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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과학자의 시선

어른들도 수학공부가 필요하다.

by 격암(강국진) 2010. 3. 19.

2010.3.19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기는 하지만 초중고교 과정에서 각 과목의 교육목표라는 것이 있다. 거기서 수학교육의 목표 부분을 보면 보통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 방식의 증진을 위해서라고 나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있다. 그럼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방식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일까. 학교에서 다 배웠으니까 평생 배운 건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그건 마치 20년전에 내가 아령 좀 들었으니까 아직도 근육이 있을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당장 초등학교나 중학교 아이들의 수학공부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막혀서 문제가 풀리지 않았던 경험이 없는지 생각해 보자. 아이들 공부를 도와준 적이 없다면 한번 내가 그런 문제들을 풀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책을 읽으라고 할 때는 고금의 좋은 지혜가 담긴 책이나 여러가지 지식이 담긴 책을 말한다. 물론 그런 책도 좋지만 나는 무인도로 떠나면서 책을 꼭 가져가야 하는데 몇권밖에 가져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다시는 그 무인도에서 돌아올 수 없다면 일반물리학책과 대학 수학책들을 가져가는 사람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꼭 실용적인 용도가 아니라 정신의 단련을 위해서 말이다. 

 

플라톤이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학교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그뿐이 아니라 서양철학에 있어서 유명한 철학자들은 과학자이고 수학자인 경우가 많다. 데카르트가 그랬고 칸트가 그랬다. 화이트헤드는 저명한 수학자였다. 

 

수학은 분석적 사고를 훈련하는 좋은 방식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령을 들어올리거나 달리기를 하는 것과 꼭같이 사물을 분석적으로 치밀하게 생각하는 훈련을 시켜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학과는 멀어진다. 심지어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해도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는 수학과 멀어질 수 있는데 쓰던 수학만 써서 그렇다.  

 

인문학적인 지식과 훈련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그 중요성이 잊혀지고 있다는 점에서 수학적 훈련은 심지어 인문학적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인문학적 지식이란 막연하고 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누가 뭐랬다는데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거론하고 다시 그걸 알자면 역사를 알고 사회적 배경을 알아야하고 하는 식으로 끝없이 번진다. 공자나 노자가 하신 말 한 줄의 의미를 논하는데 수십년을 떠들어도 끝났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인문학이다. 수학이란 그와 다르다. 수학은 언제나 테두리가 있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왔는지가 분명하다. 공부하면 공부한 만큼 피가 되고 살이된다. 반면에 혼돈된 인문학적 지식은 오히려 사는데 해가 될 수도 있다. 

 

서투르게 인문학을 공부하고 수학적 공부를 전혀 안하는 태도는 실상 효과를 보기 어렵고 진도가 크게 나가지 않을 수가 있다. 인문학적 지식들에서는 딱떨어지게 교훈을 얻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거나 힘들지만 수학적 공부의 태도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저 머리속에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마구 집어넣기만 할뿐 정리하려는 노력은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그들은 매우 부정확한 관념속에서 헤매면서도 왜 자신의 사고가 자꾸 붕괴하는지, 왜 자신의 판단은 앞뒤가 잘 안맞는지에 대해 이해하질 못하게 된다. 

 

물론 수학을 공부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수준의 수학책을 다시 봐야 하는가는 각자의 배경에 따라 다르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꺼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학교수준의 수학책이나 고등학교 미적분 공부를 다시 해보는 것이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령을 드는 것과 같다. 각자 자신에게 무리가 되지 않지만 운동이 될만한 무게의 것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풀어보는 것이다. 한두시간 수학공부를 해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학과 완전히 동떨어져서 생활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수학실력에 대개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 충격적 수학실력이 말해주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분명하게 사고하지 못하고 객관적으로 정량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천하의 어떤 책보다도 수학책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 적어도 흔하디 흔한 자기개발서보다는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에 몇번 조깅을 하듯이 수학공부를 해야 한다. 

 

인문학공부가 그렇듯 수학공부도 꼭 당장 써먹을 도구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 이상으로 어른들도 수학을 배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른을 위한 경제교실이라던가 정치교실이라던가 인문학교실은 흔히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수학교육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민주사회 건설이라던가 질서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흔히 역사나 철학적 교육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 수학을 등한시하는 현실을 보면 어른들에게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학교육을 재교육 시키는 쪽이 훨씬 빠르고 거부감도 없을 것이다. 수학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수학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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