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 이야기하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대총장은 등록금이 너무 싸다고 말해서 많은 사람을 격분시켰다지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 대학 등록금 문제는 매우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입니다. 이것이 해결되기는 커녕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가치관적 무능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중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등록금 문제의 첫번째원인은 대학의 경쟁력강화에 있습니다. 옛날의 한국 대학을 말하면 저투자에 저질 교육을 하는 기관으로 극단적으로 말하면 단순히 졸업장을 팔뿐 아무런 교육도 행해지지 않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1970년 80대 대학생들 중의 다수는 사실 행동하거나 방종하면서 대학시간을 보냈지 뭔가를 대학 강의실에서 제대로 배우질 않았습니다.
그 시절은 그것으로 좋았습니다. 그래도 취직은 잘되었습니다.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은 재벌회사들에 쉽게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학문을 하고 싶어하고 교수가 되기를 소망했지요. 회사는 어차피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워오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본이 똑똑한 사람이면 교육을 시키면 된다고 생각했고 한국 회사는 어차피 2류 제품을 만드는, 다시 말해 남의 것 카피만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 단순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조여댈수 있는 능력면 충분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학생수가 급감하고 학생들의 기본적 수학능력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서울대나 연고대 포항공대 카이스트의 교수들은 언젠가 부터 그들의 강의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상당수의 교수들은 자기 자식들을 미국에서 교육시켰는데 그게 부유층을 시작으로 번져나갑니다. 이제 전에는 꿈도 못꾸던 학부부터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는 사람이 흔해집니다. 한국에서는 문닫고 통합되는 대학의 이야기가 10년전부터 나돌기 시작합니다.
진짜로 중요한 변화는 인력의 수요자인 회사에서 나옵니다. 삼성같은 회사는 이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인력을 대학에서 기대하는데, 세계 최고의 대학들을 가진 선진국의 회사들과 비교해서 한국의 회사는 대학 졸업생들의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는것입니다. 선진국은 바로 교육을 포함한 사회복지에 아낌없이 부자들이 돈을 기부했기에 선진국이 된 것인데 한국 사회는 그런 쪽에 투자한 것이 적으니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이 하버드나 MIT하고 경쟁이 될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상품은 세계 최고 기술과 겨뤄야 한다는 현실이 이 부조화를 문제가 생기게 만듭니다.
부랴뷰랴 대학에 당근과 채찍이 모두 가해집니다. 그러나 내버려둔 자갈밭이 갑자기 한 두 해만에 비료주고 물준다고 엄청난 작황을 보이는 옥토로 변할리는 없습니다. 당근이 부족해집니다. 즉 돈이 부족해지는 것입니다. 더 훌룡한 교수를 모시고 더 비싼 기자재를 사고 더 훌룡한 연구환경과 행사를 개최하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하버드 대학같은 경우는 막대한 시민의 기부로 그런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만 한국에서 갑자기 그런 일이 생겨날 리도 없습니다. 한국의 대학도 사실은 엄청난 부자입니다. 그 명문대들이 깔고 앉은 땅만 생각해도 그렇지요. 그러나 그 문제는 거론 하지 말기로 합시다.
이렇게 해서 등록금 인상이 계속됩니다. 대학이 돈이 필요하고 경쟁해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고려대는 투자를 마구 해서 좋은 대학으로 변해가는데 연세대가 가만히 있다가는 3류대학이 되버릴 테니까요. 문제는 등록금 모아서 대학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가 하는 것이겠죠.
한국의 대학발전에 몇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첫째는 철학의 부재입니다. 현실적으로 돈이 없으면 대학은 발전하지 못하지만 돈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회사들이 요구하는 인력을 키워낸다는 시각에서 보면 대학은 돈많이 벌어줄 인재를 키우는 것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돈을 넘어서는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 고리타분한 도덕의 강조를 하는게 아닙니다. 돈돈 하다보면 대학이 회사를 위한 인력제조 공장처럼 변질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들은 장기적 시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내년, 3년안에 이런 식의 결과를 요구합니다. 백억을 대학에 넣으면 백억이상의 수익을 몇년안에 뽑아낸다는 것이 회사의 기본적 생리입니다. 이것은 대학을 발전시키는게 아니라 고사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기 쉽습니다. 인재가 필요해도, 잘키우면 진짜 최고가 될 인재가 있어도 장기간의 가능성에 투자하기 보다는 빨리 써서 소모해 버리는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이 회사입니다. 회사뿐만이 아니라 사회도 정부도 대학을 무슨 직업학교쯤으로 생각할 때 대학이 발전할 리가 없습니다.
