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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사라지는 한국 - 노령화와 인구감소의 재앙

by 격암(강국진) 2009. 11. 9.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시대가 끝이 났다고 말을 한다. 그 이유는 한국의 인구가 노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건설회사가 있는 한 집은 계속 짓게 되어 있다. 그런데 새로운 젊은 인구는 급속히 줄어든다. 그러니 부동산시장이 유지될 방법이 없다.

 

저출산과 사회 노령화의 재앙

 

2008년 세계 보건기구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출산율은 2006년 기준으로 벨로루시, 체코, 폴란드등과 함께 세계 최하위이다. 보통 2.1 정도가 되어야 인구가 유지되는 수준이라고 할 때 1.2의 출산율은 그야말로 재앙수준이라고 말해야 할듯하다. 게다가 이 출산율은 1990년 1.6. 2000년 1.4라는 수치 다음의 결과다. 2005년에는 1.08명으로 역대 최저를 보이기도 했다. 경향으로만 보면 더 내려갈 기세다.  이렇게 젊은 세대가 없으니 올해나 내년에 부동산이 폭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10년 20년 단위로 보았을 때 한국에 특이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부동산의 장래가 밝을 리가 없다. 아니 부동산이 문제가 아니다. 이 모양이면 한국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스퍼드 인구문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만 교수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코리아 신드롬이라 이름 짓고 한국이 지구촌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위클리조선 2009. 3.. 23)

 

이런 수치도 나와 있다. 2007년에는 노년인구가 481만에 유소년인구가 873만이다. 그런데 2018년에는 노년인구가 707만에 유소년인구가 629만이다. 어느 건물에 아이들보다 노인이 더 많다면 그런 건물을 뭐라고 부를까. 노인정이다. 불과 10년도 안남은 기간 안에 한국은 노인정이 되는 것이다. 2030년에는 노인이 아이들보다 2배 이상 많아진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이유


그럼 왜 이렇게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까.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키우는 비용과 노력이 적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나중에 부모에게 가져다줄 이득이 크다면 아이는 제발 좀 그만 낳으라고 해도 마구 태어날 것이다. 그 역도 사실이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나 힘든데 그로인해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이득은 너무 작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말하고 있다. 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또 하나를 더 낳을 생각을 하면 비용걱정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개인주의적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한국에 퍼지는 것에도 큰 이유가 있다.  즉 전통적 효의 정신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퍼지면서 이제 우리는 각자의 존재에 대한 의식은 강화되고 가족관계에 대한 의식은 비판되거나 약화되었다. 이럴때 아이는 경제적으로 말해서 나를 부양해 주고 지지가 되어줄 미래의 기둥에서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소비하는 사치품으로 변했다. 즉 극단적으로 말해 아이는 미래의 가족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키우는 즐거움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잔인하고 극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거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단어가 가지는 잔인함에 분노하기 전에 그런 표현의 뒤에 있는 진실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한때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의무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는 아이에게 미래를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에는 그것 나름대로 비판할 점이 많다. 자기 인생은 없이 아이에게 인생을 건다는 것의 모순, 가족에 매몰되어 사회 속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인생을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우린 아주 익숙하다. 그래서 우린 해방되었다. 그리고 해방된 결과가 지금이다. 우린 아이를 해방시켰다. 그러고 나니 현재를 맞이하였다. 논리적으로나 명분적으로 옳은 일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니 남는 것이 사라지는 나라가 되어 버린 꼴이다.

 

노령화된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


늙어가는 나라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라 안에는 자본을 가진 늙은 세대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학의 발달이 눈부셔서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100살을 맞이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인간이 영원히 산다는 주장을 하는 책도 나와 있다. 공상과학이 아니라 의학의 발전 속력을 볼 때 앞으로 몇 십 년만 살아남는다면 수명연장을 위한 기술발전의 속력이 실시간을 넘는다는 주장을 하는 진지한 과학자의 주장이다.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100살까지만 산다고 해도 미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60이나 그전에 은퇴하고 100살까지 가진 재산을 굴리거나 까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넘쳐나는 것이 한국의 미래다.

 

만약 한국이 충분한 돈을 가지고 충분한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늙은 세대는 전 세계를 상대로 돈놀이, 지적재산권수익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즉 돈을 굴리면 세계 어딘가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 돈을 빌리고 사업하고 돈을 만들어서 수익을 돌려주는 것이다. 재산권도 마찬가지고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이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노년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10%, 5%도 안 될 것이며 늘어나는 수명을 생각하면 1%정도도 많을지 모른다. 

