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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백명의 아내보다 한명의 아내가 만족스러운 이유.

by 격암(강국진) 2009. 9. 15.

2009.9.15

머릿말

 

이런 말들을 한번 되새겨 보자. 

 

자동차는 편리하지만 인간의 허벅지에 대한 위협이다.

계산기는 편리하지만 인간의 산수능력에 대한 위협이다. 

네비게이션은 편리하지만 인간의 길찾기 능력에 대한 위협이다.

 

우리는 이 목록을 끝없이 늘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목록에서 흔히 거론되어지는 교훈이란 너무 편한거 좋아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자동차 타기에 길들여지면 비만이 되고 다리가 약해지며 기계에 의존도가 높아지면 계산하거나 길찾는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 

 

그러나 그런 걸 제쳐놓고 뻔하지만 흔히 간과되어지는 질문에 촛점을 맞춰보자. 오늘날 혹은 더더욱 기술발달이 이뤄지는 가까운 미래에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에 쓸모가 있는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위치에 대한 두가지 우화

 

인간의 가치는 질문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가지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 하나는 회사의 사장으로 모든 일은 아랫사람들이 해주고 회사에 아무런 영향도 못미치는 사람이다. 어느새 회사일은 너무 어려워져서 이젠 감놔라 배놔라도 못할정도가 되었다. 모든걸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하겠지만 어느날 그는 깨닫는다. 그가 존재하는 의미는 더이상 이 회사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또하나의 그림은 영화에 흔한 것이다. 터미네이터 영화가 좋은 예이지만 우리는 수많은 영화에서 인간성을 가진 강력한 기계에 대한 이야기를 본다. 왜 이런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까. 인간은 기계들의 봉사를 받는다. 자신은 언제나 기계들의 주인으로서 제국의 황제처럼 군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저것 다 기계들이 일을 대신해주던 어느날 인간은 깨닫는다. 도대체 나는 뭐에 쓸모가 있는가.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위의 사장이야기와 대단히 비슷하지 않은가?

 

이미 우리곁에 있는 미래

 

나는 가까운 미래에 인간처럼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가 출현할 것이니 미래에 대비하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것은 아니다. 그런 미래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지만 질적인 의미에서 그런 미래는 이미 와있다. 그것은 인간과 시스템이 경쟁하는 구도로 인간의 능력이 시스템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다. 그 시스템이 100% 기계로 이뤄진게 아니라 인간으로 이뤄 져있어도 시스템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런 미래는 이미 온것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며 컴퓨터, 집 그리고 자동차는 물론 우리가 소비하는 정보들, 신문, 방송, 인터넷 뉴스들은 친구가 주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워낙 복잡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어떤 개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인간미를 가진 기계를 논했기 때문에 친구를 대체하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사람들이 오직 이웃과 만나고 대화함으로서만 인간적 유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을 때 사람들은 각자가 타인에게 친구로서 쓸모가 있었다. 친구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고 함께 놀아도 주고 밥도 같이 먹어준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씩 시스템에 의해 개량되었다. 그 결과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즉 더이상 그들은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놀지 않는다. 인터넷을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우리는 기계가 애인을 대신해주는 시대를 상상하지만 사실 현대적으로 합리화된 연예, 매춘 시스템은 기계나 마찬가지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을 향해 고백하고 웃어주는 남녀 연예인들은 도대체 뭘 위해 봉사하는 걸까? 매춘 장소에 가면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는 여자가 존재한다. 그 여자는 물론 연기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녀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다. 그녀는 시스템의 일부고 기계의 부속품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매춘이나 연예산업이나 가상 현실 캐릭터 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것도 그렇다. 원나잇 스탠드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은 과연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일종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대체될수 있는 존재로 서로를 인식할 때 우리는 진짜로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시스템의 일부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나 연인으로서의 인간이 그런 존재가 주는 즐거움을 주는 시스템에 의해 대체될때 인간이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가지는 유용성내지 의미는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만다. 연애를 하기보다 스타의 사진집을 들여다 보고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 몰두하는 세대에게 이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이혼율이 올라가며 결혼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시대에도 우리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래는 이미 와있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유용성이 기계나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어 버린 시대다. 인터넷과 컴퓨터, 핸드폰은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속력을 크게 증가시켰다. 엄청나게 많은 서비스가 개발되고 전에는 인간만이 줄수 있었던 혹은 인간이 훨씬 잘하던 어떤 것을 시스템이 대신해 준다. 그래서 친구의 위로는 정신과 상담의의 상담으로 대체되고 사랑은 연예, 매춘사업들이 대신해 주고 아이들 교육은 학원이며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신해 준다. 그래서 친구와 친구는 멀어지고, 연인과 연인은 멀어지고, 부모와 자식은 멀어진다. 친구는 정신과 상담의와 경쟁하기 힘들고 연인은 최고로 잘 차려입은 연예인이나 매춘부와 경쟁하기 힘들어지며, 부모는 교육시스템과 경쟁하기 힘들어진다. 

