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4
주변을 둘러보면 오늘날 논리와 기계적인 구조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모든 것은 더 세부적인 구조로 분리되어지고 다시 재조립되어진다. 이데올로기는 여러가지 관념을 조합하여 만드는 것이고 각각의 가정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로 조립되며 하나의 국가도 더 세부적인 것들로 궁극적인 것으로는 개인의 합으로 조립되어 진다.
기계적 구조, 논리적 구조란 항상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편리한 도구다. 사물을 보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은 다른 방식보다 훨씬 뛰어나며 편리하지만 모든 구조가 모든 논리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창조물이기에 뭔가를 어떤 하부적 부속품의 합으로 생각할 때 거기에는 뭔가가 빠지는 것이 있고 뭔가가 생겨나는 것이 있다. 빠지는 것은 각 부속품들이 실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그 사이의 밀접한 관계로 연결되어져있다는 사실이다. 두 친구는 두 개인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분리시키는 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각각의 부속품을 변하지 않는 존재로 생각케 한다. 각각의 부속품을 정의할 수 없다면 분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개인의 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가 없어도 우리가 아는 개인이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나누는 행위는 경계선을 만들어 낸다. 우리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유태인과 팔레스타인이라는 구분을 만들어 내는 순간 경계선이 만들어지고 그것은 더욱 강화되어 심지어는 팔레스타인과 유태인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있었던 수천년전이래 계속되어온 것으로 말해지고 보여진다.
하나의 가정을 볼 때도 서구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는 그 가정을 그것을 구성하는 부속품들의 합으로 보는데 익숙하다. 가정을 남편과 아내 아이들로 조립된 존재로 보는 순간 우리는 남편이란 무엇이고 아내란 무엇인가를 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부속품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의무와 권리를 말한다. 아이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여러가지 규칙이 가해지고 그것들이 정교하게 돌아가는 가정을 상상해 낸다.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을 정돈시킨 순간, 그렇게 우리가 기계적 관점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제약과 무의미함이다. 남편은 아이들과 아내가 자신을 돈벌어오는 기계로 본다고 불평한다. 아내는 자신은 집안 일하고 애낳는 기계가 아니라고 말하고 아이들은 우리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서로 서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들은 서로 서로에게 그렇게 들리는 말과 행동을 한다. 그리해서 결국 가족들은 되도록 서로를 만나지 않는 냉정한 관계가 되고 만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밖에서 놀고 남편은 골프며 술자리로 밖에서 놀며 아내도 드라마며 모임으로 밖으로 나간다.
이제 가정이라는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그 작용이 활발했을 때 생기는 물질적 이득이라는 목적을 위한 것뿐이다. 빵만드는 기계가 빵을 만들어 내듯 가정은 더 많은 돈을 만들어 내고 더 많은 권력과 인맥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계가 된다. 이런 가정에서 투기꾼들이 만들어지고 집안 재산문제로 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만들어 지며 심지어는 유산상속을 위해서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가 만들어지는 것은 완전히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가정만 이렇게 기계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부속품의 합으로 파악되는 것은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같은 논리로 국가는 소비하고 정복하는 기계가 된다. 세계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미국은 그 근본적 구성원리를 국가를 각 개인의 합으로 생각하는 원자론적 배경에서 따온 것이다. 유럽보다 강력한 기계였던 미국은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더 강력한 권력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미래는 기계적 논리를 알면서도 기계가 아닐 수 있는 인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미국 패권의 약화는 기계의 성장이 지구를 넘어설 수 없다는 문제, 기계가 그 구성원이 되는 사람들을 황폐화 시키는 문제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게 되는 문제들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한국인들은 기계를 아는 것도 그 기계를 잊어버리는 것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 못한것 같다. 주변사람들을 이러니 저리니 단정지어서 사람들을 부속품대하듯이 하면서 또 충분히 정교한 기계로서 작동하는데도 실패한다. 그런가 하면 세상을 기계로 보는 시각이 만들어내는 소유욕만 잔뜩 커져서 목적을 잃은 부, 목적이 없는 권력을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다. 가정은 망가지고 나라도 망가진다. 서구에서 이런 점들을 지적하는 서적을 수입하되 그것을 기계적 시각으로 소화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네트워크형사회니 생태적 공동체니를 이야기하지만 사람이 바뀌면 그런 것은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며 사람이 그대로라면 그것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걸 바꿔서 계급투쟁의 도구나 돈을 더 많이 벌기위한 기계적 구조에 대한 설로 바꿔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같다.
남편과 아내가 손을 잡고 눈을 감고서 생각을 해보자. 지금 내 앞에 있는 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이러저러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대했던 것이 전부인가. 이런 저런 관습과 습관이 쌓여 이제는 기계처럼 습관대로 움직여온 것들이 전부인가. 서로를 느낄 수 있는가. 정의되지 않고 정의할 수도 없는, 제자리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해오고 변화해갈 어떤 존재가 앞에 있는 것이 느껴지는가. 평정심을 가지고 보자. 거기에 그런 존재가 있는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주제별 글모음 > 국가란 무엇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세기 진보 X (0) | 2009.12.09 |
---|---|
진보의 윤리적 무능 (0) | 2009.11.02 |
진보적 시민주권론을 비판하며 (0) | 2009.10.08 |
사회적 분열과 이름붙이기 (0) | 2009.10.06 |
왜 한국에는 새로운 진보적 문학이 없는가. (0) | 2009.09.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