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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빠진 시스템만 있는 정치

by 격암(강국진) 2010. 3. 18.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여기저기서 여러가지 주장을 통해 새로운 한국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메일을 통해 온 역동적 복지국가론에 대한 기대와 우려라는 김대호 사회디자인 연구소 소장의 글을 읽었다.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337). 


이글은 복지도시를 만드는 6가지 방법이란 책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지만 나아가 다가올 선거를 야당쪽의 복지국가론과 여당쪽의 선진국가론의 대결로 예측하면서 여야의 개혁비전을 모두 비판하고 있다. 


그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을 읽으면서 나는 종종 느끼는 한국 정치인들의 공통점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은 마치 새로들어가 살 집을 선전하듯이 정치를 본다는 것이다. 거기에 들어가 살 한국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이 마치 요즘 트렌드는 이겁니다 손님하고 말하듯이 선전을 한다. 물론 그들이 한국에 대해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양극화 현상이라던가 저출산 문제등을 거론한다.


그런데 그들이 거론하는게 뭘까. 바로 유형의 것들, 관측된 숫자들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오로지 과학적 사실만이 사실적 지식이며 형이상학적 학설은 무의미한 것으로 주장하는데 마치 그런 태도를 보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물질화되고 측정된 것들에 모든 신경을 쓴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것들은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대충 넘어가고 만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이 당연히 옳은 것이며 설사 그르다고 해도 실제로 사소한 문제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매우 중대한 것이며 나아가 대부분의 문제의 원천에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김대호 소장은 그 책들을 비판하면서 이책들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공평함을 무시한채 논의를 진행시켜서 거의 무의미한 책이 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와 복지를 강조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의 이익단체화와 부패는 거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멋진 시스템이면 뭐하는가 그걸 돌리는 사람들이 부패하고 몰염치한데. 


김대호 소장이 말하는 대로 정의없는 사회에서 시스템은 쓸모가 없다. 유럽의 모든 법을 그대로 옮겨온다고 하자. 아니 무슨 마법을 부려서 유럽의 복지국가중의 한 나라로 한국인들이 모두 이주하여 유럽인들을 대체하고 산다고 하자. 그들의 법과 그들의 집과 그들의 문화유산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아니 행복은 그렇다치고 우리는 유럽인처럼 생각하고 자기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며 살게 될까. 


계몽주의시대에는 인간의 주체성을 매우 강조했지만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는 각각 인간은 그렇게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인간은 결국 무의식의 조종을 받거나 경제적 상황의 노예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과연 한국인들은 유럽인이 만든 복지국가라는 집에 들어가 살기만 하면 그 정신과 사고방식이 유럽인과 같게 될까.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만약 답이 그러하지 않다면 한국인의 문화와 정신을 빼고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정치개혁론들은 모두 기본이 잘못되어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거기에 들어가 살 물고기가 상어인지 돌고래인지 참치인지 새우인지도 구분하지 않고 멋진 수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위에서 던진 철학적 질문 즉 외부적 물질세계가 똑같다고 할때 우리의 정신도 그에 따라 똑같아진다라는 것에 대한 답이 아니다라면 말할것도 없거니와 설사 답이 그렇다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단숨에 복지국가같은 새집으로 점프할수 없다. 언제나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집을 조금씩 고쳐서 그리로 갈수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 정치개혁론은 공허하다. 


말하자면 가장 어려운 부분을 그냥 슬쩍 넘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책을 보고 열광하여 기꺼이 나의 머릿속과 관습을 모두 버리고 새사람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럴리가 없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적 대립이나 부동산투기같은 것은 중요한 문제다. 자 우리 이제 지역감정같은 건 버립시다. 투기적 마음도 버립시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사람들이 그걸 버릴까. 그런 걸 없애는 것은 간단한 일이라고 치고 우리 모두 힘을 모으면 이러저러한 좋은 나라 만들수 있다고 말하는 쪽으로 나가는 것은 좀 허망하지 않을까? 마치 돈이 있다면 빌딩을 이리저리 지을텐데라고 열심히 몽상하는 것같다. 몽상이 아무리 멋져도 당장 밥먹을 돈도 없으면서 엄청난 돈을 쓸 궁리를 하는 그런 몽상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민통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 문제는 제쳐두고 유럽식 집은 이렇고 미국식 집은 이렇고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거기 들어가 살수 있다고 해도 살아보면 불편한게 많을테고 그와중에 득보는 사람 손해보는 사람이 서로 다르게 나올텐데 우리가 서로 믿을수 없다면 그래서 서로 부족한 것을 양보하고 돌봐주는 사회적 신뢰를 가질수 없다면 무슨 계획을 따라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그것은 또하나의 그럴듯한 사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뉴타운 개발처럼 지역민들에게 부자만들어 준다고 말하고서 결국은 그 땅의 커뮤니티를 파괴하고 부자들만 들어가 살 마을을 만들고 원지역민들은 쫒겨나서 갈곳없게 만드는 그런 멋진 계획말이다. 


논리실증주의적 태도는 이렇게 세상의 특정부분을 축소하고 다른 부분을 확대한다. 법을 바꾸면 국민들의 태도는 그에따라 저절로 쉽게 바뀌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은 없고 시스템만 있는 논의로 나아가며 본질적으로 국민은 시스템의 노예다. 과연 이런 사고방식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수가 있을까. 국민들이 불평하고 저항하면 그들은 그저 투덜댄다. 국민이 후진적이라서 그렇다고. 이거야말로 점원이 치수 안맞는 옷을 가져와서 손님 몸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물론 시스템적인 변화를 겪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치적이고 문화적 변화를 겪어야 하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거기에 많은 에너지를 써서 고민해야 한다. 나는 국민들이 가난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빈낙도라는 우리나라의 옛말을 생각해 보자. 가난해도 풍류가 있고 멋이있으면 삶은 견딜만한 것으로 변한다. 반면에 그렇지가 못하면 재벌집의 식구라도 괴로울것이다. 


물질적으로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는 왜 4대강건설같은게 치명적인 오류고 시멘트로 발라서 전통을 지워버린 청계천이 그다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효율적이지 못하며 인사동같은 것을 현대화시키는 것이 오류라는 것을 느낄수가 없다. 스스로 서비스 산업이 미래 산업이며 일자리 창출에 뛰어난 산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서비스의 근간이 될 문화와 정신에 대한 고려는 사소한 것이 되고 마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선거철이 오면 집장사하듯이 이리저리 헛된 개발계획을 사방에 떠들고 다닐 정치인들로 한국이 가득찰것이다. 거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으며 설혹 가끔 예외가 있다고 해도 지금의 한국 사람들이 그런 예외적인 인사들의 주장을 얼마나 알아줄지 알수가 없다. 그렇다면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들이라도 가치와 정신과 형이상학의 문제가 지금의 한국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져리게 느껴야 할텐데 그들은 여전히 남의 나라의 껍질을 베끼는데 여념이 없다. 공허한 보편성에 매달려서 한국사람을 잊어버린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행복한 나라, 진짜 선진국이 될수 있는 나라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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