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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미국 이야기 8 : 뉴올리언즈에서 뉴욕가기

by 격암(강국진) 2010. 3. 1.

미국은 큰 나라다. 나는 그 큰 나라를 자동차로 여행하는 일을 항상 꿈꿨는데 여러가지 사정상 많이 하지는 못했다. 돈과 시간의 문제를 제외하고도 예나와 경호가 너무 어려서 그런 장거리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단한 자동차여행을 해보지는 못했고 단 두번 자동차로 여행을 했을 뿐이다.

 

한번은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키웨스트까지 자동차를 몰고 여행한 적이 있다. 지도를 보면 플로리다의 최남단에 얇은 띠같이 섬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띠의 마지막에 있는 섬이 키웨스트다. 이 섬에 가려면 바다를 가로지른 많은 다리와 섬이라기 보다는 모래톱같아 보이는 좁은 폭의 섬들을 지나야 한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날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차안에 아내와 앉아 있으면 주변을 보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이야기를 하게되기 마련이다. 나는 어디론가 가버릴 수도 티브이를 켜거나 책을 보거나 할 수 없고 아내도 차안에서는 그런 것이 쉽지 않으므로 좀 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좁은 차안의 공간에서 두사람만 몇시간을 보내고 나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도 저절로 왠지 좀더 친숙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그 시간동안 서로에게 좀더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동차여행을 추천할 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자동차 여행은 부부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아내와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긴 자동차 여행을 떠나도록 하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이상으로 차 안에서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가는 도중이 더 중요하다라는 식의 조언은 한국이나 미국 어디서나 들을수 있지만 그말에 좀더 강하게 호응하는 것은 미국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느정도 미국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점 인것으로 느껴진다.

 

키웨스트를 다녀오는 여행은 근사하기는 했지만 실상은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이 없다. 키웨스트자체는 그다지 인상을 남기지 않았고 헤밍웨이의 집이란 것도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따뜻한 남쪽나라의 날씨를 즐기며 드라이브를 했던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다. 파란 플로리다의 하늘밑에서 섬사이로 드라이브를 하는 것은 충분히 즐거웠다. 하지만 거리도 왕복해서 천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했고 뭐가 좋냐고 말하면 그다지 말할 것이 없다. 그냥 조용하고 따뜻한 남쪽나라의 꿈을 꾼 것 같다.

 

내가 그것보다 더 즐거웠다고 생각한 또 하나의 자동차 여행은 뉴올리언즈에서 뉴욕까지 자동차를 몰고 여행한 일이었다. 지도상으로는 2천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지만 도로를 따라가야하고 중간에 다른 곳을 들렀기 때문에 아마 3천킬로쯤 운전한게 아닌가 한다.

 

이 여행은 전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무척 즐거웠다. 아니 그래서 즐거웠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나는 요즘도 종종 가족과 여행을 떠날 때 전혀 계획이나 사전 정보 없이 떠나곤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이런 계획없는 여행이 즐거웠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당시 뉴올리언즈에서 하는 학회에 가족과 같이 참석하고 있었다. 내가 학회를 참석하는 동안 아내는 동물원이나 박물관구경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야 할 때가 되었을때 나는 비행기표 예약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새로운 비행기표를 끊어야 할 판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된 김에 차를 빌려서 뉴욕까지 가기로 했다.

 

우리의 여행계획은 단순했다. 우리는 천천히 조금만 운전하고 뭐든지 나오는 게 있으면 그걸 보기로 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아직 가보지 못한 워싱턴 디씨에 들리기로 한 것이다. 어디에 도착하는 것에 신경쓰기보다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이따금 차를 타고 내가 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따라 달릴 때 내 머리는 유난히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것은 그 길이 딱히 유명한 곳이 아니라도 그러하며 많은 경우는 사실은 유명한 곳이 아닐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도착하기에 집중한다면 미국은 여행하기가 아주 나쁜 나라다. 미국전체를 말하면 대단한 관광지가 많이 있지만 나라가 워낙 큰 데다가 역사가 짮아서 인지 그런 관광지들이 서로 많이 떨어져 있고 그리 많이 개발되어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가면 나이아가라 폭포는 대단하지만 그것 말고는 이렇다 할 즐길 것이 없다. 거기서 다른 곳으로 가보려고 하면 또 거리가 엄청나다. 미국에서 도착하기 위한 여행을 한다면 이동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들고 말 것이다.

