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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과학과 기술은 다른 것이다.

by 격암(강국진) 2010.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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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2

세상에 과학기술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은 흔히 과학과 기술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 경상도가 있고 전라도가 있듯이 선이 딱 그어져서 그 둘을 이건 과학, 이건 기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다른 것이다. 

 

뭐가 다른가를 말하기전에 골치아프게 비슷비슷한것을 왜 다른 것으로 구분해야 하는가부터 이야기해보자. 그것은 각각의 목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 이다. 주전자는 물을 담기 위한 것인데 그걸 망치로 알면 망치치고는 참 쓰기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주전자는 엉터리 망치라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값어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도 기술도 그게 뭔가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면 마찬가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기술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먼저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기술은 반드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유용성에 있다. 이해를 하건 하지 못하건 씨뿌리기를 하는데 소금물에 담가서 뜨는 놈은 버리고 하면 수확이 좋아지더라고 하면 왜 그러는지 몰라도 훌룡한 영농기술이 된다. 

 

정확히 퍼센테지를 논하는 것은 어려우며 무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기술은 상당부분 시행착오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지 계산과 이해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과학적 사고와 연구의 역할을 매우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는데 물론 그런 것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연구소에서 수많은 연구원들이 연구하는 일을 단순한 시행착오로만 말해야 할것이다. 시행착오도 과학적 사고와 이해가 기반이 될때 엄청나게 효율성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핵심은 그 실질생활에 있어서의 유용성이지 이해에 있지 않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과학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실질생활에 있어서의 유용성을 추구하는것이 첫번째 사명이 아니다.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우리자신에 대한 더 간단하고 더 총체적인 설명과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과학은 철학에서 갈라져 나온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아직도 철학이다. 과학의 진정한 목적은 외적인 편리함의 추구라기 보다는 내적인 만족감의 추구다. 하늘의 별을 보면서 저게 뭘까를 생각하고 우리는 어떻게 이땅에 나타나게 되었나를 생각하고 날씨는 왜 변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는 것이며 이런 것들은 우리가 이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를 질문하는 행위에서 바로 옆에 있는 것이다. 

 

자 과학과 기술에 대한 설명을 이쯤하고 왜 이것이 구분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과학과 기술을 혼동하면서 살아가면 우리는 과학을 하면 돈을 번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학이 발전되면 돈을 벌게될 가능성이 큰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돈을 벌고 싶으면 기술을 추구해야지 과학을 하면 안된다. 돈을 버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한것처럼 주전자에는 주전자의 용도가 있고 망치에는 망치의 용도가 있다. 주전자를 망치라고 생각하면 못도 제대로 박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과학을 재미있고 신기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노력을 칭송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가득차 있다. 난 이것이 당연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생각밖에 없을때 과학발전은 그런 생각들때문에 뒤떨어지고 과학은 질식사하고 만다. 

 

과학은 놀이기구가 아니다. 과학은 물론 매우 즐겁고 신비할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단순히 장난감같은 것에 불과하다면 과학을 배우는데 필요한 노력과 에너지는 지나치게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은 산업발전도 가져오잖아라고 말한다면 이순간 그사람은 과학을 기술과 혼동시키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과학을 위한다고 하는 지원은 당연히 전부 기술지원으로 가고 만다. 돈이 되지 않는 과학은 별로 의미가 없는 과학이 되고 만다. 마치 못을 박지 못하는 주전자는 필요없는 주전자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 우리 사회는 배부르게 과학이니 철학은 관두고 기술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서양은 원래부터 그렇게 배가 불러서 과학을 연구해 왔을까? 과학이란 신학과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이 세상에 대한 절대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은 결국 사회속에서 합리주의로 나타난다.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우리는 사회적으로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 사회발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하는 질문이 과학적 연구와 아이디어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는 것이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을 자주 안아주면 애들이 성격이 유순해 지더라라고 하는데서 멈추면 그건 기술의 세계가 된다. 그런 사실들이 얼마나 일반적인 것인가에 대한 추구를 계속하고 그를 설명하는 개념과 언어를 만들어 내면 그래서 그것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논하는 수준에 까지 다다르면 그것은 과학이 된다. 

 

진화가 단순한 생명을 인간처럼 복잡한 생명체로 만들었다는 과학적 탐구는 사회적 자유가 사회적 발전을 만들어 낸다는 신념을 낳게 된다. 

 

요즘도 아이들에게 사탕을 줘서 유혹을 하듯 신기하고 재미있는 과학적 기술적 사실들로 아이들을 과학자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과학자는 사탕발림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는 자신이 연구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외경과 사랑을 느껴야 한다. 지렁이의 내장을 연구하면서 평생을 보내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외경과 사랑이 없다면 지렁이의 내장같은 사소하고 작은 세계에 평생을 써버리게 되는 것은 큰 실수다. 과학은 큰 댓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오락하듯 할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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