는 가난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은 범죄자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의 대다수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선입견을 가진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증거가 될수 없는 작은 일들때문에 선입견을 가진다. 


우리 모두는 우리 주변의 소수의 사람만을 만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재산의 정도와 지역, 교육받은 정도와 직업에 따라 그 소수의 사람들은 대개 특별한 사람들일뿐 우리 사회의 평균적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박사들에 둘러쌓여 사는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의 행동습관을 당연하게 여긴다. 부자들에 둘러쌓인 사람은 부자들의 사고방식을 지나치게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넓은 시야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금새 우리의 행동과 사고 방식은 근거없는 선입견으로 가득차게 되기 쉽다. 그리고 옳지 않은 불량논리를 쉽사리 긍정해 버리게 되고 마는것이다. 


누구도 이렇게 바보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고 자신 할 수는 없다. 특히 공허한 약속을 던지는 것이 중요한 기술이 되는 정치가들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고의적으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을 국민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속아 넘어간다.  


장자 천도편에 보면 유명한 옛사람의 찌거기라는 말이 나온다. 제환공이 책을 읽고 있는 편륜이라는 목수가 수레바퀴를 깍다가 제환공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책이 누구의 책이냐고 묻자 제환공은 성인의 말씀이 적혀 있다고 말한다. 편륜은 다시 그 성인이 살아있냐고 묻고 그 성인이 이미 죽음 사람임을 알게 되자 제환공에게 전하는 옛사람의 찌거기를 읽고 계시군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화를 내는 제환공에게 편륜은 자신의 예를 들어 말한다. 자신이 바퀴를 만드는 것도 누군가에게 가르치려고 하니 말로 전할수 없는 것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성인의 재주도 말로 전해 질리가 없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때 지나치게 논리에 빠져 그 말을 절대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을때도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 글이나 이야기라는 것은 문맥에 따라 다른 뜻이 되기도 해서 말을 하는 사람의 문제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의 선입견이나 상황이 해석을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성인이나 세계적 석학의 말이라고 해도 말은 말일뿐이어서 그뜻은 잘새겨야 하지만 잘 모르면서 그 권위에 복종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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