 

미국을 신세계라고 하는데 미국은 그런 말이 어울리게도 땅에 사람의 손길이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유럽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라면 토속음식점이 있다던가 박물관이나 절이나 신사나 궁전따위가 한곳에 우글거려서 보고 즐길 것이 많지만 미국의 여행지라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뉴욕관광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사람과 문화와 역사보다는 대개 웅장한 자연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아무래도 인구밀도나 역사가 틀린 것을 느낄 수 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나는 종종 산 밑에 칼국수 집도 없다고 투덜댔다. 산이며 절이며 계곡에 가면 칼국수나 어묵이나 파전 따위를  먹으면서 여유를 부리는 것이 그런 곳에 가는 큰 즐거움이 아닌가. 그럴 수 있었던 한국이 그리웠다.

 

반면에 도착하는 것보다 어딜 가는 것에 집중한다면 미국은 참으로 훌룡한 관광지다. 일단 나라가 크다. 아주 크다. 도로를 따라 달리면 고작해야 몇 시간이면 어디 더 갈 곳이 없이 바다로 막히는 한국과는 다르다. 아무리 가도 새로운 땅과 새로운 숲이 나온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 미지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새로운 마을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남북분단 때문에 우리 나라가 작아지고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것이 새삼 더 안타깝다. 부산에서 평양으로 신의주로 그리고 중국으로 러시아로 여행할 수 있다면 너무나 좋을 것이다. 왠지 마음의 용량도 훨씬 더 커질 것 같다. 그것은 비행기를 타면 거기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땅들이 이어져 있고 조금씩 산천과 문화가 바뀌어 가는 것을 느끼고 오랜 시간 땅으로 여행한 끝에 도착한 목적지는 비행기로 날아가 내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 진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유럽도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땅으로 갈수 있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일본은 도로비가 엄청나고 기름도 비싸서 여유롭게 목적 없이 달리는 것을 생각하기 힘든데 미국은 기름값도 싸고 도로비가 거의 들지 않아서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기에 좋다. 차도 별로 없는 도로를 나는 일정속력을 유지하게 해주는 크루저를 켜고 여유있게 달렸다. 크루저를 켜니까 운전도 쉬웠고 경호가 멀미도 덜해서 좋았다.

 

얼마나 갔는지 생각하지 않은채 길을 따라 달리면서 새로운 숲과 산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하다못해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려도 뉴욕과는 달라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가끔씩 나오는 벼룩시장이다.

 

미국과 유럽에는 그리고 일본에는 중고품 시장이 많다. 이렇게 말하니 전세계 어디를 가나 그런 것 같은데 한국만 그렇지 않은 것같다. 그러고 보니 이건 미국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특징이다. 잘사는 나라들은 대개 중고품 시장이 활성화 되어 있는 것같다. 검소하게 사는 것 때문에 그렇건 옛날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 그렇건 그렇다.

 

미국의 벼룩시장은 상설시장이 있고 비상설시장이 있다. 비상설시장은 장이 열리면 사람들이 그리로 와서 자리 깔고 이것저것 파는 것이다. 상설 벼룩시장이란 중고품시장 같은 것인 데 대개는 커다란 창고에 이것저것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벼룩시장은 뒤죽박죽일수록 재미가 있다. 깔끔한 벼룩시장이란 의외로 좋은 물건을 건질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물건이 뒤죽박죽인 곳이면 잘 뒤지면 뭐하나 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파는 사람의 복장도 그렇다. 깔끔한 도회지 사람 같은 모습으로 물건을 팔고 있는 벼룩시장이란 왠지 그냥 재래시장에 온듯한 느낌이 들어서 재미가 없다. 그러나 허름한 산사람 같은 복장이나 인디언머리에 문신하고 피어씽한 사람이 물건을 파는 곳은 왠지 뭔가 좋은 물건을 싸게 살수 있을 것 같은 기대에 차게 만드는 것이다. 어딘가 먼 외국의 원주민들에게서 물건을 사는 느낌이다.

