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훈련시킬 때 그러니까 예를 들어 쥐를 훈련시킬 때 우리는 쥐가 어떤 정해진 행동을 하면 음식이나 물이나 쥬스같은 보상을 준다. 그런데 가장 훈련효과가 큰 경우는 쥐가 문제의 그 행동을 했을때 마다 보상을 주는게 아니라 보상이 무작위로 주어질 때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보상이 없고 어떤 때는 대박이 터져서 보상이 엄청나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보상이 무작위가 되면 쥐는 그 행동을 하는 것에 더욱 많이 집착하게 된다.
인간의 중독 현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도박중독이나 복권, 경마같은 것에 매달리는 인간들을 보면 우리는 종종 작은 희망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통상 도박이라고 알려진 것에만 이런 것도 아니다. 평상시에는 착한 일을 잘 하지 않는 아들이지만 이따금씩 엄마를 깜짝놀라게 하는 아들을 생각해 보자. 엄마들은 이런 자식들에게 중독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할 가망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도 그 아들의 엄마들만은 자신의 자식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머리속에서 보상이나 즐거움과 깊게 관련된 물질로 알려진 것이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일단 분비되면 도파민을 수용하는 수용체에 의해 받아들여지는데 이 수용체가 많은곳은 선조체 (corpus striatum)이라고 불리는 부위라고 한다. 그래서 MRI 같은 기계를 써서 도파민 분비에 따라 생겨난 선조체의 활성화를 측정하면 위에서 말한 쥐와 인간의 비교가 좀더 근거있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그레고리 번즈와 리드 몬타큐는 기본적으로 위에서 말한 실험을 인간에게 행했다. 즉 그들은 MRI로 인간의 선조체 활성화를 측정한 것이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아이큐 테스트 같은 것을 하면서 같은 관찰을 했고 또다른 미국의 연구자들은 게임을 하면서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간에 선조체 활성화가 어떻게 되는지를 측정하기도 했다.
정리해보자면 우리는 도파민이 나올 때 보다 행복해 한다. 그런데 도파민은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일이 우리가 예측한대로 일어나면 보상이 있어도 도파민은 나오질 않는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연금같은 돈에는 도파민이 안나온다. 우리는 그게 그럴 줄 알았기 때문이다. 숙제를 할 때마다 어제도 만원 오늘도 만원하는 식으로 보상이 같으면 기쁨이 줄어든다. 깜짝 놀랄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마다 숙제를 하고 있는데 평상시에는 보상이 없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착하다고 십만원짜리 오락기를 들고 나타나면 도파민분비가 왕성해 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다. 이래서 부자들도 반드시 행복하지 않다. 우리는 가진 것에 익숙해 진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도 작은 행운에 크게 행복해 하고는 한다. 부자들이 보기에는 대단하지 않은 행운도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 된다.
우리는 느리게 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우리는 이 말도 이 글에서 말해온 문맥으로 해석을 새롭게 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느린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느리게 사는 것과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는 일단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나를 일단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화가 심하고 선택의 가지수가 실질적으로 무한한 경우가 많은 곳이다. 가진 장난감이 한가지라면 그 한가지 장난감을 행복하게 탐색하면서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을텐데 장난감이 수백가지가 있다면 우리는 어느것 하나에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각각의 장난감을 대충 살펴보고 말것이다. 한번 흘낏보거나 움직여보고 바로 다음 것으로 가는 것이다. 실제로 40년전정도의 옛날에는 별다른 도구가 없어도 아이들은 즐겁게 골목에서 놀았지만 오늘날의 아이들은 꿈에나 나올 정도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권태를 느끼는 것을 우리는 본다.
선택의 다양함과 자유는 종종 우리의 행복지수를 내린다. 우리는 풍요속에서 가난해 진다. 우리는 너무 풍요로워서 지나치게 가진게 많아서 가진 것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보상에 모든 것이 피상적으로 인식되고 금방 식상한 것이 된다. 따라서 도파민은 분비되지 않고 따라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느리게 살라는 조언은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느리게 사는 것은 우리 앞에 주어진 한가지를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보는 것이다. 얼른 얼른 다음 글로 다음 장난감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은 금방 다 비슷한 것으로 채워진 곳이 된다. 새로움이 없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 가문의 역사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많은 경우 당신은 재미도 없는 것을 열정도 없이 말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막내동생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고 하자. 아니 당신의 왼쪽 팔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고 하자. 이런 황당한 요구에 처음에는 당신은 얼굴을 찡그릴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면 어릴때 다쳐서 왼쪽 팔에 상처가 있다던가 당신의 왼쪽 엄지손가락은 약간 굽어있다던가 주름이 특이하다던가 왼쪽팔을 흔드는 버릇이 있다던가 주로 왼쪽팔을 입에 넣고 산다던가 하는 여러가지를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당신의 왼쪽팔은 사연이 깊고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왼쪽 엄지 발가락이나 당신의 오른쪽 눈의 눈썹을 관찰하면서 같은 것을 시도해 볼수도 있다.
뭔가를 천천히 자세히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많은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것이 특별한 것이며 다른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의미를 가지게 되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당신의 왼쪽 팔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이제 당신은 왼쪽 팔을 쓸때마다 약간의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 빨리 살도록 강요당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대체가능하고 개성을 가지지 않은 것이 되고 의미를 잃게 되기 쉽다. 거기에는 더이상 새로움이 없다. 그게 그거일 뿐이다.
오직 느리게 살 때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고 우리앞에 있는 것과 연결되게 된다. 우리는 가족을 발견하고 나를 발견하고 집앞의 나무를 발견하고 학교를 발견하고 직장과 자동차와 동네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자세히 볼때 우리는 그것들이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변하고 있어서 당신이 알고 있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때 바로 새로움이 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집앞의 빈터에 앉아 작은 벌레며 나무를 하루종일 보면서도 지루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세계 최고의 유원지나 휴양지에 가서 앉아있어도 30분이면 모든 것을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누가 행복하겠는가. 누가 도파민 분비가 많겠는가.
느리게 살기의 본질은 게으르게 살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살라는 것이다. 세상을 대충 대충 살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 세상에 대한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행복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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