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오랬동안 한 정치집단의 특징은 그 집단의 우두머리가 결정지어왔다. 예를 들어 3김씨가 있었고 노무현이 있다. 실상 개혁당의 유시민도 민주적 시스템을 강조했으나 현실에서는 1당독재였다. 유시민이 독재를 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 밖에 없이 일이 돌아가서 당직보다 유시민과의 개인적 친분이 훨씬 중요해 보일때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스형 정치로 비판하는 이런 정치는 과연 탈피 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민주적 절차를 시스템내로 받아들이면 해결할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런 정치는 극복되어야 하지만 실은 더 중요한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우마차에서 자동차로 업그레이드 한다고 떠들다가 엔진은 없는데 소를 마차에서 떼어내버리는 일을 할수가 있다. 결국 마차는 앞으로 한걸음도 안가니 우마차보다 못한 것이다.
하나의 집단이 공동체로서 작동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가치판단적 문화다. 즉 우리는 일을 같이 함에 있어서 공평하다는 것, 중요하다는 것, 좋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모두가 사회봉사라는 선의로만 모였다고 해도 꼭같이 진실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부분을 너무 쉽게 간과하는데 내 생각에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가치관과 철학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자신은 가치관이나 철학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서구적 사회변화의 역사, 서구적 가치를 지나치게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 것은 모두다 정해져 있는것이며 그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일부 기득권층의 탐욕과 다수의 무지한 대중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가치의 문제는 미해결의 문제이며 형이상학의 문제라 과학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구에는 여러가지 문화권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를 만들어 왔는데 단지 지금 전세계를 지배하는 문명이 서구문명일 뿐이며 그들의 가치판단이 당연히 옳은 것도 아니고 과연 비서구문명권의 사람들이 그들처럼 살수 있을까 하는 것도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다. 사람들의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사회를 서구화하려는 노력은 대개 문화적 혼동으로 가지 서구사회에 까지 이르지 못하고 만다.
이부분을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가지를 생각해 보자. 서구민주주의는 평등과 다수결을 강조하는데 다수의 사람들이 서구적인 사회, 서구적 합리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일종의 꼬리를 문 뱀처럼 자체모순적인 상황이 된다. 민주적으로 민주주의가 거부되고 합리적으로 합리주의가 거부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치집단이 보스 중심으로 굳어지는 이유는 이때문이다. 강력한 보스가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집단의 정체성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그 보증에 기반하여 집단내부의 형평성과 가치판단이 내려진다. 김대중을 존경하고 그의 가치판단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면 김대중의 말이 곧 법이 될수밖에 없다. 김대중이 우리 민주적으로 하자고 하면서 어떤 시스템을 가져와도 마찬가지다.
그럼 김대중을 존경하는 사람, 이회창을 존경하는 사람, 박근혜를 존경하는 사람, 이명박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민주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되지 않을까? 그게 안된다. 그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그건 어느 정도 한국에서 일본법, 독일법, 미국법, 호주법 다 한꺼번에 실시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민주적 절차는 이경우 금새 파벌간의 세력겨루기가 되고 만다. 각 파벌은 어차피 보스의 거수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럼 모두를 교육해서 누구를 맹종하지 말고 독자적 판단을 내리도록 교육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게 옳지만 그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어려운 것이다. 그냥 단순히 유시민도 틀릴때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현대한국사회의 문제의 근원에는 개개인의 가치판단적 근원이 혼란되어 있고 붕괴되어 있다는 것이 있다. 우리의 유교적 전통은 철저히 비판되고 일제시대를 거치며 파괴되었고 외세의 가치관은 외세의 가치관에 불과하다. 우리의 몸에 체화되지 않은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보보다 강하다. 이렇게 되는 주된 이유중의 하나도 가치관의 문제때문이다. 진보세력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가치관이 한나라당보다 더 훌룡한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약하다. 하나의 가치관은 조화와 통일을 만들어 낼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지 단순히 착한 사람 신드롬에 빠져있는 환자가 되는게 아니다. 손해 보고 삽시다. 나쁜짓은 손톱만큼도 하지 말고 삽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치관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의 문화적 뿌리는 친일파고 그들의 가치판단적 정체성은 일본의 그것과 닮아 있다. 한마디로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주의이며 인간적 은원관계를 강조한다. 이런 한나라당 계열사람들을 후진적이라 말하는 진보는 옳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들이 아예 가치판단적으로 백지라는것을 모른다.
한나라당이 배금주의에 봉건주의라면 진보는 대개 논리와 사실만 무성할뿐 가치관적으로 백지이다. 그들은 대개 자기 가치판단을 할수 없어서 한나라당이상으로 유럽이나 미국을 100% 베끼자고만 한다. 그들 스스로는 좋고 나쁜 것에 대한 감수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진보는 분열하는 것이다. 왜냐면 통합을 이룰수 있는 가치판단의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보스중심의 정치가 행해져온것이고 지금도 없애기 힘든 것이다. 어떤 집단이 있다고 할때 그 집단의 가치판단의 일관성을 보증할 장치가 없다. 거기에 신경도 크게 쓰지 않는다. 김대중이 정치를 할때 그가 이끄는 집단이 비일관적으로 행동하면 누굴 욕하는가. 김대중을 욕한다. 김대중이 가치판단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고 어떤 사안이 충돌했을때 그 가차판단의 근거에는 결국 김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스형정치다.
이것을 아무도 보스가 될수 없게 하면 반드시 발전인가? 그렇지 않다. 이제 일은 벌어지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시시비비를 논하고 논리적 계산을 하고, 외국에서 증거가 들이밀어지지만 산처럼 많은 증거와 바다처럼 큰 계산도 가치판단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가치판단은 사실명제에서 나오는게 아니다. 따라서 집단은 무력하다. 열린우리당이 우리에게 그것을 잘 보여주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한국에서 인물중심정치의 탈피가 가능하려면, 한국은 정신적, 가치관적, 문화적 부흥이 필요하다. 가장 절실한 것이 이것이다. 우리는 형이상학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이렇게 태어나고 자라서 죽는다는 것,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문화적 혁명이 필요하다. 민주적 시스템이 민주주의를 만들어 주지 못한다. 그안에 있는 인간이 민주적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보스형정치는 탈피될수 있다.
내가 보기엔 한국사람중에서 이점을 깊이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같다. 그저 인터넷 투표로 사안마다 전국민 다수결투표할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민주주의가 실현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원인이 그대로 있으면 결과도 반복된다. 내적 문제의 해결이 없으면, 인간 문제의 해결이 없으면 민주주의 운동과 독재가 번갈아 나타나는 일이 계속될것이다. 보스정치역시 떳다가 가라앉았다가 계속될것이다. 보수형정치의 탈피는 단순히 보스가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이룩될수 없다. 문화적, 가치관적 공감대와 원칙이 굳건히 설때만 개개인은 비교적 독립적으로 판단에 나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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