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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패러다임, 상자밖에서 생각하기, 고정관념의 탈피

by 격암(강국진) 2009. 7. 8.

2009.7.8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1962년에 출간되었고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렸다. 그리고 상자밖에서 생각하기 (Thinking outside the box)라는 표현은 비즈니스쪽에서 널리 쓰이는 말로 그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1969년의 존 아데어가 쓴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에서는 여러가지 일들이 1960년대에 있었다. 히피문화가 퍼진것이 1960년대였으며 유명한 우드스탁 페스티발이 1969년에 열렸다. 히피문화는 자유와 사랑을 외치고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주장했다. 케네디가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암살당한 것이 1967년이고 마틴루터킹이 흑인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암살당한 것은 1968년의 일이다. 베트남전쟁은 1959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되었으니까 1960년대는 또한 전쟁과 반전의 10년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적 환경을 생각하고 보면 패러다임이라던가 상자밖에서 생각하기 같은 말의 뜻이 조금은 다르게 생각된다. 그것은 격동하는 사회적 변화속에서 나온 말이다. 이 시절은 기존의 생각에 대한 의심이 높아지고 변화가 크게 요청되던 시기였다. 

 

요즘 이 두가지 말은 지나치리 만큼 자주 쓰이고 있으며 주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창조론을 주장하는 기독교도들은 진화론 같은 것을 하나의 받아들여진 진실로 보는게 아니라 하나의 생각하는 패러다임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진화론도 하나의 고정관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요즘은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뭐든지 정당화하는 편리한 도구가 되었다. 너와 내가 다르다면 나는 항상 너와 나의 패러다임이 다르다고 말할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은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해는 내일이라도 서쪽에서 뜰수 있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해서 마치 해가 동쪽에서 뜨는지 서쪽에서 뜨는지에 대한 의견이 반반으로 갈린것 같은 인상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뭐든지 그렇지만 그 의미에 대한 깊은 사고 없이 그걸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던가 패러다임에 갇히지 말라는 말이 남발되면 하나의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 즉 한가지의 생각하는 방식이나 관점을 깊숙히 이해하고 그 안의 논리를 세세히 알아서 어떤 관측사실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하거나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아주 표면적인 이해만으로 기존의 사고를 거부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비합리주의를 옹호하고 몰상식하게 행동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습관화하는 결과만 가져올뿐이다. 지적인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것 뿐이다. 애초에 토마스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쓸 때 논했던 것은 그 엄밀성이 최고로 말해지는 수학이나 물리학등을 기본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과학혁명은 기본적으로 전문가들인 과학자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다. 아무 엄밀성도 치열한 논리적 탐구도 없는 일반인이 아무 생각이나 하고 새로운 개념을 던지면 과학혁명이 일어나는게 아니다. 기존의 과학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세세한 지식을 통해 기존과학의 한계를 깨닫고 과학은 혁명을 겪는 것이다. 

 

많은 피땀을 흘리고 기본적인 것을 습득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새로운 관점에 열려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노력을 생략하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인류가 쌓아온 길고 긴 역사적 축적을 모두 무시하고 자유롭게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들어 내겠다는 것밖에는 안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고 해도 필경 그런 사고는 수백년이나 수천년전의 누군가가 훨씬 높은 수준으로 엄밀하게 사고 한것을 다시 한번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기 쉽다. 하나의 시각에 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넘어 가는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들의 논리적 모순성을 볼 만큼 치열한 사고를 하지 않은 채 이것저것 제멋대로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창의적인 교육이나 창의적인 생각하기란 요즘시대에 어디나 있는 말이다.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해없이 행해졌을때 엄밀한 논리와 지식을 축적하고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버릇은 없어지고 그저 지적으로 게으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말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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