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2
우리 아이들이 가볍게 싸웠다. 막내가 큰 딸아이를 놀렸다는 것이다. 나에게 딸아이가 그런 말하면 안되지 않냐고 묻는다. 물론 놀리는 말은 하면 안된다. 하지만 그 날은 다른 일로 생각하던 것이 있어서 내가 말했다.
"너는 막내가 0에서 100까지 점수를 매겼을 때 얼마나 잘못했다고 생각하니?"
0은 잘한것이고 100은 너무 잘못한 것이다. 답은 60이었다. 즉 그 아이도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게 그리 엄청난 잘못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싸움이 나는 이유는 아이들이 흑백논리로 싸우기 때문이다. 잘못이냐 아니냐로 싸운다. 0이냐 100이냐로 싸우는 것이다. 막내는 그런 정도의 말을 굳이 아빠한테까지 가서 이르는 누나가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싸움은 이유없이 커진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른들의 싸움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뭐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것이다. 한번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내가 고의로 수정할 기회가 있기 전에는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뚱뚱한 사람이라고 불렀다면 그 사람에게 그는 자신을 뚱뚱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나는 그걸 잊어버렸거나 시간이 상당히 흘렀지만 그렇게 불린 사람에게 그것은 그대로 남는다. 더구나 뚱뚱한 정도를 100으로 나눠서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뚱뚱한 사람과 뚱뚱하지 않은 사람 둘로 세상을 쪼개서 그 사람은 그리로 던져넣어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따지는 것은 쩨쩨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남의 상황을 들을 때나 자기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만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다. 자기가 그런 말들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느낌이 다르다. 살다보면 그것은 나를 잘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이며, 그저 여러개의 의견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데도 오래 오래 상처가되는 말을 듣게 되는 일이 있다. 세상을 0에서 100쯤으로 보는게 아니라 두조각 양분법으로 나눠 나를 어딘가로 던져 넣어버리는 사람을 만나고 기분상하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오래전의 일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동네사람을 나와 같이 만나면 우리 아들은 여자만 만나면 쑥맥이라는 이야기를 습관처럼 하신 적이 있었다. 대단한 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왜 끝없이 반복하는지, 나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동네사람들에게 심고 싶은 것인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구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뭐가 정상이라는 것인지도 애매하지만 말이다. 정치나 종교나 지역이야기하다보면 싸움이 쉽게 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사람들은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존재하는데도 그걸 단순하게 무자르듯 말한다. 충청도 사람은 멍청해, 한국남자는 폭력적이야 이런 말 같은 거 말이다. 그러니 싸움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노무현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역대 정권은 모두 부패 비리가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혈압이 끓어오른다. 그들은 즉각 소매치기가 살인범하고 같냐고 정도를 비교하지 않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세상의 평가는 종종 그렇지가 않다. 어찌나 세상 평가가 흑백논리인가를 생각하니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대선당시 불법선거자금 이야기가지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 전여옥이었던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불법자금 규모가 열배가 되니 안되니가지고 공중파방송에서 따지던 것이 기억나지 않는가? 그러니까 똑같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하게 아 정치가들은 전부 권력욕에 차서 비리를 저질러라고 정리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은 이러저러한 것은 그래도 화끈했지 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포크레인으로 젓가락 놀려서 라면먹기같은 묘기가 필요하다. 즉 상황인식의 틀은 엄청나게 흑백논리고 거대한데 다뤄야 하는 사안은 그보다 훨씬 미묘하다.
흑백논리는 자주 자주 비판받는다. 그러나 자신이 흑백논리에 빠져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다. 사실상 세상은 어떤 경우에도 두조각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모든 범죄자는 다 자신의 사연이 있다. 아니 모든 인간이 다 사연이 있어서 범죄자와 비범죄자로 세상을 나누는 것도 공평치 않다.
이런 단순논리로 세상을 보니까 형평성이 크게 어긋나는 일이 마구 벌어진다.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려면 먼저 온국민이 세상을 백분율 논리로 보는 버릇을 들여야 하는거 아닐까? 좋다 나쁘다로 말하지 말고 점수를 매겨라. 나쁜 놈, 좋은 사람 말하지 말고 점수를 매겨라. 숫자를 보고 정도에 신경을 쓰자. 매번 그렇게 말하는게 버겁다면 스스로 마음속으로 물어보자. 우리 큰 딸에게 내가 물었듯이 말이다. 남이 한짓은 몇점짜리 짓일까. 내가 한짓은 몇점짜리 짓일까. 별거 아닌것 같지만 이 점을 제외하면 대화는 겉돌고 결론은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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