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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창의력 교육에 대한 일본에 사는 사람의 생각

by 격암(강국진) 2009. 9. 16.

창의력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지는 오래 되었다. 서점에서 어린아이들 책파는 곳에 가면 어린 아이 머리좋게 해준다는 책이 여기저기 나와 있다. 일본도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일본이라는 사회가 창의력을 키우기에 좋은 사회는 아닌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면 한국은 좋을까? 일본에서 느끼는 창의력교육의 문제점으로 한국을 바라 보았을때 우리는 뭘 배울수 있을까. 


하루는 가족이 모두 차를 타고 가까운 사티 라는 쇼핑몰에 갔다. 그런데 마침 쇼핑몰 맨 윗층 홀에서는 나무 조각 장난감 시연회를 하고 있었다. 커다란 광장에 산처럼 나무조각을 쌓아놓고 그걸 맘대로 쌓고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옆에 붙은 현수막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창의력을 기르는 나무조각 쌓기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그 무더기 옆에 앉아 이것저것 쌓아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본격적으로 행사를 시작한다면서 강사를 보란다.  강사는 여러가지 쌓는 기법을 오래 오래 설명한다. 금새 지루해 진다. 글쎄 이러느니 그냥 아이들이 맘대로 노는게 좋지 않을까? 


강사는 이윽고 성만들기를 설명한다. 강사가 맨 아래층을 쌓고서 아이들에게 알려주니까 거기있는 아이들이 모두 달려들어 똑같은 패턴으로 벽을 쌓는 것이다. 사람이 들어가 앉을 정도의 거대한 벽이 금방 만들어졌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하지만 나는 뒤에서 한숨을 쉬었다. 창의력을 길러주는 장난감이라고 선전하면서 뭐가 이런가.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단순작업일 뿐이다. 전체 디자인은 강사가 준것이고 같은 패턴으로 조각을 쌓고만 있다. 그렇게 나무조각 장난감 시연회 시간은 끝나버렸다. 


사실 일본의 학교에서는 유독 이렇게 친구와 똑같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똑같이 를 강조하는 교육이 심하다. 매뉴얼을 따라하는 습관이 있다는 일본인은 학교에서 사회에서 이렇게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일본 초등학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들고 다니는 란도셀이라고 불리는 가방이 있다. 네모난 가죽가방으로 무거우며 대개 터무니 없이 비싸다. 우리나라돈으로는 최고 비싼게 아니라도 3-40만원씩이나 한다. 그럼 이 가방은 교복처럼 정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나 똑같은 가방을 맨다. 


차라리 교복이니까 똑같은 것을 쓴다고 하면 좋을 것이다. 왜냐면 그말은 학교에서 이것 저것은 교칙상 똑같은 것을 쓰기로 했습니다라고 정했다는 이야기며 다시 말해 그것 이외의 것은 자율적으로 맘대로 쓸수 있다는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학교의 분위기는 뭐든지 똑같이 하는 것을 선호 하는 분위기 이다. 즉 범위가 한정이 없다. 그래서 노트도 실내화도 조각칼도 심지어 연필이나 지우개도 모두 똑같거나 아주 비슷하다. 


일본에 있는 이런 집단주의적 경향은 주의해서 보면 사방에서 들어난다. 아침에 공원에 가면 아침체조 방송이 울린다. 동네에는 매일 같이 이런 저런 스피커 방송이 울린다. 어린이 여러분 이제 집에 들어갈 시간입니다. 뭐 이런 방송이다. 말해두지만 여기는 산골이 아니다. 여기는 동경은 아니지만 동경경계선에 붙어있는 도회지다. 연구소도 하루종일 이런 저런 방송을 한다. 에어컨을 꺼달라. 누가 방에 들어가서 창문 검사를 할것이다. 지금 무슨 감사중이니까 조용히 해달라.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자에게는 이런 일본이 끔찍하게 보일수 있다. 그리고 이런 풍조가 존재하는 일본에서 과연 창의력교육이 어떻게 가능한가는 상당히 의구심이 든다. 내가 본 교실의 한풍경은 이것을 잘 말해준다. 하루는 수업참관을 같더니 아이들 그림이 붙어있었다. 사람을 그린것인데 모두가 구도가 똑같다. 같은 자리에 얼굴이 있고 몸은 이만하고 한게 이렇게 같을수가 없다. 알고보니 선생님이 모두 윤곽을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거기에 색을 칠하고 눈코입을 채워넣기만 한것이다. 미국에서는 유치원에서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두고서 창의력을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런 일본의 현실은 그 자체로 분명히 창의력교육에 나쁜 것이지만 일본에 나쁜 것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일본이란 사회는 여러가지 구멍으로 이뤄진 사회다. 하나 하나의 구멍안에서는 똑같이 똑같이가 매우 강조되지만 일단 구멍밖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다. 일본이란 사회를 아주 가까이서 본다면 그래서 하나의 구멍안, 하나의 학교, 하나의 회사를 보면 그안에 존재하는 엄격한 질서와 보수성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일본이란 사회를 전체로 보면 일본에는 대단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지역마다, 계층마다, 여러가지 집단의 사람들이 매우 다르게 살면서도 공존한다. 


