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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선과 모터사이클관리술

좋은 책의 번역과 출판을 기다리며, ZMM

by 격암(강국진) 2009. 10. 13.

살다보면 이런저런 질문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공부를 하느라 혹은 일을 하느라 혹은 놀기에 바빠서 그런 질문의 답을 구할 시간이 없다. 게다가 질문에 대해 생각을 조금 해보고 아는게 생길수록 질문은 더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질문들에 대한 생각을 마음속에 떨쳐버릴수 없는 것은 그것들 중 많은 것이 피할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러저러한 일들의 의미는 무엇인가. 도대체 내가 살고 있는 이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이럴때 우리는 책으로 간다. 그러나 모처럼 시간을 내서 교양서들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봐도 대부분 문제는 해결된다기 보다는 더 복잡해지거나 매우 독단적인 답을 들을뿐이다. 사는게 힘들다고 생각될때면 우리가 두고온 어떤 질문들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느니 긴 여행이라도 떠나거나 산에라도 올라서 죽던살던 그 문제들에 매달려 답을 구해보고도 싶어진다.

 

이럴때 내가 권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그것이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의 기술 (zen and the art of motorcyle maintenance, ZMM)이다. 이책은 1974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20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철학책으로 선전되며 아직도 팔리고 있다. 나는 이책을 8-9년동안 계속 읽었다. 그만큼 좋은 책이며 한번 읽어도 재미있고 계속 읽으면 새로운 뜻이 계속 느껴지는 책이다. 그런데 이렇게 읽다가 보니 한국에 이 책이 별로 소개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책은 우리나라에서 3번 번역되었다. 마지막 번역은 일심이라는 스님이 고려원미디어에서 선과 늑대라는 제목으로 이뤄졌는데 거의 20년전의 일이다. 어쨋거나 당시 이책은 전혀 파문을 일으키지 못한 것같아 보인다. 그 이유는 뻔하다. 한국 사회는 독재나 독재의 잔재와 싸우고 있었고 이 책의 메세지는 한국사회에는 아직 너무 시대에 앞선것이었다. 그때의 사회에서 악이란 분명한 것이고 그걸 의심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요즘 시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의 목록을 보면 세상에는 두종류의 사람들이 있거나 혹은 사람들이 어디로 갈줄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 책의 저자들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그 책을 소비하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그 책들을 본다면 두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같기 때문이다. 책들중 한가지 종류는 성공에 대한 책들이다. 어떻게 성공할수 있는가. 어떻게 돈을 벌수 있는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할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다. 또다른 한가지 종류는 은둔해서 조용히 사는 것에 대한 책이다. 산에서 조용히 사는게 좋더라.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훌훌 털어버리니 좋더라. 멀리 확 떠나버리니 시원하더라. 이런 식으로 이해되기 쉬운 책들이 많다. 이 두가지 태도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만 이해된다면 이 둘은 함께 가질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거나 한쪽으로 성공해도 다른쪽에서 실패한다. 일에서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허무하게 느껴지거나 은둔하고 문명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았는데 마음의 평화와 행복도 얻지 못한다.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인문사회쪽의 출판물 목록을 봐도 마찬가지다. 물론 좋은 책들이고 내가 안본책들도 좋은 책들일거라 믿는다. 그런데 그 책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것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회적 배경과 토론의 뒷배경, 철학적 사상적 뒷배경에 익숙하지 않을때 좋은 책들이라도 결국은 그 결론을 그저 믿는 수밖에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걸 확인하려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판소리를 배운다고 하자. 그럼 그사람들이 이거는 왜그렇고 저거는 왜그렇고 말이 많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언어학적으로 왜 그런지 뻔히 느끼는 한국 사람들과는 달리 지식이 없는 그들은 많은 면에서 그건 '원래' 그렇다는 식으로 밖에 받아들일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따라하자는 식을 피하기 어렵다.

 

이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ZMM을 권한다. 어쩔수 있다. 복잡하고 추상적이 되어가는 현대철학의 논의를 읽고 있으면 나는 퍼시그가 말한 기계문명속의 인간이 떠오른다. 우리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복잡성속에서 그 시스템에 얽매이는 신세가 되는 것같다. 결국 일종의 사상적 감옥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누가 데리다나 푸코 이야기를 하면서 줄줄이 추상적 단어를 늘어놓을때 다시 추상적 단어로 되받아 칠수 없다면 당신은 철학적으로 자유가 없다. 더 좋은 책들을 퍼붓는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이런것이 아닐까?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의 기술 (zen and the art of the motercycle maintenance, ZMM)은 베스트셀러의 극단을 이루는 양쪽을 조화시키고 결합하는 책이다. 이 책은 질문을 만들어 내기 보다 - 마침내 - 질문을 없애 주는 책이다. 이 책은 현대문명속에서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현대인의 공통된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책이며 한 개인의 지적 투쟁을 담은 자서전이다.

 

이 책은 참선에 대한 소개서나 불교에 대한 종교적인 책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으며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유교, 불교, 도교, 힌두교 어느 동양종교에나 있는 공통적인 면을 잠시 언급할뿐이다. 참선하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지혜를 언급한다고 해도 그것을 굳이 불교에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결코 서양 정신을 부정하고 동양정신을 찬양해서 서양철학을 동양철학이 대신할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서양식 사고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동시에 왜 서양식사고가 그렇게 성공적이었던가를 잘 설명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신비주의를 찬양하고 은둔하는 삶을 제안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기술문명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왜 단순한 도피가 실패를 자초하는 길인가를 설명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물론 모터사이클 관리기술에 대한 정보를 배우기 위한 실용서가 아니다.

 

소개가 너무 거창하다고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이책은 기본적으로 매우 재미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책이다. 곁에 두고 여러번 읽으면 계속 계속 배우는게 있는 책이지만 아무곳이나 펴서 그 부분의 여행하는 모습을 읽어도 재미있고 질리지 않는다.

 

알아보니 이책은 다시 번역되어 출간 예정중이란다. 이번에 나올때는 한국 대중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책이다. 그러나 실은 이책의 저작권은 2000년에 한번 한 출판사가 샀지만 책을 출간하지 않았던 예가 있다. 얼마전에 또다시 저작권 계약이 들어갔으나 실제로 책이 내년에 나올지 알수가 없다. 내가 번역한 것을 웹에 올리는 것은 저작권 문제에 걸리니까 그것도 안된다. 나는 실은 1인출판으로 책을 출판해서라도 책을 보급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저작권을 가진 다른 출판사가 준비중이므로 지금은 그저 기다릴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들이 출간하지 않으면 그냥 몇년이나 기다려야 할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책이 나온 것은 벌써 20년가까이 된 일이다. 이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아무쪼록 좋은 책이 잘 번역되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게 될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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