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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학자들과 오타쿠

by 격암(강국진) 2009. 11. 10.

2009.11.10

 

방명록을 보니 눈내리는 마을이라는 분이 한국의 이공계현실에 대해 생각을 촉구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저 역시 이공계에 속한 사람이라 이런 방면에 대해 이따금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학문발전이라는 주제에 대해 일반적인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사회에는 한가지 신화가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태능선수촌 신화라고 말합니다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선발해서 모처에서 전력을 다해 훈련시키고 정신교육을 시키고 서포트를 해주면 그들이 전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을 보여준다는 것이며 그것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좋은 것이라는 신화입니다. 

 

이 신화는 운동선수를 키우는데만 그런것이 아니고 학문육성에도 적용되어 해방이후 이날 이때까지 한국 학문의 발전을 논할때면 정부에서 제일 먼저 제일 자주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더 잘 선발해서 더 확실하게 교육시키고 더 확실하게 밀어주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기업을 육성해서 한국을 키우자는 구호에도 익숙합니다. 

 

얼핏보면 틀린 것이 없어보이는 이 태능선수촌 신화는 몇가지 커다란 가정에 기초합니다. 

 

첫째로 선발하는 사람, 교육하는 사람이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고 있다는 가정입니다. 뭘 어떻게 교육시키면 되는지 알고 있다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육한다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정부가 간섭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한류가 불자 정부가 지원해 주겠다고 나서면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한류가 끝장나는데 도움이 되는 것같습니다. 

 

둘째로 소수의 사람들이 성공하면 그것이 국가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입니다. 

 

이 소수가 전체를 이끌수 있다는 가정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본을 집중시키거나 노벨상 수상자급의 사람들을 불러들이는데 아낌없이 돈을 쓰고는 합니다. 

 

세째로 학문발전의 본래적 동기가 국가발전 특히 경제적 국가발전이라는 가정입니다.

 

이건 이상할것이 없어보이지만 실은 나쁜 것입니다. 국가발전은 학문발전의 자연스런 결과가 되어야지 그 동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가정들은 경우에 따라 맞을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데 그게 합리화되는 때는 해방이후의 극빈자 국가 시절이며 나라의 수준이 세계최첨단으로 가면 갈수록 맞아떨어지질 않게 됩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마음자세를 바꿔야 합니다. 이제 정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가발전이라는게 뭔지, 뭐가 좋은 이공계 교육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나라의 수준이 지극히 떨어질 때는 아주 기초적인 것을 구축하는 단계기 때문에 그런 것이 명백하지만 세계 첨단을 목표로하기 시작하면 정답은 이제 없습니다. 정답은 없는데 위에서 계획을 세워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그런 도움은 없는 것만도 못해집니다. 사회를 자꾸 왜곡시켜서 성공하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을 자꾸 바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한가지를 모르고 있거나 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평가 때문에 혼동을 하지만 사실 학자들이란 매니아고 오타쿠입니다. 왜 이상한 인형모으기에 광분하거나 심지어 여자속옷 모으는 변태, 조각그림 맞추기에 광분해서 엄청난 크기의 조각그림을 만들고 장난감총수집에 광분하는 사람들, 일본영화를 죽자고 보고 또보는 사람들, 일본 라면 먹으러 다니는 매니아. 이런 사람들과 근엄한 교수들은 같은 종자라는 것입니다. 아니 같은 종자여야 합니다. 아인쉬타인은 오타쿠입니다. 차이는 아인쉬타인이 좋아하는 것은 사회적 중요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는 정도입니다. 

 

가끔 보면 괴상한 주제 예를 들어 일본 만화영화에 대해 매니아적인 오타쿠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정보를 모으는데 보통 사람들이 한번 들어보면 기가질릴정도입니다. 영화의 장면장면을 모두 이야기하고 감독과 성우등 여러가지에 대해 그야말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누군가가 끼어들어 니가 오타쿠의 세계를 하느냐며 최고 오타쿠를 자기 맘대로 뽑고 감투도 씌워주고 계급도 만들고 그럽니다. 이럼 다 망하는 겁니다. 오타쿠 본래의 관심사는 사라지고 이젠 자기들을 선발해줄 선발기준이나 감투나 먹고 사는 문제가 주문제가 됩니다. 

 

제일 나쁜 것은 오타쿠도 아닌 사람들이 그거 하면 돈 잘번다면서 끼어드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사실 그 오타쿠의 세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사회적 존경과 직업안정성과 봉급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성실하고 머리도 좋고 인간관계의 달인입니다. 그래서 보통의 오타쿠들보다 성공경쟁에서 우위에 섭니다. 오타쿠들은 사실 대개 무모합니다. 인간관계도 개판입니다. 가치판단도 이상합니다. 그래서 오타쿠입니다. 

 

위에서 말한 태능선수촌 신화와 학자의 본질에 대한 오해가 결합하면 그 결과는 엉망이 됩니다. 한국에서 연구자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교수가 되질 않으면 인간적인 모멸감을 견디기 힘들다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의 비민주적 권위주의적 풍토를 생각하면 이것을 근거없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일본만화 매니아가 누가 신간이 나왔다고 말하는데 너는 나와는 급이 안되니 그 신간에 대해서 말할 이유가 없다고 할까요? 만화를 좋아하는데 위 아래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한국 학계에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을 층층히 나누는 계급의식이 오타쿠들을 분열시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오타쿠도 아니면서 이 세계로 끼어든 사람들이 또 그 자리들을 차지합니다. 그 결과는? 쉬는 시간에 과학이나 공학가지고 잡담하지 않는 학자란 자기 모순적인것입니다. 그건 일본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일본만화 오타쿠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혼자만의 세계에서 혼자만의 연구를 재미없게 합니다.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만나면 많은 사람들은 연구비가 어떻게 분배된다더라 권력 구도가 바뀐다더라 누가 누구 빽이라더라 하는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결국 한국에는 과학이나 공학을 하면서 과학이나 공학을 좋아하는 사람을 왕따시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진정한 오타쿠들은 분위기 못맞추는 사람으로 구석에서 조용히 입다물고 있어야 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학문연구의 기본은 연구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냥 연구하고 싶은 사람은 연구할수 있고 서로 즐겁게 소통할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겁니다. 괜히 방송국이 가서 그 사람들을 천하의 천재요 한국을 구해줄 영웅이라고 선전할 이유도 없습니다. 괜히 연구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 단순히 성실하고 학력고사 성적 잘나온다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사실 첨단연구란 어떤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그걸로 유명해지고 부자되고 상받고 할생각으로 하면 하기 힘듭니다. 복권뽑기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인력으로 무조건 결과를 뽑으려면 천문학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결과는 그래서 오타쿠들이 이런거 저런거하다가 보니까 우연히 나오는 겁니다. 정부에서 교수들에게 요구하듯이 올해는 이걸하고 내년에는 저걸하면 내후년까지는 이런저런 연구결과가 나온다는 식의 연구는 불가능하거나 시시한 연구입니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시시한 연구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정도 하면 한국의 이공계가 어떤 현실에 있는지 분명해 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풍토에서 한국 과학발전을 토론한다는 것은 기본을 망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태능선수촌 신화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만 한국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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