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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주의자들에 대한 생각

by 격암(강국진) 2010. 2. 12.

2010.2.12

스스로를 합리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민족이나 애국심같은 말에 펄쩍 뛴다. 그들에게 있어 이런 말들은 근거가 없는 말들이며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말이다. 이건 파시즘이야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민족이나 애국심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들은 가족이나 가문이라는 말에도 대부분 강한 저항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가족관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어떻게 그들의 삶은 처참한 무지에 찬 가족들에 의해 망가졌는지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나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너무 낭만주의적이 되지 말것을 말한다.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여자들이 얼마나 노동력이 착취당하는가. 해마다 명절이면 여자들이 왜 명절을 싫어하는가에 대한 기사가 사방에 가득한데 그것은 물론 일정부분 합리주의자인 기자들이 명절의 큰 의미를 가슴속깊이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합리주의자들은 평화와 자유를 강조한다. 우리는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며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가차없이 추구할뿐만 아니라 남의 자유를 지켜주는 일에도 헌신적이다. 그래야 자신의 자유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꼭 나쁜 일이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많은 것이 그렇듯이 절대적인 것은 없다. 민족이나 애국심같은 것에 펄쩍 뛰며 반대해도 현실에서 그 사람이 한국인인것과 유럽인이나 미국인인 경우 그 결과는 상당히 다르다. 세계는 지금 유럽문명, 미국문명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없고 나라없음을 강조해도 미국인과 유럽인의 경우는 그들 국가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3권분립을 기초로한 정치 자체가 서구 문명의 것이다.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고 해도 결국 민족없고 나라없음이라는 말은 현실에서 뭐든지 서구식으로라는 말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추구도 그렇다. 과연 자유란 모두에게 좋은 결과만을 낳았을까? 나는 지금부터 여자들에게 욕을 먹기 쉬운 말을 할지 모르는데 나의 본의를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녀는 평등하지 않다. 미국이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남자 정치인, 남자 재벌, 심지어 남자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수가 여성의 수를 크게 능가한다. 한마디로 권력의 차원에서 남녀가 진정으로 평등을 이룬 곳이 없기는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많은 여성들에게 남녀평등이란 실은 너는 남자와 자유롭게 잘 수있고 남자는 그런 관계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가난한 것이 현실인데, 남자의 문화가 세상을 주도하는 것이 현실인데 우리는 모두 평등하니까 모든 일을 똑같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자남편과 가난한 여자가 결혼해서 똑같이 집세를 낸다라는 말이다. 모든 것이 자유므로 여성은 해방되는데 이는 현실에서 어리석고 힘없는 여성들이 간섭받지 않을 권리인 동시에 보호받을수 있는 장벽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많은 여성들은 난 자유야. 난 보호받을 것을 원하지 않아. 난 죽어도 혼자서 노력하다 자유롭게 죽겠어라고 말할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실은 세뇌의 결과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 나는 남자에게 의존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 의미에 대한 숙고를 하면서 자유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나는 자유라는 말을 하기전에 가치판단의 문제에 있어서 자신은 얼마나 노력을 해보고 나는 자유라고 말하는 것인가. 자유는 본래 공짜인가?

 

합리주의는 신학적 관점을 도입하지 않아도 사실은 대단히 자만심에 차고 허영심에 찬 태도라고 볼 수도 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이 신을 버릴 때 도덕과 가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천황제도를 신봉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사회의 가치와 도덕을 지키는 존재로서의 천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반면에 합리주의는 천만에 모두가 자유고 모두가 스스로 자신에게 좋은게 뭔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문장에 찬성하지만 가능성 차원에서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떤 합리주의자도 2-3살먹은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좋은게 뭔지 다 스스로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논리를 무한히 끌고 간다면 사실은 소통이 불가능하다. 합리주의를 주장해서도 안된다. 다른 사람은 자유롭게 자기에게 좋은게 뭔지 알것이고 그래서 사교집단에 투신해서 괴상한 일을 벌일 자유가 있는 것이니까. 

 

가난하고 배운것없는 사람들에게 -학력이 반드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혜는 학벌이 없이도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들은 자유입니다를 외치면서 그들이 믿는 민족이니 애국심이니 가족의 질서에 대한 전통적 인습을 전체주의로 말하는 것이 합리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좋은 일을 했다고 믿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들은 그런 서민층을 딱 이용당하기 좋은 상태, 유혹당하기 좋은 상태로 만든다.

 

선진국들이 식민지 운영을 포기했을때 그나라들에는 종종 인종청소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들은 그들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의 전통적 정치적, 도덕적 힘의 균형을 깨뜨리고 모두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자유라고 하지만 실은 자본주의적 조종이 쉬워지도록 만들고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온갖 권위를 차지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그냥 빠져나가 버리면 남는 것은 더욱 자유로워진 자유시민들의 천국일까? 

 

극단적 형태의 권위주의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단 한사람만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 사람만이 시비를 제대로 가리고 좋은게 뭔지를 알고 있다. 합리주의는 모든 사람이 지금 당장그렇게 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는 자기 성찰과 훈련을 한 사람만이 관념과 전체주의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울수 있다. 자기가 그런 관념들에서 자유로울수 있을 만큼의 자기 성찰을 했다고 해서 그런 관념들을 비웃고 일반적으로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 나쁜 것은 실제로는 자신도 그저 싸구려 지식을 얼마간 알고 있을뿐 내적 성찰을 통해 가치의 문제에 있어 별반 진전이 없었던 작은 합리주의자들의 경우다. 이들이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실제로는 그들의 방종을 변명하고 싶어하거나 그들의 사회 장악력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의도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미신'같은 근거없는 관습과 관념에서 벗어나라고 당신들은 자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란 대개 그들자신이 편한 사회다. 

 

말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우리는 모두자유라고 말하면서 문제가 있으면 말싸움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겠냐고 한다. 몸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불만이 있으면 사내답게 주먹으로 한판붙어서 해결하자고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모든 걸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점에서 해결하자고 한다. 이런 것들은 어느 것도 실은 얇팍한 이기주의요, 물고기가 우리 물에 가서 싸우자고 하고 제비가 우리 그러지 말고 하늘에서 싸우자고 하는것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인식하건 안하건 이것은 그저 권력투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얽혀 있고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형이상학의 차원에서 그렇다. 자신이 부자 할아버지의 상속인이라는 사실은 자신이 그사실을 알고 있건 모르건 사실이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우리는 우리안에 깨어남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깨어났다고 해서 못깨어난 사람보다 더 잘날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자유가 뭔지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자유란 스스로 체인을 손발에 묶을 자유, 스스로 좁은 감옥에 들어갈 자유, 스스로 불속에 몸을 던질 자유같은 그런 자유다. 주변 사람에게 그런 자유를 권하면서 자신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작은 합리주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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