 

2005년 조사된 한국의 주요사망원인을 보면 암, 뇌혈관, 심장질환 다음으로 자살이 한국에서 4번째 중요한 사망원인이다. 한국의 자살율은 전 세계 최고수준이며 그 이유는 특히 노인이 자살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들이 왜 자살을 하는가. 생계곤란 때문이다. 늙은 부부가 먹고살 돈도 없는데 자식도 없거나 있어도 자식들이 부양해주지 못하자 농약 먹고 죽어버리는 것이다. 


패륜범죄 소식도 우리는 이제 익숙하다. 필리핀 같은 외국에다가 부모를 버리고 오는 자식에 유산 상속을 목적으로 부모를 죽이는 자식의 이야기, 부모 재산 모두 미리 상속받고 부양은 안 해주는 사람들 이야기가 신문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과연 사라지는 한국, 노인들만 남은 한국이 미래의 이야기일까?


능력 있는 부모들이 세계를 상대로 자산을 굴려 먹고 살지 못하면 도대체 누구에게 자신을 부양하라고 할 것인가. 그들이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 밖에 더 있겠는가. 더 적은 젊은 사람들로 부터 더 많이 일을 시키고 착취하여 자신들이 살아갈 돈을 벌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자기 자식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의 자식들에게는 관대하지 못하다면 이런 미래밖에는 없다.


어른 세대는 어떻게 젊은 세대의 돈을 빼앗는가. 하나는 정부를 통해서다. 국민연금의 고갈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흔하다. 세금은 지금받아서 그걸 다 쓰면 빚은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한다. 국민연금만 그런것이 아니다. 정부의 빚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그것은 항상 미래세대가 갚을 몫으로 남는다. 


젊은 세대가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교육과 집이다. 그들도 교육받아야 하고 집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이 두가지가 아주 비싸지면 젊은 세대는 사회로 나오는 출발점에서 이미 평생을 갚아야 할 빚으로 허덕이게 된다. 


한국은 지적재산권의 개념이 아주 약하다. 다시말해서 돈과 지적 노동중에 돈의 힘이 훨씬 크다는 이야기다. 돈은 누가 가지고 있으며 지적노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런 사회구조가 누구에게서 누구이 돈을 빼앗는 결과가 될까. 

 

이런 미래는 젊은 세대에게는 또하나의 방향에서 다시 재앙이 된다. 나이든 세대는 은퇴를 최대한 미룰 것이며 자신이 가진 재산을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기기 보다는 모두 소모할 것이다. 설사 재산이 이건희같은 재벌처럼 많다고 해도 부모가 백살이상 산다면 유산의 의미가 거의 없다. 자식은 이미 70대의 노인이 되어야 그 재산을 받게 된다. 결국 젊은 세대의 수난은 끊기질 않는다. 

 

한국, 한국인 그리고 한국 사회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한국의 기성세대가 택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오는 것이다. 젊은 피를 외국에서 수용하는 것이며 외국의 선진국에서도 써온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욱 확실하게 붕괴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일단 이민도 국제적 경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이 문만 열면 세계 최고의 인력들이 한국으로 와서 한국인으로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훌륭한 시민으로 정착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도 보다 국제화된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 등으로 가고 싶어 한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갈수만 있다면 미국의 대학에 가고 싶지 그들이라고 한국의 대학에 유학 오고 싶겠는가? 오히려 다른 곳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골치 아픈 범죄자형 외국인도 같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다. 

 

한국의 아이들은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객관적 상황이 좀 더 열악해도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더욱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들은 거꾸로다. 그들은 한국적 문화를 자신의 문화로 대체할 때  좀 더 살만하다. 그들도 정치적 힘을 키워 그들의 불편에 항의하고 싶다.

 

젊은 세대가 없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들여온 유럽의 오늘은 어떤가. 프랑스에서 자동차가 불타는 사진을 보고도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 다면 그것은 바보다. 외국인노동자는 착취할 수 있는 봉이 아니다. 외국인을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의 주인은 한국인이다. 주인이 허약하다고 손님으로 집을 채우면 그 집이 부강해지지 않는다. 주인의 역량이상으로 손님을 받아들이면 그 집은 망한다. 더구나 유럽은 말하자면 엄청난 부자들의 후손이다. 그들이 가진 문화적, 금전적 재산을 통해 그들은 고령화 사회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의 관광산업을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가 그렇게 사는 게 가능할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외국인 노동자가 달콤한 것은 그 사회가 빨리 발전하고 그 외국인노동자를 포용할수 있는 폭을 가진 경우 뿐이며 그 경우에도 카드대금이 나중에 나오듯 결국 외국인 노동자의 달콤함은 반드시 고지서로 날아온다. 그들은 공짜가 아니다. 