 

우리는 아이들 장난감이나 집에서 쓸 싸구려 물건들을 필요하건 필요하지 않건 만지작 거렸다. 집에 가지고 가봐야 전혀 쓰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물건을 보면 마음이 혹해서 이거 있으면 좋겠다고 하고 이거는 좋다 이거는 품질이 별로다 하면서 물건 평가를 한다. 아이들에게 선심을 쓰기도 좋다. 예나는 아직 물건을 값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100불짜리도 선물 하나고 1불짜리도 선물 하나다. 그러니 선물을 세 개나 사주면 너무 좋아한다. 값은 3불이지만 말이다. 나와 아내는 비디오 테이프나 중고 책 따위를 뒤적이며 시간을 쓸 때도 많다. 벼룩시장에는 소시지나 구운 옥수수나 커피나 콜라등을 파는 곳이 있는 경우도 많다. 소시지나 감자따위를 들고 가족과 함께 따뜻한 날씨에 벼룩시장을 거니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다 보니 이름도 멋있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이 나온다.  스모키 마운틴은 아팔란치안 산맥의 일부로 아팔란치안에는 유명한 3500킬로미터 짜리 산행로가 있다. 역시 나라가 크니까 산행로의 규모도 엄청나다.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스모키 마운틴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립공원으로 매년 9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우리는 그때 전혀 몰랐다. 계획이 전혀 없었으며 중간에 무슨 도시가 있는지도 확인 안하고 출발했으니까 그렇다. 마을은 아직 크리스마스가 한달이 넘게 남았는데 이미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시설과 청결도를 생각하면 믿을 수없이 싼가격으로 커다란 침대가 두개있는 더블룸을 빌렸다. 미국은 사실 수영장도 딸리고 시설도 좋은 호텔이 무척 싼 경우가 많다. 가격은 호텔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예나는 수영장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수영장이 딸린 호텔에 가면 그곳이 바로 놀이공원이나 마찬가지 였다. 우리는 산에서 나오는 좋은 공기와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고 아이들은 수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에는 불꽃놀이 화약을 사다가 불꽃놀이를 했다.

 

산정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고 산아래 마을에서 캔디 만드는 기계를 구경했다. 이 마을은 스모키 마운틴 자락에 있는데 그다지 자랑할 것이 없나보다. 이 마을의 자랑은 고작해야 팬케이크다. 그래도 산자락 밑에 파전은 없지만 팬 케익은 있다며 보이는 대로 멋있는 팬케이크 가게에 들어갔다. 그 가게는 이세상에서 내가 본 어떤 팬케이크보다 호사스러운 팬 케이크를 팔고 있었다. 미국의 많은 식당이 그렇듯이 아주 큰 접시에 과일과 크림으로 멋지게 장식된 팬케익을 판다. 우리는 이 팬 케익에 대해 몇 년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만약 비행기를 타고 미리 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성수기에 이 산자락에 도착했다면 우리는 이 산에 대해 전혀 다른 느낌을 가졌을지 모른다. 너무나 즐거웠던 팬케익 가게는 그저 그런 음식으로 기억에 남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뭔가를 기대하지 않고 여행한다는 것은 여행에 커다란 즐거움을 준다. 작아도 우리가 발견한 것에 대해 매우 큰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정보를 너무 많이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줄거리를 다 들은 책을 읽거나 장면 장면 사진을 너무 많이 본 영화를 보는 것처럼 뭔가 맥이 빠진다.

 

달리고 달려서 우리 가족이 도착한 곳은 워싱턴 디씨다. 링컨 기념관을 보고 예나가 아는척을 한다. 돈에서 본곳이란다. 그러고 보니 페니 동전에 나오는 건물이다. 링컨 기념관앞에는 기다란 연못이 있다. 미국 역사에서 유명한 곳이지만 내게는 왠지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장소로 기억에 남는다. 링컨 기념관 안에는 게티스버그 연설이 크게 각인되어 걸려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이 앞에서 1963년에 연설을 했다. 기다란 연못의 끝에는 높다란 워싱턴 기념비가 보인다. 우리 가족은 풀밭을 따라 걸으며 사진에서 많이 보던 구조물들을 구경했다.