두번째도 철학의 부재입니다. 단순히 배금주의나 단기적 시각을 피한다고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리가 없지요. 학문이란 어떤 가치를 가진 것인가, 우리는 왜 학문을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정리가 대학에서 굳건해 지고 그것이 대학의 담을 넘어 온 사회에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넓게 보아 문화의 변화, 생활태도의 변화까지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비전통을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는 배우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대학이 부족한 것을 말하지만 실은 이나마 되는 대학, 이나마 되는 나라를 가진 큰 이유는 그런 전통이 있어서 국민들이 교육과 대학에 관심이 컷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 모두가 배우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 더 발전되고 고급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이 되기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대학발전은 문화적 개혁과 함께 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신과 가치관의 변화가 없이 돈만으로는 절대 승부가 안납니다. 좋고 나쁜 것은 상대적입니다. 돈은 어디가 많습니까? 우리가 일본이나 미국의 돈과 비교가 됩니까? 가치관적인 부분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투자와 성과란 측면에서 미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은 하나마나 이며 중국과 경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번째로 한국의 대학은 역사적 근거도 없는 엉터리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을 완전히 버리고 바꿔야 할것입니다.
우리의 전통교육은 스승과 제자의 대면교육을 강조하고 인격향상에 기본을 두었는데 지금은 그저 강의실에서 졸업생을 대량생산합니다. 유럽의 대학은 본래 매우 매우 민주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개념이 우리생각보다 훨씬 희박합니다. 지금도 대학원에서는 논문만 내면 강의듣고 시험보는 일을 매우 적게하고 학위가 주어집니다. 이러다보니 천재는 좋지만 졸업생에 대한 품질 조절이 안됩니다. 엉터리 졸업생도 나오는 것이지요. 미국 교육시스템은 평가를 강조해서 졸업생의 능력에 대해 보장을 하는 시스템이며 우리가 이것을 많이 수입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심지어 유럽보다도 훨씬 반권위적 국가입니다. 미국의 대학분위기는 한국의 대학분위기와 크게 다릅니다.
한국의 대학은 세계적으로는 거의 인정받지도 못하는 학자가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고하게 권위를 행사하며 학생을 대량 생산합니다. 돈도 없고 철학도 부족한 한국이 권위주의까지 가지고 있으니 경쟁이 될리가 없지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학생평가, 학생들의 의무와 권한에 대한 큰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본적 강좌는 비디오 강의와 시험으로 대체해도 된다고 봅니다. 세계 최고의 강의를 비디오로 제공하고 시험만 통과하면 강의를 이수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식으로 하면 많은 비용을 절감하고 교수들은 강의 부담을 크게 덜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들간의 연계를 강화하면 전국 최고 수준의 강의를 할수 있는 교수가 그과목을 강의하면 전국의 모든 대학생들이 다들을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 교수들도 그런 식으로 강의할수 있게 하면 되겠죠.
권위주의의 타파는 한국대학의 현실을 표면화시킬것입니다. 그만큼 발전도 빠르겠지요. 예를 들어 한국경제학 교수들은 외국의 저명저널에 얼마나 논문을 쓰고 있을까요? 그들은 국내문제에라도 합리적인 조언을 하고 있을까요? 미네르바 열풍의 문제점중의 하나는 미네르바에게 있는게 아니라 미네르바가 옳건 그르건 보다 합리적으로 그 상황을 조절할 수 있고 신뢰받을 수 있는 권위자가 없는거 아닐까요? 미네르바가 경제학 교수입니까? 시골의사가 경제학교수입니까? 정운찬 총리가 취임하면서 논문을 얼마나 썼는가가 화제에 올랐죠. 까놓고 있는 만큼만 존경받자는 것이죠. 그래야 세상이 쉽게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이건 한 예에 불과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학문이 무엇인가, 어떤 가치관을 우리는가져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한국 사회와 대학은 이제까지처럼 왜 그런 걸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단순 기술자로 연구에 참여하는 수준에 머물테고 결국 대학은 발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생들은 대학을 취업학교로 알고 운전학원 교습비깍듯이 학원비깍아달라고하고 대학은 원가가 그렇게 안된다면서 교습비 못깍아준다는 차원에 머무른다면 대학등록금 문제의 답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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