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25
주말에 알고 지내는 일본인 부부와 공원에 놀러갔습니다.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고 어른들은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한자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인 부부는 한국도 전에는 한자를 썼다고 들었는데 왜 한자를 쓰지 않는가라고 묻더군요. 저는 제 아이들의 독서를 예를 들어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본에 와서 책을 읽을 때보면 한자가 장벽이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즉 한국 아이나 미국의 아이의 경우 이해가 안가도 어른들이 읽는 책을 읽을 수는 있는데 일본의 아이들의 경우는 아예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나오는 한자가 아주 많은데 아이들이 그 한자를 읽을 수가 없으니 일본어 책이지만 외국어로 된 책을 읽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발전을 막습니다. 한자는 그다지 좋은 문자가 아닌것 같습니다.
실은 우리나라도 전에는 이런 상황이었으며 어느 정도는 지금도 이런 상황인걸로 압니다. 신문들이 한자를 주로 쓰는 경우 아이들은 신문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한글전용화가 되어 그런 문제가 없지만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학계는 보수적인데 인문계 분야에서는 이전에 씌여진 책들의 경우 교수들이 거의 토씨만 빼고 전부 한자로 범벅을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나는 한번은 한국에서 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한문때문에 교과서를 읽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이런 나의 대답에 대해 일본인 부부는 공감을 하면서 그래서 자신들은 우선 한자교육을 시키는 것에 주력한다고 말합니다. 한자를 모르면 책을 읽을 수 없고 책을 읽을 수 없으면 배우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도 어린이 책에는 한자옆에 히라가나로 읽을수 있도록 발음을 써놓지만 한자를 배우는 것은 일본 아이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한자는 그 나라의 정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한자를 쓰는 환경은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독서하는 습관을 만들 어린 시절에 한자라는 장벽을 만나 만화책 아니면 잘 안보게 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물론 엘리트와 상류층에게는 별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적인 국가에는 민주적인 문자가 필요한데 한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자 환경은 저소득층이나 부모가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은 세상에서 고립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개화기에 중국대륙에서 한자를 없애자고 주장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방에 누워있다가 딸아이를 불러 책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방망이깍는 노인으로 유명한 윤오영의 수필집을 좋아하는데 딸아이의 한국어 공부를 위해 그 수필들을 읽게 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딸아이의 교육을 위해 시작한 일이나 실은 딸이 읽어주는 수필을 듣는 재미가 있어서 나 자신을 위한 서비스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 정. 소. 화. 또박또박 윤오영의 하정소화를 읽어가는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누웠는데 성우처럼 매끄럽게 읽어내리지는 못하는터라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한자말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윤오영은 이미 옛날 사람이라 그 수필에 나오는 말들이 한글로 씌여있다고 해도 한자말이 워낙에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뜻도 모르고 읽어내리고 있어서 매끄럽게 읽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따금씩은 설명도 해주지만 워낙 그런게 많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책을 뒤적이고 보니 한자쓰기가 해롭다고 말했던 스스로의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한자는 중국말이기전에 한국문화의 큰 부분인것이 사실입니다. 중국에서 왔다고 해서 중국도 쓰고 있다고 해서 수백년 수천년 쓴 걸 우리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사실 우리가 가진 것중에 진짜 우리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단순히 중국것이라고 한자를 배척한다면 이것은 미국사람들이 알파벳은 우리가 만든게 아니라고 새로 다른 말을 만들어 쓰자고 하는 주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딸아이는 아직 열살밖에 되지 않아 어려운 책을 권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고전의 글들은 전부 한자와 관련이 있거나 그걸 번역한 것이거나 중국의 고전들을 언급하는데 아이가 한자에 무식해진다면 그건 결국 한국의 전통문화와 단절되게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아이들은 데카르트의 글을 읽으며 자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먼 데카르트지만 프랑스사람에게는 친숙하기 때문일것입니다. 물론 서양것을 배워야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응당 우리 조상의 글을 배우며 커야 합니다. 우리가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판소리를 가르쳐서 음악교육을 한다면 제대로 되겠습니까.
저는 한자를 쓰는 것은 결국 한국에서 그만두게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서양에서 라틴어를 더이상 쓰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전통문화는 소중한 것이고 전통의 연속과 번역의 문제도 무시할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역사연구와 문화보존이 미천한 상황에서 한자를 무자르듯 끊어버리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글자자체가 아니라 우리 문화자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아이들은 한자를 공부해야 합니다. 한자를 몰라도 살 수는 있겠지만 문화적으로 빈약해질 것입니다. 동시에 한자를 한글로 편하게 번역하고 우리 전통문화를 잘 번역하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문을 라틴어처럼 소수만 알아도 큰 문화단절이 일어나지 않게 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뿌리 없는 나라가 될것입니다.
반드시 문자의 문제만은 아닐것이나 일본에서는 일본음식, 일본옷, 일본음악이 한국보다 훨씬 더 대중적 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명절에도 한복을 입는 사람이 귀해졌습니다. 우리는 전통의 정서같은 게 너무 희미해졌습니다. 명절도 의미를 잃어버린 것같습니다. 언젠가 한자의 중요성을 말하는 나이든 세대에게 매우 격렬하게 반대하는 젊은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한자란 멍청이나 쓰는 바보같은 짓이며 사대주의의 잔재쯤으로만 보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살아보니 한자가 가지는 무수한 문제점을 느끼면서도 역사의 연속성이란 차원에서 한국의 오늘날이 걱정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한자를 쓰지말자 그러나 한자를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에게 교육시키자고 해야하는 꼴입니다. 아무쪼록 이런 걱정할 필요없을 만큼 우리 역사와 문화의 번역작업이 잘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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