  

인간만이 할수 있는 것이 뭔가를 찾아야 하는 이유. 

 

여기서 나는 친구로 연인으로 부모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 단순하게 맞고 틀리고를 논할 문제도 아니다. 자동차때문에 다리가 약해졌으니 세상에서 자동차가 없어질까? 우리는 자동차를 버리고 걷기를 해야 한다는 메세지는 옳은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반문명적이다. 단순하게 옳고 그름을 논하기 힘들다. 이런 논리를 정직하게 추구하자면 우리는 사실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굉장히 중요한 다른 질문은 이것이다. 시스템이나 기계보다 하나의 개인인 인간이 잘하는건 뭔가. 너무 쉽게 그런게 없다고 하지 마라.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CEO나 대통령같은 사람은 없어야 한다. 왜 최종결론을 내리거나 시스템에 정지명령을 내릴수 있는 하나의 인간을 두는가. 그냥 모든 결정을 시스템이 알아서 하게 하지. 기계와 시스템이 과연 친부모와 자식간에 나누는 의미를 대체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 부모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100명의 선생님과 백권의 백과사전, 100개의 학교보다 단 한명의 인생의 스승이 소중할 수 있다. 그것은 아직도 기계와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능력이 하나의 개인인 인간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위에서는 약간 비관적으로 말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연애가 어떤 시스템보다 더 큰 만족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세상에 아직 진짜 연애가 남아 있는 이유다. 하물며 배우자는 더더욱 그렇다. 평생을 같이 살아가는 배우자는 더 젊고 아름답고 자극적인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상당경우는 그렇다. 배우자란 서로에 대한 이해, 추억으로 특별하게 진화하고 최적화된 존재이다. 100명의 아내가 한명의 아내보다 항상 더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세상의 변화는 엄청나다. 인류역사에서 최근의 50년 정도만 인간은 컴퓨터를 가졌고 인터넷의 대중화는 20년 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20년 정도후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 상상하기 두려울 정도로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변화의 상당부분은 인간이 기계나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로 자동차시대에 마차를 돌보는 직업이 없어지듯이 한 개인으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잘 못해내는 인간은 기계와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어 매우 비참하게 살게 될것이다. 그들은 실질적 의미에서 기계부속품이나 가게의 장식과 마찬가지다. 연예산업에서 이용되고 잊혀지는 가수나 배우들이며 올림픽의 영웅으로 조명받다가 잊혀지는 운동선수들, 회사에서 10여년 죽도록 일하다가 버려지는 셀러리맨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게 무슨 의미 인지 알 것이다.  

 

그럼 도대체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

 

어느 정도의 답은 위에서 주어졌다. 인간은 잘하는데 기계가 잘못하는 것으로 유명한 것에는 패턴 인식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필기체를 인식하거나 흐릿한 그림을 보고 그게 뭔지 알아보는 능력이다. 실은 몇십년간의 연구로 이제 컴퓨터도 단순한 패턴인식은 꽤 한다. 그래서 음성인식이나 필기체 인식 프로그램이 흔하다. 그러니까 결정을 내리는 분야도 기계가 밀고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기계나 시스템이 큰 우위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패턴인식이 어려운 것은 규칙을 찾고 능력이 뭔가를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아니라 워렌버핏같은 사람의 예술적 감이 투자세계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회사에는 CEO가 있고 국가에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있는 것이다. 기계는 예술적 작품이나 디자인안에 있는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심금을 울리는 작품과 삼류작품을 구별하기 어렵다. 그 안에 있는 직관을 기계는 아직 따라잡지 못한다. 

