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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이 세계는 원자로 이뤄져 있다.

by 격암(강국진) 2009. 6. 25.

9.6.25

유명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인류의 모든 과학적 지식이 소멸되고 단지 한마디의 메세지만 후세에 남겨야 한다면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무엇일까 하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가 제안한 답은 바로 이세계는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이 정보로 부터 우리는 수없이 중요한 결론들을 유추해 낼수 있다. 

 

물이 수소 원자 두개에 산소 원자하나로 이뤄져 있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주변을 둘러싼 여러가지 물건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것들은 보다 적은 숫자의 원자들이 합쳐져서 이룩된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여러가지 빌딩들이 많지만 그것들은 모두 -빌딩의 경우는 모두라고 할수 없지만- 벽돌과 시멘트와 철근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세상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첫번째 교훈은 이 세상에 신비로운 마법의 원소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주기율표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원자들의 목록을 죽 볼수 있다. 이 세상에는 그것밖에 없다. 물체에 생명을 주는 신비의 원소라던가 유령들만이 가지거나 엘프나 도깨비만 가진 신비의 원소는없다. 

 

또한 주기율표가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긴 것도 아니다. 그저 표하나다. 이 세상에는 그것밖에 없다. 물은 물이다. 특별한 물이 있는게 아니다. 모든 물분자는 수소원자 두개에 산소원자 하나로 이뤄져있다. 낡은 물, 새로운 물이 있는게 아니다. 원자들의 숫자도 너무 많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그걸 쪼개서 생각해 볼수도 있다. 원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이뤄진 것이다. 그 안에 부속품이 수만 수십만개가 들어 있는 복잡한 구조가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할수 있다.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 지식자체가 아니라 세상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능한 것이라는 희망이다. 많은 것들이 정확히 서로 같다는 것은 우리가 자연의 다양성에 압도되어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을 막아준다. 우리가 매우 호사스럽고 멋지고 맛있는 음식들을 수백 수천가지나 보고 기가 죽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누가 말해준다. 음식은 수없이 많지만 재료는 달걀과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야채 몇가지와 소금, 달걀, 우유가 전부다. 이제는 우리도 그런 요리의 조리법을 이해할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준다. 모를 때는 그 방법이 수없이 많을 것같았지만 이제 재료를 알고 나니 자신감이 든다.  이해할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세상이 원자로 이뤄진걸 알고 나면 세상에 대해서도 훨씬 그런 생각이 든다. 

 

신비주의,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에서 사물을 이해할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 그런 태도를 가지는 것은 살아가는 방식을 대단히 바꾼다. 그것은 바로 권위주의적으로 관습에 따라 주어진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서 합리주의적으로 독립적 사고를 통해 행동하게 만든다. 이 세상이 이해 가능하다면 우리 회사는 어떨까, 우리 사회는 어떨까. 우리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판단할수 있지 않을까? 이러저러하게 원래 그렇게 하게 되있다고 관습에 따르거나 운에 맡기는 태도를 버릴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민주적인 사고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학적 원리와 사실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다. 프랑스나 미국에서만 세상이 원자로 이뤄진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수 없이 넓은 이 우주 전체가 원자로 이뤄져 있다. 대통령이나 백수나 세계 최고의 부자나  가난뱅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모두 다 같은 원자로 이뤄진 것이다. 미국인도 유럽인도 한국인도 똑같다. 강력한 독재자의 몸에는 신비의 원소가 들어있는게 아니다. 그의 몸속에 있는 물분자는 내몸속의 물분자와 정확히 같다. 흑인과 백인과 황인은 서로 달라보이지만 그 근본을 보면 결국 우리는 모두 원자로 이뤄진 존재들이다. 우리는 평등한 것이다. 

 

에너지나 열은 이런 원자들이 움직이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버스에서 누군가가 앉아있었던 자리에 앉으면 앞사람의 체온이 느껴진다. 때로는 이런 체온이 기분나쁠때가 있다. 그러나 열이나 에너지란 매우 비개인적인 것이다. 개개인이 특별한 에너지를 뿜어서 그런 신비로운 기운이 내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 열기가 개에서 나오건 미녀에게 나오건 흑인에서 나오건 가난뱅이에서 나오건 부자에게서 나오건 모두 같은 것이다. 

 

실은 이런 생각들이 유럽사회에서 소위 계몽주의라고 불리우는 사조를 낳기도 했다, 계몽주의는 유럽의 17-8세기의 정신적 사조를 말하는 것으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의 이성에 의존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꾸려갈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인간의 평등과 자유에 대한 신념으로 이어져서 미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계몽주의 다음의 정신적 사조를 낭만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는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중엽까지의 기간 동안유럽에서 유행한 것으로 계몽주의의 반대 작용으로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은 이상화와 합리화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고 세상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해서 흥분과 감동의 세계로 몰려 갔던 것이다. 

 

과연 그렇다. 우리는 과학을 맹신하고 과학이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없이 처음부터 인간의 이성을 포기하고 권위주의에 굴복하고 무분별한 흥분을 추종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시공을 초월하는 과학적 원리는 합리주의를 추구하고 머리를 쓰면서 살라고 한다. 이 세상은 어디나 원리적으로 평등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나라는 개인을 우주라는 엄청난 규모의 세계와 연결지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 몸안에 있는 원자들이 바다를 만들고 땅을 만들고 별을 만들고 우주를 만든다. 우리는 합리주의를 잊어서는 안된다. 과학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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