이것은 일본이라는 사회가 강조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은원과 화합일뿐 어떤 원리나 구체적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고  일본이 여러가지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각자의 조각이 각자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막부시대식의 구조에 사람들이 익숙하기 때문 인것같다. 다시 말해 일본인 이라는 틀안에 모두를 집어넣고 모두가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모두가 공유해야 할 일본인의 미덕으로 통용되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은원과 충성 그리고 화합의 정신뿐이다. 


이런 사고 방식은 대단한 실용주의적 처신을 가져온다. 이들이 서양문물을 들여오는데 적극적일수 있었던것도 이때문이다. 일본인 모두가 서양문물을 추종한다고 해도 일본 그자체는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일본을 여행해 본사람, 일본을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일지 알것이다. 일본인은 절에가건 교회에 가건 공산당 당원이건 자민당당원이건 모두 일본인이다. 


반면에 한국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국은 가까이서 보면 자유주의적이지만 사회전체로 보면 일본보다 다양성이 훨씬 떨어진다. 일본인은 작은 구멍을 아주 여러개 만들고 각자의 구멍안에서만 엄격한 평등을 주장하는 식이라면 한국인은 커다란 구멍안에 한국인을 모두 다 집어넣고 모두에게 다 같은 원리와 문화를 적용하는 편이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흡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도덕적 쇼크에도 쉽게 빠져든다. 일본에는 별별 변태산업이 다있는데 일본 사람들의 태도는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있다고 생각할뿐 그것으로 쇼크에 빠져들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는 어떤 괴상한 인간이 나타나면 그 인간 하나가 나라 사람 모두를 물들여 나라망하게 한다면서 대단한 난리법석을 피운다. 이상한 패륜아가 나타나면 바로 요즘엔 이런 풍조가 문제라면서 일반화해버린다. 마치 요즘엔 다들 패륜아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일본보다 자유스럽게 한국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지만 사회가 전체적으로 다양성이 없는데 뭘 보고 창의성을 배울수 있겠는가. 학교 내부에서는 모두가 비슷한게 사실이지만 일본에는 다양한 학교 시스템이 공존한다. 심지어는 6+3+3의 초중고 시스템을 무시하는 학교도 있다. 


물론 일본사회의 다양성은 상당부분 일본사회가 한국 사회보다 훨씬 크고 부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 사회가 창의성있는 학생을 길러내는데 이상적인 환경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건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걸 흡수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은 일본보다도 못하다. 문화적 사상적 금기로 사회를 둘러쳐 놓았다. 아직도 어처구니 없는 금서가 발표되고 공산주의 같은 것에 너무 질겁을 한다. 


일본 사회를 보면 사람들을 아이취급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일일히 이것저것 말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이 훨씬 더 사람들을 아이취급한다. 이런 저런 풍조나 사상에 노출되면 이 사람들은 금방 미쳐서 날뛸꺼야라는 식으로 자신이 모든 걸 다안다는 식이다. 일본은 그런점에서는 훨씬 개방적이다. 


창의력 교육의 첫걸음은 아이를 어른으로, 독립된 인격으로 대접해 주는 것이다.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으면 창의력이 길러지지 않는다. 나무조각 장난감 강사가 저지르는 잘못을 반복할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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