 

한 사람의 결정보다 몇사람 수십사람 혹은 수백사람으로 이뤄진 시스템의 결정이 옳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같지만 실은 이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시스템 속의 인간은 개인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똑똑한데도 시스템이 멍청한 일은 자주 일어난다. 우리는 이것을 국회에서 아주 극명히 매일같이 보고 있다. 

 

즉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큰 장점에는 규칙을 찾고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주관이고 자기 세계관이고 결단력이다. 이것은 단순히 남과 틀리게 산다던가 자유롭게 산다는 것과는 다르다. 통찰력과 자기 나름의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없는 인간은 지금 시대도 그렇지만 가면갈수록 비참하게 살게 된다.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약간씩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자기의 인생을 살고 있다. 미래를 위한 아이 교육의 필수는 이것이다. 단순 지식으로 인간이 위키피디아 같은 백과사전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위키피디아는 인간이 하는 것을 못한다. 

 

두번째, 개인인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에는 가족을 만들고 의미있는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배우자가 되는 일도 있다. 즉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오랜동안 쓴 자동차에 가지는 애착을 경험한 사람은 오직 인간만이 의미있는 존재가 될수 있다는 말에는 동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기계에 칭찬받는 것보다는 인간에게 칭찬받고 싶어한다. 보다 특별한 존재에게 칭찬받고 싶어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데 있어서 재능이 있다. 성격이 나빠도 우리는 인간친구를 가지고 싶지 로보트 친구를 가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배우자가 되는 것은 일견하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다가 돈과 관련되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에 고리타분한 도덕적 설교와 관련있는 낡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다. 그러나 실은 요즘 세상에는 진정한 사랑이 없다라는 말에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요즘 세상에서는 얼핏 매우 쉬워 보이는 일도 대단히 어렵다. 

 

나는 가족이 있고 연인도 있고 배우자도 있고 친구도 있다고 해서 쉽사리 나에게는 진정 그런 것이 있다고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에는 인간과 인간관계를 시스템과 시스템이 만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생활습관과 유행이 흔하다. 진짜와 연기하기는 오랜 시간을 들이거나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구분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지고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애정, 존재하지 않는 우정, 존재하지 않는 가족간의 유대를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기가 쉽다. 

 

이런 생각은 관념론과 유물론의 싸움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은 두남녀가 키쓰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누구나 부러워 하는 곳으로 하니문여행을 떠나는 외면적 형식이 충족되면 두남녀는 사랑하는 것이고 행복한 가족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기억하라. 외면적 형식과 자극은 쉽게 연기와 시스템과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것이다. 대체되기 쉬운 것으로 삶을 채우는 한 두 남녀는 아직 만난게 아니다. 

 

오늘날 인간의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능력은 당연하다기 보다는 많은 수련을 해야 얻을수 있는 능력이다. 빗속을 걷는 사람이 우산이 있어야 젖지 않는 것처럼, 공부하고 수련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현대사회의 인간은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그런 능력을 잃어버린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의 아이들은 더더욱 그런 능력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21세기의 인간이 19세기의 인간보다 더 사랑이 충만한 시대에 산다는 것은 거짓된 신화다. 진실은 거꾸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것은 대체품일 수 있다. 실은 이세상에는 대체품밖에 없으며 진품사랑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흔하다. 

 

맺는말

 

가치와 판단을 위한 직관력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받아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능력이야 말로 21세기의 인간이 개발해야할 중요한 능력이다. 우리는 이걸 써서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야 하고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줘야 한다. 이 능력들이 없는 사람들은 미디어들이 만드는 매트릭스 안에서 헤매다가 결국에는 남의 조종을 받고 평생을 이용당할 뿐이다. 또한 이들은 한때는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주변의 조명을 받으며 부러움을 사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윽고 정서적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다타버린 양초처럼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말거나 잊혀지고 만다. 이들은 대체품이 너무 많은 시대에 그저 시스템의 흔한 부속물로만 세상을 살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 삶의 의미는 자신이 내린 판단과 자신과 특별한 의미를 주고 받는 사람에 의해서 보통 주어진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태풍이 부는데 닻을 내리지 않은 배처럼 무의미의 대양을 떠돌다 침몰해 버릴 뿐이다. 백명의 아내보다 한명의 아내가 만족스러운 이유는 물론 그녀가 내게 특별한 존재이며 내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등대로서 서로에게 빛이 되기 때문이며 우리의 삶을 안정시켜주는 든든한 기둥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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