 

나는 아주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대개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하는데 이는 유명하기 때문에 내가 사진으로 이미 많이 봤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해도 벌써 한번 본 곳이라면 실제로 봐도 나를 놀래키고 즐겁게 하거나 감탄하게 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웅장한 기념물들 사이를 걷는 것은 일종의 신전에서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외계인이 어느날 지구에 온다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같은 곳과 워싱턴 디씨의 앞마당이 다른 용도로 쓰이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워싱톤 디씨는 아마도 자유의 신전쯤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유의 여신도 미국을 대표하는 구조물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감탄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슬펏다. 이 상징물들에게서는 미국적인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미국에는 미국의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이렇게 강하다.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강한 의지가 있을까를 생각하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것이 미국이라면 한국이란 뭔가. 한국인이 피 흘린 정신이란 뭔가. 분명 우리도 피 흘린 민주화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숭고하게 대단하게 기념되고 교육되고 있는가. 정신적으로 역사는 정리되지 않은 것같다. 어두워지는 도로를 달리며 뉴욕으로 돌아오는 동안 워싱톤 디씨의 구조물들이 주는 인상은 잊혀지지 않았다.

 

뉴욕의 이웃들이 말해주는 휴가는 한국의 친구들이 말하는 휴가와 좀 다르다. 뉴욕의 이웃들은 주로 어딜 가서 주저 앉아서 쉬었다가 오는 것을 휴가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충전의 의미가 많고 진짜로 쉬러 가는 것이다. 일정은 거의 없고 해변가에서 수영하고 낮잠 자고 책이나 읽다가 저녁에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물론 미국 사람도 유명한 관광지에 흥분하기는 하지만 휴가는 본래 쉬러 가는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휴가지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들이 개인적으로 체험한 경험에 보다 강점을 두는 것 같다. 우연히 발견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팬 케익집 같은 것에 대해 떠들고 자기만이 알고 있는 조용한 해변에 대해 흥분하여 설명한다. 휴가란 일상에서 벗어나 나자신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느낌이 강조되고 자신만의 장소가 좋다. 이를테면 기성복 같은 여행보다는 집에서 만든 옷 같은 여행을 더 높이 친다. 그것이 미국식이다. 남들과는 다른, 남들의 복사가 아닌 특별한 너가 되라는 메시지는 미국 사회에 가득차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다를지 모르나 한국인의 휴가는 그보다 어딘가에 도착해서 뭔가를 한다는데 집중해 있다. 뭔가 나는 이러저러한 것을 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명한 것을 보는데 집중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먼 길을 조급하게 달려 도착하고는 숙제하듯이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보거나 해수욕장이나 계곡물에 몸을 담그는데 그것도 쉰다기 보다는 무슨 무슨 계곡에서 물에 몸을 담궜다라는 해야할 일 목록중의 하나를 해내는 느낌이다. 그리고 대개는 피곤에 지쳐 돌아가는 것이다.

 

같은 것을 봐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다산 정약용이 세검정에 가서 폭포를 즐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비가 온다는데도 달려가서 본 세검정은 비가 오고 있기 때문에 멋졌다. 비오는 날 정자안에 있으니 좋았고 비가오니 물살이 장쾌하여 멋졌다. 하늘이 흐린 것을 보고 바로 결정하여 친구들과 뛰어가 보았기 때문에 멋진 것이다. 다른 때 다른 상황이라면 멋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여행은 온전히 나만의 경험이 된다. 그런게 휴식이고 여가가 아닐까. 우리에게도 여가를 즐기는 멋을 강조하는 전통이 있었다. 기성복 같은 느낌을 소비하기보다는 자기 느낌을 강조하던 때가 있었다. 휴가를 멋지게 즐기는 사람이 전처럼 많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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