단순히 말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으로 와서 저층의 싼 노동력으로 일해주는 것을 즐길수 있는 것은 그 노동자들이 나름의 문화로 뭉치고 실력으로 한국인들과 경쟁력을 갖출수 있을 때까지 뿐이다. 미국으로 말하면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아이들이 전부 대학에 가서 좋은 학위따고 박사학위를 받고 하는 그때까지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 외국인노동자들은 당연하게도 그리고 정당하게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은 지적으로 세계의 첨단을 달리는 나라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주류층과 실력으로 경쟁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상당히 걸릴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쉽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노동력을 싸게 사용했을때 한국의 미래는 민족분쟁으로 얼룩진 이스라엘같은 곳이 될것이다. 누구도 해결할수 없는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전세계를 서구화한 서구사회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구 사회에서 문화적 주도권을 지키는 힘과 우리가 한반도에서 문화적 주체성을 지키는 힘의 강도는 크게 다르다. 우리의 것은 손쉽게 사라지고 결국 한반도라는 땅의 주인은 누구인지 아주 빠르게 알수 없게 될수 있다. 


우리가 사회적 정체성과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합당하게 세우지 않을때 한국은 그냥 세계 속에 통합되어 사라질 것이다. 능력되는 사람은 이민가고 안 되는 사람은 남아있으면 힘센 사람이 점유하는 유원지 같이 변할 것이다. 한국의 터는 좋다. 그러니 중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에서 땅을 써주고 싶을 것이다. 항구로 활용하고 통로로 활용하고 싶을 테니까. 한국이라는 지역은 발전할지 모른다. 


문제는 한국인 살기 좋은 시대가 오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의 입지는 목좋은 곳을 차지한 재개발 아파트의 가난한 주민과 비슷해져가고 있다. 재개발을 좋아하지만 그과정에서 모두 몰려나고 결국은 삶의 터전을 빼앗겨서 갈곳이 없어지는 상황이다. 한반도를 채워줄 인구는 세계에 넘친다. 한반도는 번영할지 모른다. 문제는 한반도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삶의 방식을 재검토하고 윤리적 개혁이 필요

 

한국사람들이 살아남자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것은 세계화인 동시에 자기 주체성을 세우는 일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고 시급하게 해야할 조치는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없애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이를 지워버려야 한다. 권위의 피라미드를 전부 없애야 한다. 그런 개혁의 완성은 한국어를 개조하다시피 해야 일어날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것 다음에는 한국 사회의 윤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재검토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윤리라하면 옳고 그른 것은 이미 다 정해져 있고 윤리적인 것을 어기지 않는 마음자세를 가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윤리, 철학, 종교는 모두 가치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가치판단이 없이 한국은 자기를 지켜낼수가 없다. 통일의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생명의 가치는 무엇이고 환경문제의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있어서 가치의 문제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문제가 완전히 망각되어 배금주의가 만연하거나 스스로 가치문제에 대한 판단을 할 능력이 없으므로 무조건 선진국의 가치판단을 복제하자는 주장이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즉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지킬 힘의 매우 미약하다는 증거다. 따라서 수많은 정책과 정치문제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으며 사회안에서 상식이 소용없다는 느낌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가치의 문제는 단순히 기계주의적 발상, 과학적 사실 검토만 으로는 재발견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서구에서는 최근 백년이상동안 심각하게 연구해 왔으나 정작 그방면으로 서구보다 앞선면이 있는 우리들의 전통문화는 발전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과학의 이름아래 모두 폐기 무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전통에 있는 효의 윤리는 서구에서 매우 부러워 할만한 것이며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을 생각해도 합당한 것이다. 불교를 옹호하거나 선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윤회사상이 어떤 가치적 윤리적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해보라. 윤회사상아래서는 우리들은 본질적으로 다 동일하다. 긴 역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이름아래 그 윤회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옳으나 그결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할때 뭐가 더 문명화된 사고방식인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놓고 있다고 하면 불행한 미래는 얼마나 멀리있을 것인가. 고작해야 10년이나 20년이다. 미래성장산업을 개발하는 것이상으로 한국에는 심각하고 시급한 당면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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